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의 노령에도 불구하고 뒷사람의 처세를 염려하는 한 지성인이 있습니다. 영원한 자유인 리영희 선생님입니다. 수리산 자락에 무위의 터를 잡으시나 했더니 어느새 한국 현대사와 주고받은 ‘대화’를 엮으셨고 또 강연을 다니십니다. 이제 그 길었던 ‘역정’을 접고 뒤에 남은 사람들의 이정표만 되어도 그만일 터이나 선생님은 그러하지 않으십니다.
“진실은 너무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개인이 독점할 수 없다. 여러 사람과 더불어 나눔으로써 가치가 있는 것이다”
지난 8일 성공회대에서 있었던 강연중에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한 인터넷신문을 통해 읽었습니다. 진실을 나누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세월이 내린 불편을 감내하시는 모습에서 알 수 있었습니다. 우반신 마비의 구속도 진리를 통한 자유의지를 결코 잡아두지 못함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 많은 노작들과 함께 꼿꼿한 선생님의 일갈을 들을 수 있는 저희들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들입니까.
그러나 때때로 선생님은 혁명성이 부족한 한낱 학자로 추락하였습니다. 겉으로는 투철한 혁명가인체 했으나 실은 비혁명적 지상(紙上) 혁명가들이 끌어내린 것이지요. 80년대 중반 선생님의 복직을 환영하는 자리에서 지상 혁명가 한 명이 애써 선생님을 외면하며 구석자리에서 혁명과 투쟁을 얘기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그 젊은 혁명가는 왜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나는’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가끔 나는 왜 스승 복이 없을까 탄식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도 잠시 곧 선생님을 생각하곤 그리 박복하지는 않다고 위로합니다. 물론 선생님은 나 혼자의 스승으로 독차지 하기에는 너무 많은 사람들의 스승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세월에 묻어 조금씩 성장하며 선생님을 스승으로 인정하는 ‘자유인’ 무리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을 때는 오히려 동문이 많음을 즐거워 할 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 선생님은 제 인생의 멘토였음을 모르시겠지요. 91년 설날이었을 겁니다. 후배들과 함께 세배를 갔었지요. 그때 선생님은 사모님께서 끓여내신 떡국을 저희들과 함께 드시며 아주 소중한 말씀을 해주셨는데 기억나십니까? 바로 Simple Life, High Thinking! 이었지요. 단순한 삶을 통해 고도의 사고를 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저는 심플라이프 하지 못하고 있으니 언제나 하이싱킹 할런지요. 이 철없음이 너무 길어 멘토의 유효기간도 무한정 늘어나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선생님, 그러므로 오래 사시기 바랍니다.
사실 달포 전 선생님을 뵐 기회가 있었습니다. 군포시 한 기관에서 소식지 편집을 위해 선생님께 인터뷰를 청했을 때입니다. 저는 소식지 제작을 돕고 있었는데 그때 왜 가지 않았는지는 다른 기회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다만 선생님의 근황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어 인터뷰하며 촬영한 사진을 올립니다. 초상권을 들어 꾸지람하지는 않으시겠죠? 선생님은 이미 공리를 위한 개인이시니까요. 그리고 소식지에 실렸던 임헌영 선생과의 노작 ‘대화’의 사진은 제가 찍은 것입니다. 고작 선생님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었지요.
어쩌면 저처럼 자기 식대로 스승을 기리는 불충제자들이 더 많을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는 너그러이 용서하시리라 믿습니다. 선생님, 건강하시고 그냥 오래 오래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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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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