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리가 아파 조그마해진 쬐간이 이정순 할머니가 건네는 따뜻한 인사말에 할머니들이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전남 담양에 있는 한 비닐하우스, 아침 6시반. 할머니 다섯 분하고 방울토마토 넝쿨을 거둬내는 일을 하기로 했다. 어른 키를 훌쩍 넘긴 방울토마토 넝쿨로 빽빽이 찬 비닐하우스 고랑 안은 밀림처럼 어두웠다.
“구신 되부럴건디?” 일을 시작하는 나에게 할머니들이 말했다. 그냥 놀리려고 하신 말인 줄 알았다. 일 시작한 지 한 시간도 안되어서 나는 정말 귀신이 되어버렸다. 넝쿨에 얽혀 머리는 산발되고 줄기를 뜯어낼 때마다 날리는 시커먼 먼지와 풀물로 옷은 뒤범벅이 돼버렸다. 땅바닥에 엎드려 밑동을 자르고, 일어서서 손으로 줄기를 꺾고, 허리를 굽혀 토마토를 따는, 전신을 다 쓰는 힘든 노동이었다.
“긍께 젊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열심히 일 헌다고 왔다가 이삼일 허고 도망쳐 불제.” 쬐간이 할머니 말에 또 웃음이 터졌다. 더 나이가 젊은 사람들은 농공단지로 일하러 가고 70살이 넘은 할머니들은 가장 일하기 힘들다는 하우스에서 일당 2만원을 받고 일하고 있었다.
-일당 2만원 새참은 컵라면-
‘불 땐 솥 안에 든 것 맨치로 환장허게 뜨거운’ 하우스 안에서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다행히 새참시간이 되었다. 새참은 컵라면이었다. 힘들게 일하신 할머니들 사이에 놓여있는 컵라면이 참 삭막해 보였다. 괜히 내가 할머니들에게 미안해졌다. 할머니들은 먹고 살기 힘든 시절에도 새참은 정감있고 풍요롭고 정성스러운 것이었다고 했다. ‘후리후리허게 키 큰’ 호밀로 만든 빵, 밭에서 재배한 노란콩으로 직접 만든 두부로 끓인 동태찌개, ‘동글동글 쬐간한’ 녹두로 빚은 묵. 지금은 녹두랑 호밀을 심던 밭들이 동네에서 거의 사라져 버려 새참으로 먹을 수도 없었다.
“시세도 없어지고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난께 저절로 사라져 버렸제.” 아직도 예쁜 신할머니가 말했다. 할머니들은 점심도 직접 싸왔다. 대부분 혼자 살고 있어서 저녁에 해 놓았던 밥을 그냥 가져오는 경우가 많았다.
‘품삯’을 보름 만에, 한달 만에, 일이 없을 때는 세달 만에 받기도 하는 할머니들에게 그 돈 받아서 어디에 쓰느냐고 물었다. 약값으로도 쓰고 어려울 때 도와준 동네 사람들 부조금으로도 쓴다고 했다. 5년 이상 일해 온 분들이 많아서 대부분 ‘하우스병’을 가지고 있다. 괜히 숨차고, 땀도 많이 흘리고, 현기증 나고, 어깨 결리고, 관절이 심하게 아팠다.
“여기는 한증막이여.” “어깨 빠져 죽어, 엉덩이 아파 죽어, 고개 빠져 죽어(웃음).” 몸이 아파도 할머니들은 일하러 나온다. 자식들에게 의지하기 싫어서다. 자식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웠다. 광주에서 부도나기 직전인 인쇄업을 하는 아들, 자신들의 생활비도 빠듯한 여수공장에서 일하는 셋째아들, 친정집 한번 다녀오고 싶어도 비행기삯이 없어 못 가는 필리핀 며느리, 그리고 무엇보다 농사짓다가 빚만 늘어난 둘째아들. “자식이 영농후계자라고 농협에서 돈을 빌렸는디 이자에 이자가 붙어 신용불량자가 되어부렀어. 그 아들 빚만 쪼께 덜어도 여한이 없겠어.”
-당당한 그분들 있어 ‘활력’-
자식들이 이런 상태인데 할머니들은 아프다고 손을 벌릴 수가 없었다. “죽는 날까정 자신의 몸은 자신이 책임지다 갔으면 좋것는게.” 할머니들의 마지막 소원이었다. 시골에 혼자 살게 하고 경제적으로 도움도 못 주니까 마음이 편치 않은지 아들이 한번은 술 먹고 전화를 해 가지고 “어머니… 미안해요, 미안해요” 그러면서 울기도 했다.
하우스가에 심어놓았던 마늘을 뽑고 풀들을 다 매고나니 저녁 7시반이 되어서야 일이 끝났다. 녹두, 호밀이 사라지니 사람도 사라지고 문화도 사라진, 컵라면 새참처럼 삭막하고 건조한 농촌이지만 가장 밑바닥에서 당신의 삶을 견디는 할머니들이 있어 그곳은 여전히 풍요로운 삶의 텃밭이었다. 견디면서 품어내는 애처로우면서도 당당하고 유머스러운 할머니들의 에너지가 나의 쪼그라진 삶에 생기를 주었다.
최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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