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의 生과 死를 넘나들던 염상진의 거친 숨소리인가,
주어진 자기 삶에 밀착하여 혼신으로 끌어안고 치열하게 살다 간 ‘토지’
송관수의 거친 숨소리일까
어쩌면 淺을 면해보려던 거멍골 민중의 ‘혼불’이 일렁이는 소리일지도 모를 일이다.
산을 배경으로 한 역사속의 글들이 나를 또 다시 이곳을 찾게 하였는가.
각박한 삶을 피해 어머니 품속같이 포근한 이곳을 찾은 것인가
어리석음을 버리고 지혜를 찾기 위해 이곳을 찾은 것인가
열차의 溫氣에서 벗어난 밖의 추위가 옷깃을 여미게 하였다. 성삼재로 가자는 택시를 일별하고 거침없이 모두는 버스 창을 열었다. 평일 이른 시각 이라 그리 산을 찾은 이들이 없어 한산하기까지 하다. 화엄사와 성삼재로 출발하는 버스정거장에서 시골 정취가 밀려 올라왔다. 이곳에 왔으니 섬진강 제첩국이 제격이라며 한 그릇 뚝딱하니 할머니께서 투박한 손으로 커피를 내민다.
어제 내린 비로 山野가 싱그러움으로 빛나고 있다. 골짜기를 타고 내려오는 계곡물이 시원스럽고 새들이 지저귀며 깊은 잠에서 깨어나 있다.
성삼재에서 40여분 오른 곳에 노고단이 여명을 받으며 천왕봉과 반야봉이 보이는 그곳에 말없이 서 있었다. 노고단 雲海라고 했던가. 할미단이라 했던가. 구름이 산허리를 휘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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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사에서 대원사까지 종주의 지난
旅程이 아스라이 스쳤다. 시간이 화살이라고 하더니 어느 새 1년이 흘렀다.
아스라이 스쳐간다.
산행객들이 끓이는 라면 냄새를 뒤로
하고 돼지령을 지나 반야봉을 오르는 길목, 노루목의 바위에 걸터앉아 거친 숨을 내쉬면서도 1시간 거리의 빨치산 사령부가 있었던 반야봉으로 내쳐
올라갔다. 그곳은 이제 진달래가 몽우리를 터트리고 있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가는 능선에서 비껴 서있는데도 지리산 종주에 이곳 반야봉이 들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 반야 낙조가 지리8景 이라 그럴까, 동족상잔의 아픔 때문일까, 외세에 의해 갈라 진 이 땅에서는 반세기가 지났건만 아직도 恨 많은 사람들의 시름이 넘치고 눈물이 강을 이루고 있다.
임걸령 샘물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 아빠하고 종주를 하는 초등학교 3학년 녀석이 대견하여 제첩국을 뚝딱 해치우고 구례시내로 달려가서 사온 김밥을 펼쳐 한 食口가 되었다. 산에 오면 많은 것을 포용하게 된다. 그래서 피폐해진 삶을 도닥거리기 위해 산을 찾는지 모를 일이다.
헐떡이며 올라 선 곳은 三道峰 !
‘三道를 낳은 봉우리에서 전북, 경남, 전남 도민이 서로 마주보며 天地人 하나 됨을 기리다.’ 라고 써 있는 삼각점 표식에는 3개 道名이 시간이 흘렀건만 그대로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많은 사람을 기쁘게 하고 희망과 기대에 들뜨게 한다.
바로 몸을 웅크려 굴리면 닿을 뱀사골산장이다. 흐르는 샘물을 표주박에 떠서 한 모금 넘기니 차가운 기운이 뼈 속 깊이 스며들어 새벽 5시부터 6시간을 걸어 타들어 간 목 줄기에 생기를 돋운다.
산중에서 풋고추라, 고추장에 푹 찍어 라면 국물을 소주 삼아 들이키니 자연인 따로 없다. 일기예보가 우중충하고 잿빛하늘에 화들짝 놀라 차가운 샘물을 냉장고 마냥 놓았던 오이를 베어 물고 앞선 일행을 쫒아 올라가니 무엇 때문에 이곳을 찾았는지 유유자적하는 나 홀로 산행 객이 여유를 부리고 있다.
