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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모습도 책을 빌리는 모습도 천태만상이다. 아이들이 고른 책을 보면 이 아이는 왜 이 책을 골랐을까? 책은 이 아이에게 어떤 말을 걸게 될까? 또 아이는 이 책에게 무슨 말을 건넬까? 생각해본다.
물론 책이라는 것이 사적인 영역이라 그 이상의 생각은 금물이지만.
7학년생(우리나라 중2-3학년)인 홀링 후드후드가 <베니스의 상인>을 읽는다. 이어서 <템페스트>, <맥베스>, <로미오와 줄리렛>, <줄리어스 시저>까지 5개월 동안 윌리엄 셰익스피어를 만난다.
모든 인간관계는 비즈니스라고 생각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권위에 눌려 존재감이 없는 엄마. 아버지와 정치적 견해가 달라 매사 부딪치는 평화주의자 히피 누나와 함께 ‘완벽한 집’에서 살고 있는 홀링 후드후드.
홀링은 수요일마다 베이커 선생님과 단 둘이 남게 된다. 이 시간을 견디기 위해 베이커선생님이 선택한 것은 셰익스피어 읽기다. 홀링은 선생님이 자기 때문에 수요일 오후를 저당 잡힌 보복으로, 자기를 지루하게 죽이기 위해 시도한다 생각한다.
첫 번째 작품 <베니스의 상인>을 읽고 선생님은 샤일록 인물에 대해 이야기 해보라한다. “샤일록은 그가 마땅히 되어야 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랐어요.”
베이커 선생님은 내 말을 잠시 생각해 보고는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되지 못했지?”
“사람들이 그가 그렇게 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으니까요. 다른 사람들이 그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정해 버렸고, 그는 그 올가미에 꼼짝없이 갇혀 버렸어요. 그는 자신의 현재 모습 말고는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었지요.”
“그래서 이 작품을 비극이라고 하는 거야.” 베이커 선생님이 말했다.
두 번째 템페스트를 읽고는 칼리반 괴물이 하는 욕에 쏙 빠져, 욕을 연습하고 기분 나쁜 일이 벌어질 때마다 응용한다.
자신을 괴롭히는 형이 있으면 ‘눈먼 두더지, 지저분한 늪에서 나온 아침이슬이 너에게 떨어지리라’. 우르르 몰려다니며 위협하는 8학년을 보면‘ 희한한 녀석들 고름에나 확 빠져라‘‘까불대는 원숭이 녀석’.
이런 식이다. 욕으로 신나게 셰익스피어와 친해진다. 선생님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난 베이커 선생님은 템페스트를 다시 읽게 하고....
셰익스피어가 던진 ‘인간이란 무엇인지’, ‘선과 정직함, 충직함이 얼마나 위대한지’‘사랑이 얼마나 풍요로운지’‘군대와 총이 얼마나 나약한지’‘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질문의 의미를 찾아간다.
22개의 슈크림 빵 속에서, 소련의 원자폭탄 공격 대피 훈련속에서. 베트남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비지오선생님과 베트남 난민 마이티속에서. 자신을 찾기 위해 떠났다 돌아온 누나의 상실감속에서. 대니와의 우정속에서. 여자친구와의 사랑속에서. 평화를 위해 전진하던 마틴루터 킹 목사의 암살속에서.
그리고 당연하다 여겼던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자신의 인생에 의문을 던지며, 스스로의 선택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누구에게나 내 마음의 책은 한두권씩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중고등 시절 큰 울림을 주었던 책은 쉽게 잊히지 않는 법이다. 홀링에게 셰익스피어가 있듯이. 성인이 되어 돌이켜 보면, 책보다는 오히려 그 책을 읽으며, 무언가를 찾으려 했던 나를 떠올리게 된다. 그 무언가는 바로 ‘넌 어떤 인간이 되고 싶니? 앞으로 어떻게 살고 싶니?’라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내가 살아온 지난날에 친구가 되어 준 책과 작가가 있다면, 그 친구를 오늘 한번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만약 없다면 오늘 만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어떻게? 세상의 모든 책과 작가가 당신과 친구가 되기 위해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는 도서관으로 달려가면 된다.
임은아 석수골작은도서관 관장 sekami03@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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