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구먼. 특별히 잘 한 일도 없어. 그냥 어려운 학생들을 조금 도와 준 것뿐인데 신문에까지 나가면 괜시리 민망스럽잖아.”

△지난 10년 동안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전달해 온 배옥분 할머니.

배 할머니가 매년 어려운 학생들에게 전달하는 장학금은 제법 괜찮은 직장에 다니는 사람의 연봉과 맞먹는 7 ~ 8,000만원. 이 돈을 10년 동안 은행에 적금으로 모아두었다면 10억원에 이를 정도로 할머니가 어느 재벌 부럽지 않은 노후를 보내고도 남을 금액이다.

배 할머니는 자랑할 만한 일이 못된다고 그래서 세상에 알려지는 것이 오히려 부담스럽다며  인터뷰를 손사래 치며 한사코 거절했는데 찾아 왔으니 차나 한 잔 마시고 가라며 기자를 집 안으로 들였다. 이후 담배를 한 대 피워 무시면서 잠깐 동안 얘기할 수 있는 짬을 내 주셨다.

“4살 때 부모님을 여의고 26살에 결혼해 먹고살기 어렵던 그 시절, 시장통에서 행상을 비롯해 안 해 본 일 없이 악착같이 돈을 모았지. 그때는 돈이 최고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할머니는 결혼 후 의대에 다니던 남편 뒷바라지와 여자의 몸으로 집안을 이끌며 돈을 버는데 청춘을 모두 바쳤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힘으로 남편을 의사로 만들었는데 그만 배신을 당하고 몸에는 병까지 들어 여러 차례 죽음의 고비를 맞은 적도 있다고 했다.

반복된 수술과 치료로 생사를 넘나들던 배 할머니는 완쾌 후, 덤으로 얻은 삶, 어려운 사람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때 마침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지인을 통해 서울대학교 의대에 합격했지만 학비를 마련하지 못해 힘들어 하고 있는 한 학생의 소식을 접하게 됐다. 6년 동안 그 학생에게 학비를 전액 지원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10년째 100여 명의 어려운 환경의 대학생들과 고등학생들에게 장학금과 함께 생활비까지 선뜻 내 놓고 있다.

하지만 배 할머니는 도움을 주고 있는 학생과는 일체 자리를 만들지 않는다. 혹여 부담을 줄까 염려되는 부분도 있지만 도움은 그냥 아무런 바람 없이 그저 베푸는 것이라는 것을 맘 속 깊이 담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 양반, 바쁜데 찾아 와 줘서 고맙긴 한데 한말이 없어. 딱히 자랑할 만한 일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 했을 뿐이야.” 어느덧 배 할머니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대화 처음에 입에 무셨던 담배의 마지막 연기를 내뿜으며, 앉아 있던 자리에서 일어 나셨다.

희미하게 금방 사라지는 담배 연기처럼 배 할머니와의 인터뷰는 아주 짧은 시간 동안 이뤄졌지만 깊은 산 속의 나무와 꽃들이 전해주는 맑은 공기와 향기같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아 돌아오는 내내 기자의 머리와 가슴을 꽉 채우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김선광 기자  ace1357@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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