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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의 모 장애인학교 선고공판을 스케치 한 신문기사 한 줄을 보고 구상했다는 이 소설은 작가의 오랜 현장취재와 자료수집을 바탕으로 씌여졌다.
소설은 사업에 실패한 주인공 강인호가 아내의 주선으로 기간제 교사로 근무하게 된 청각장애인 학교가 있는 무진시를 향하는 장면에서 시작한다. 주인공이 무진에 들어서며 만나게 된 짙은 안개처럼, 그가 장애인 학교에서 발견한 것은 거짓과 폭력으로 은폐된 진실이며, 짓밟힌 장애인 아이들의 인권이다.
장애인 아이의 죽음을 조용히 처리하려는 학교측과 경찰, 부임 첫날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괴성, 학교장과 행정실장의 악행을 세상에 알리려 하나 현실의 벽은 무진의 안개만큼이나 두껍고 높다.
'진실이 가지는 유일한 단점은 그것이 몹시 게으르다는 것이다. 진실은 언제나 자신만이 진실이라는 교만 때문에 날것 그대로의 몸뚱이를 내놓고 어떤 치장도 설득도 하려 하지 않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진실은 가끔 생뚱맞고 대개 비논리적이며 자주 불편하다. 진실 아닌 것들이 부단히 노력하며 모순된 점을 가리고 분을 바르며 부지런을 떠는 동안 진실은 그저 누워서 감이 입에 떨어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세상 도처에서 진실이라는 것이 외면당하는 데도 실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면 있는 것이다.(165p.)'라는 작가의 말처럼 진실을 밝히려는 이들에게 거짓은 권력의 힘으로 분칠하고 회유와 협박, 폭력으로 진실을 왜곡하고, 약자들의 저항을 무력화 시키려 한다.
무진의 권력실세에 맞서, 그런 순진한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느냐는 장경사의 질문에 서유진은 말한다. "세상 같은 거 바꾸고 싶은 마음,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다 접었어요. 난 그들이 나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싸우는 거예요.”(p.257)
마지막에 아내와 함께 무진을 떠날 수 밖에 없었던 강인호와 달리 서유진이 끝까지 장애인 아이들과 함께 했던 이유는 거짓이 판치는 세상에서 자신을, 그리고 진실을 지키고 싶어서가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우리사회 추악한 이면과 권력 앞에 무력해 지는 현실에 분노하고, 장애인아이들의 아픔에 가슴 한켠이 욱씬거리도 했다. 어쩌면 우리의 현실은 여전히 무진의 안개속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한 희망은 우리에게 있다.
작가는 말한다. “이상한 일은 삶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되면 될수록 사람에 대해 정나미가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보다 더 이상한 일은 정나미가 떨어지는 그만큼 인간에 대한 경외 같은 것이 내 안에서 함께 자란다는 것이다.”
류현선 중앙도서관 열람계장 sekami03@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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