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청계천 4가 공구상가 골목을 돌고 있을 때 아저씨는 조그마한 공업사에서 철구조물 만드는 일을 하고 있었다. 아저씨가 특별하게 우리들 마음에 다가왔던 것은 ‘그가 터트린 눈물’ 때문이었다. 일요일 오후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골목에서 그는 햇살을 맞으며 몸을 낮게 웅크린 채 혼자 일을 하고 있었다. 주문을 받아 열흘을 밤새서 일하고 있는 중이라 했다.
40여년을 이렇게 수없이 밤을 새워 일을 하면서 동생들 공부 시키고, 부모를 봉양하고, 집을 마련하고, 자식을 교육시켰다. 아저씨 검지손가락에는 수많은 상처들이 나 있었는데 용접할 때 불똥이 튀어서 난 것이었다. 뜨겁지 않으냐는 질문에 아저씨는 “3,000도 이상의 고온이면 살이 완전히 타버려서 아프지 않다”고 했다.
－서민들 生의 터전서 밀려나－
염주와 낡은 소파가 있는 작업장안 구석에서 우리는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었다. 아저씨는 많은 이야기를 한꺼번에 쏟아내셨고 종내에는 눈물을 터트리셨다. 그동안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자신을 억누르고 버려야했던 고통들과 세상으로부터 받았던 상처들이 당신도 모르게 터진 것이다.
아저씨도 놀랐고 계속 쏟아지는 그 깊은 울음에 우리도 놀랐다. 그리고 며칠 후 아저씨는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3,000도 이상의 고통스런 삶을 살면서도 그것이 얼마나 강도 높은 스트레스인지 모른 채 그는 일을 해왔던 것이다. 생활의 힘듦이 한 사람의 일생에 얼마나 깊은 상처를 남기는지 나는 아저씨를 통해 깨달았다. 가끔 공구상가를 지나다가 아저씨의 흔적이 완전히 지워진 새로 단장한 공장을 보고 있으면 너무 쓸쓸해 눈물이 나왔다.
우리가 만났던 황학동에서 붕어를 팔던 아저씨도, 광장시장 사탕 할머니도, 세운상가 퀵서비스 아저씨도 모두 생계를 위해 3,000도의 스트레스로 살고 있는 분들이었다. 청계천이 복원된다기에 낡은 근대에 갇혔던 이분들의 삶도 복원되기를 바랐다. 가족의 생계만을 책임져온 이분들에게도 삶의 정취가 흐르고, 문화적인 여유가 노닐기를, 그들이 견디어온 끈질긴 생명력과 지혜를 사회가 공유하고 나누기를 바랐다.
그런데 청계천 복원으로 이분들의 삶은 더 어려워지고 파괴되었다. 병든 아내를 둔 붕어 아저씨는 거의 손님이 끊겨 붕어를 2만원어치도 못 팔았고, 고물노점상을 하던 아저씨는 더 이상 먹고 살 수가 없어 청계천을 떠났다. 서울다방 아주머니는 임대료를 못내 쫓겨나 길가에서 폐휴지를 줍는 일을 하고 있었다.
1만여명의 경찰과 용역깡패들이 동원되어 노점상들을 쫓아내는 현장에서는 길가에 세워놓은 노란플라스틱 판으로 사람들이 뒤통수를 맞아 피 흘리는 것을 보아야 했다. 가스통이 불타고 바리케이드가 쳐지고 노점상들의 수레가 놓여있던 곳의 아스콘은 순식간에 뒤집어지고 파헤쳐졌다. “이곳이 환경과 인간과 문화가 만나는,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청계천이란 말인가?” 사람 대하는 방식이 여전히 ‘폭력적인 낡은 근대’에 머물러 있는 청계천을 보고 망연자실했다.
－부자들 위한 경관으로 전락－
물길이 보이는 청계천가를 걸었다. 관광코스로 패키지화된 청계천 상품광고가 날린다.우연히 시청에서 청계천 전지역 재개발 자료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서울시 뉴타운 계획과 연계된 대개발 프로젝트였다. 청계천 복원은 단순한 하천복원이 아니었다. 청계천은 새로 세워질 타워팰리스들의 조경과 수족관이었으며 건물의 값어치를 높이는 귀한 장치였다.
이런 개발 이익 때문에 사회가 생계를 위해 힘들게 버텨온 사람들의 삶을 성찰할 기회를 잃었고 사람들은 폭력까지 당하게 됐던 것이다. 도로 위에 놓여있던 아저씨들의 수레는 간데 없이 사라졌다. 부유한 이들의 주차장과 공원으로 화려하게 바뀌는 청계천 거리는 너무 외로웠고, 나아질 기미 없이 반복되는 저 힘겨운 삶들이 서러웠다.
최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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