토끼봉으로 오르고 명선봉에서 이어지는 계단은 지친 다리를 힘들게 하였지만 조금 만 더 가면 퍼질러 앉을 수 있다는 희망으로 견딜 만하다.
지난 해, 화엄사에서부터 14시간을 걸은 후 벽소령에서 몸살 난 것을 생각하면 이정도 쯤이야
수량이 풍부한 연하천 산장에는 명선봉에서 넘어 오는 사람, 연하천에서 휴식을 취하는 사람, 벽소령으로 넘어가는 사람으로 북적거렸다.
산에 오면 모두 친구라 하였던가. 나의 허락을 받지 않고 내 담배를 피워도 그저 웃으며 그들이 입에 넣어주는 소주 한 잔에 삼겹살 안주 삼아 즐거워하면 되는 것이고, 우리 반찬이 넉넉하지는 않지만 그들과 나눠먹으면 그저 즐거운 것이다. 20년 이상 근무로 휴가를 받아 이곳을 홀로 찾았다는 공기업에 근무한다는 산행인 역시도 처지와 심정은 같아 그냥 우리는 편해졌다. 산은 그래서 좋다.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니 짜릿, 술이 확 깬다.
밤을 새워 피곤을 코로 내쉰 침상은 마치 호랑이 동굴이었다. 여명이 밀려오고 어둠이 떠밀려가는 연하천 주위는 생명이 숨쉬고 있었다. 오늘은 어제와 비슷한 걸음으로 벽소령과 세석을 거쳐 장터목에 안착하게 된다.
부산스럽게 모두가 떠나 고요함에 묻힌 산장을 뒤로하고 형제봉을 지나 벽소령 산장에 닿아 휘둘러보고 식수를 보충할 수 있는 선비샘으로 향했다.
가뭄에서도 마르지 않는다는 샘비샘은 그제 내린 비로 성능 좋은 양수기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물이 쏟아져 내렸다. 돌 방석에 걸터앉아 마시는 샘물이 꿀맛이다.
망바위에 오르고 칠선봉을 거쳐 둔덕에 가라앉은 세석산장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지난해는 이곳에서 나의 사과나무를 생각했었지. 그래, “누군가 하긴 해야 해!,” 그래, “절대 포기해서는 안돼!”
작년보다 10일 늦었지만 분홍색 진달래가 세석평전에서 우리를 반겼다. 역시 산에서 점심은 라면이다. 비가 오려는지 바람이 세차게 휘몰아 쳤다.
오늘 숙소인 장터목까지는 채 2시간 거리지만 후드득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에 낭패를 보기 전에 발걸음을 재촉하면서도 촛대봉을 아니 오르면 후회 한다 생각하고 뛰어 오르고 후드득 빗방울이 떨어지면 또 다시 발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어느덧 장터목산장이 보이는 연하봉이 눈앞에 있다.
바람이 윙윙 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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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었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 도종환 -
일찍 산장에 도착한 산행인들이 두 다리를 뻗어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섣부른 팀들은 조리실에서 요기할 것을 궁리를 하기도 하고, 내일 아침 비 올 것을 걱정한 일행들은 천왕봉으로 향하고 있다. 우리는 천왕봉을 오르기로 하고 음식 조리하기 편한 곳에 배낭을 자리 잡고 제석봉으로 향했다.
빨치산의 마지막 격전지 제석봉! 그곳은 어둠 속에서만 올랐기 때문에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죽어 천년, 살아 천년 주목 뼈다귀는 무슨 원한으로 허연 눈을 부릅뜨고 있는가. 인간들의 헛된 욕심에 경고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을 경건한 마음으로 오른 곳이 툭 터져 있다.
민족의 영산 지리산 1915m !
‘한국인의 기상, 이곳에서 발원되다’ 백두대간의 시발점,
바람이 거칠게 윙윙 울고 있다.
일출을 보고 저 마다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던 이곳에서 침잠하여 돌비석을 껴않은 가슴이 쿵덕거린다.
국립공원 1호로 지정된 지 올해로 不惑을 맞이한 지리산!
永劫을 거쳐 민족의 운명과 함께 한 지리산 !
어려움을 이길 수 있도록 힘과 지혜를 주소서!
(#file3#)
최영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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