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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앞의 수식이 너무 뿌리 깊이 박혀 있어 어느샌가 나이가 들면 읽지 않게 될 뿐이죠. 저도 그처럼 어느샌가 그림책을 가까이하지 않게 되었다가 직업을 가지고 많이 접하게 되면서 다시 가까이하게 되었으니까요. ‘100만 번 산 고양이’ 또한 세대를 아우르는 보편성으로 읽는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그림책 중 하나입니다.
이 그림책에 나오는 고양이는 100만 번을 살았습니다. 100만 번을 죽고 100만 번을 산 고양이에게 산다는 것은 크게 가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다만 자신이 가진 멋진 얼룩무늬처럼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여러 가지 과시용 중 하나일 뿐입니다. 여러 주인을 만나며 사랑받고, 부유하게, 유쾌하게, 고요하게 혹은 자유롭게 다양한 삶을 살았지만 고양이는 그 긴 시간동안 누구와도 진정한 사랑을 나누지 못했습니다.
100만 번을 살아올 동안 계속 그래왔고, 지금까지도 여전히 오로지 자기 자신만을 좋아하여 다가오는 이를 배척하고 마음을 열지 못합니다. 그런 고양이에게 처음으로 먼저 다가가고 싶은 고양이가 생겼습니다. 고양이는 그동안 자신이 과시해왔던 자랑거리들, 그리고 재주들을 하얀 고양이에게 보여주며 다른 고양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부러워하고 선망하길 뜻대로 되지 않아 화가 납니다.
가볍게 지나칠 수 있는 그림책, 가벼이 볼 수 있는 고양이의 이야기이지만 그 모습은 사람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치장을 합니다. 소위 스펙이라 부르는 고학력과 학점, 자격증을 비롯하여 보유한 재산과 심지어 친구가 가진 직업, 사돈의 팔촌이 가진 권력까지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끌어들여 자신을 치장하고 과시합니다.
하지만 더 깊이 들여다보면 보이는 겉모습만큼 내실이 있는지는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100만 번을 산 고양이도 진정한 소통을 나누는 것이 힘든데 하물며 한 번의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들도 진정한 사랑과 소통을 나누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겠죠.
그만큼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진정성을 담기란 특히나 현대사회처럼 빠르고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에서는 더욱 더 어려운 일입니다.
그림책의 고양이는 그동안 치장되었던 자신을 버리고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하고 이야기합니다. 자존심이나 쓸 데 없는 고집으로 원만하게 풀어나갈 관계들도 어렵게 꼬는 경우가 많은 우리들에게 진심이 담긴 말 한마디가 가지는 힘이 얼마나 큰 지 느낄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알면서도 행하기 힘든 것인지도 모르지만요.
하얀 고양이와 함께 하면서 하얀 고양이와 아기 고양이들을 자신보다 더 사랑하게 된 고양이는 하얀 고양이가 죽자 처음으로 울었습니다. 100만 번을 살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은 것이 무색할 정도로 며칠 밤을 날이 새도록 100만 번이나 울었습니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되살아나지 않았습니다. ‘백만’번이라는 건 편의상 단 몇 자로 표현될 수 있지만 횟수를 보자면 단숨에 이만큼이라고 딱 말하기 힘들 만큼 엄청 큰 숫자입니다. 과연 나를 위해서 백만 번을 울어줄 만큼 진정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는지 감히 확신할 수 없다는 사실이 씁쓸하기도 하네요.
이 그림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대해서, 진정한 사랑과 마음을 나누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좀더 사람의 겉이 아닌 내면을 보고 소통할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박지은 꿈을키우는작은도서관 사서 sekami03@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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