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자라면서 “아랫돌 빼서 윗돌을 괴는 답답한 사람” 이라면서 남들처럼 수완 없고 무능한 아버님 때문에 어려운 살림을 꾸려 나가야 하는 고달픈 처지를 한탄하는 어머니의 말씀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아버님의 엄한 가르치심을 받으면서 자라는 사이에 저는,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을 꼽으라면 주저 없이 “우리 아버님”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면서 한편 집안 살림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저 자신이 항상 죄스럽고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공업학교를 지망했고, 졸업 후 에는 집안 살림을 맡아 아버님의 힘을 덜어 드려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같지 않아서 연만하신 아버님께서는 일손을 못 놓으셨고 집안 걱정도 여전히 하셔야만 했습니다.
생각 끝에 돈을 벌기 위해서는 사업을 해야겠다고 결심을 했습니다. 그러나 경험 없고 가진 것도 없이 빈손으로 시작한 사업이 순탄할 리가 없었습니다. 매일 자금 때문에 시달려야 했고, 급기야는 결혼 한지 얼마 되지 않은 아내까지 나서서 돈을 구하러 다니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자(利子)의 이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설상가상으로 세계적으로 몰아닥친 유류파동 과 고철 파동이 근근이 연명해 가던 사업의 숨통을 끊어 놓고야 말았습니다.
사업이 실패로 끝나게 되자 남은 것은 빚 밖에 없었고, 나를 믿고 지원해 주신 가까운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손해를 끼쳐드린 결과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돈을 빌려 주신 분들의 원성과 자식들을 아버님과 처가에 갈라 맡기고, 재기를 해 보겠노라고 정처 없는 길에 올랐을 때, 아버님께 대한 죄스러운 마음과 제 처지를 생각 하면서 마치 가슴에 대 못을 박는 듯 한 아픔과 죽고만 싶은 심정에 한 없이 속으로 울었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후, 친구와 더불어 자그마한 사무실을 차리고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던 어느 날 이였습니다. 아침에 걸려온 전화를 받은 친구가 내게 전화기를 건네주면서 “아버님이신데 받아보세요, 음성이 꽤 정정 하시네요.”하고 말했습니다. 평생 전화를 안하시던 분이시기에 “아버님! 접니다.
집에 무슨 일이라도 있으세요? 건강은 어떠시고요?”하고 두서없이 물었습니다. 그때 까지도 아버님을 모실 형편이 못 돼 처가에 얹혀 살던터라 항상 걱정이 되어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아버님은 “아니다… 네가 일을 시작했다기에 궁금해서 걸었다… 그럼 끊는다.”하시면서 전화를 끊었습니다. 그 당시로는 정정하신 아버님의 음성과 저에게 보여 주시는 관심으로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지나쳐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제 나이 들어 생각하니 그때 아버님은 무척 곤궁한 상태에서 전화를 하셨지만 차마 말씀을 못하신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 제 자신이 원망스럽습니다. 이것이 아버님께서 제게 주신 처음이자 마지막 전화인 것을… 이제 와서 가슴을 치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버님 사후에 어머님께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어느 날 “돼지고기가 잡수시고 싶다 해서 톡톡 턴 돈으로 돼지고기 반근을 사다 삶아 드렸더니 맛있게 잡수시고는 못내 부족한 표정으로 수저를 내려놓으시더라.” 는 말씀을 듣고, 아무리 저 살기에 바빴다고 하지만 무슨 말로도 합리화 할 수 없는 저 자신에 대해 어떻게 용서를 빌어야 할지 불효자는 몸 둘 바를 몰랐습니다.
5월이 되면, 아버님에 대한 생각이 아픔으로 되살아납니다. 젊었던 시절, 어버이날에, 카네이션 한 송이 달아 드리고, 맛있는 것 사드리고, 선물을 사드리면서 그것이 효도하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차츰 나이 먹어가면서 자식들을 기르고, 그 애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보니 그것이 얼마나 큰 착각 이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참 효도를 하는 것은 부모님에게 걱정 끼쳐드리지 않고 잘 살아가는 것과 부모님에게 늘 관심을 가지는 것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었기 때문에 아버님 생각이 이렇게 아픔으로 다가오나 봅니다.
/이재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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