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도 부곡동이라는데 아마 수리산의 한 자락이겠지요. 그 아래로 꽤 너른 평지가 웅장하게 드러나는데 그곳에다 땅 다섯 평을 얻어 주말농장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 가려면 새로이 개축중인 청문당을 지나자마자 고속도로 아래 연결로로 만든 굴다리를 지나야 하는데 그 분위기가 만화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아직 유바바로부터 새 이름 센을 받기 전이니까)가 엄마 아빠와 함께 지나간 그 굴과 아주 비슷하답니다. 아마 영화에서처럼 차를 입구에 두고 걸어서 그 곳을 지나면 으스스한 분위기에 몸이 오그라들지도 모르는 그런 곳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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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이 있는 곳은 오래 된 사진처럼 점점 바래가는 기억력 탓에 시인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지만 「전라도 길」이라는 시가 떠오르는 그런 곳입니다. '소록도 가는 길'이라는 부제가 달린 시에서 처럼 정말 '가도 가도 황톳길'인 푸석한 땅에 지난 4월 감자와 고추를 심고 무와 배추 씨를 뿌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주에 이어 오늘 두 번째 밭에 나가는 여유를 갖게 되었습니다.
대개 주말농장이 그렇겠지만 이곳은 유기농법이 훨씬 강하게 요구되는 곳이라 여러 곤충과 애벌레가 유독 많이 있더군요. 특히 무와 배춧잎은 벌레를 기르기 위해 재배한다싶을 정도로 무참하게 파 먹힌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조카 녀석들은 벌레를 징그러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배추나 무잎을 이리저리 뒤적여가며 벌레들을 쏙쏙 잘도 잡아내거든요. 둘째 조카 채연이는 어린이집에서 제일 잘하는 일을 말할 때 벌레잡는 일이라고 할 정도로 정말 잘 잡아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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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뚱맞은 비약일지 모르지만 벌레를 잡는 아이들의 손을 보며 애덤 스미스의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을 떠올렸습니다. 스미스는 인간 본성에 기초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자유로운 시장의 형성과 국부의 증대를 가져온다고 했습니다. 물론 그가 말한 인간 본성이란 헌신과 희생이 아니라 개인의 이기심과 이익의 추구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벌레(수요)와 채소(공급) 사이에 보이지 않는 손은 무엇일까요? 정말 그 사이를 조정하는 무엇이 있다면 저렇게 일방적으로 벌레에만 유리한 수요공급 곡선은 그리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요? 그래서 결국 어린 조카 아이들의 손이 스미스의 손이 되어 시장에 개입, 우아한 수요공급의 포물선을 그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좀 엉뚱한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또 저 녀석들이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는 때가 되면 요즘처럼 특혜와 개입이 많은 시장이 아닌 공정하고 자유로운 시장에서 활동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그랬겠지요.
아차! 자칫 시장주의 신도가 될 만한 발언으로 오해받을지도 모르겠군요. 사실 대부분의 진보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도 시장주의 신봉자이므로 그다지 염려할 일도 아니지만요. 그런데 요즘 시장이 불량스러워지기 때문에 이런 글도 쓰고 있는 것이지요. 신자유주의 비판시 가장 핵심적인 무기가 바로 불공정하고 자유롭지 못한 시장의 한계인데요 요사이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 시장주의가 언제까지 자신의 유효기간을 연장할지 의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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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노무현 대통령이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모든 정치적 행위들도 돈벌이를 위한 결과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임시국회 개회만 마치고 기업하는 동문들이 주선한 골프 회동에 달려간 여야의 국회의원들도 그렇습니다. 기업인이 불러 낸 자리에 갔으니 암묵적(사실은 자기들도 다 알죠)으로 시장에 개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검사들이나 언론사 사주들이 고궁에서 겁 없이 만찬을 여는 것도 결국 권력과 언론과 정부의 카르텔이고 그 뒤에는 자본이 있으므로 결국 시장에 개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 삼성이 요즘 들어 무자비하게 사외이사나 소속 변호사를 판검사 출신으로 영입하는 것도 이미 시장에 불공정하게 개입하려는 의도입니다.
자 이쯤에서 우리 조카들의 벌레잡는 손을 다시 한 번 떠올려봅니다.
척박한 황토에 뿌리박고 살아보려 했더니 게으른 주인은 비료도 주지 않고 날도 가물고 게다가 웬 벌레는 그렇게도 많은지... 벌레잡는 조카들의 손이 배추며 무에게 얼마큼의 생존 시간을 연장시켜 주었을까요. 채소들은 다시 회생할 수 있을까요?
우리에게 보이지 않는 손은 무엇인가요? 스미스의 공정하고 완전한 자유경쟁은 가능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다면 인간의 이기심을 대신 할 보이지 않는 손은 무엇인가요? 우리들 마음 속에 손 하나씩 키워야 할 그런 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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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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