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5월에 조간신문에서 만나 詩 최정란의 <강물재판>이 뒤척이다 녹슬은 내 영혼을 마구 흔든다.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은
살인사건이 있고 일 년이 지나면
범인을 강물에 들어가게 한다.
슬픔의 시간을 보낸
피해자 가족은
그를 물속에서 나오지 못하게 깊이 밀어 넣을 수도 있고
그를 용서하고 물밖으로 나오게 할 수도 있다.
그를 죽게 내버려두면 평생을 슬픔 속에 살게되고
그를 용서하면 행복이 온다.
낮꿈에도 가위눌려
허우적거리며 숨을 몰아쉬는 나는
누구에게 용서를 구해야 하는 것일까
사소한 일상의 재판으로
얼마나 자주
스스로를 가두는 판결을 내렸던가.
-시집 ‘여우장갑’중에서-
강물이 푸른 이유를 알 것 같다. 얼마나 많은 뭇 생명들이 멍든 가슴 씻어 내리느라 저토록 깊은 색을 띄는 것일까. 슬픔도 강물에 띄우면 大海로 가는구나. 상처와 아픔을 바로 보려면 일 년은 걸리는구나. 그것도 모르고 얼마나 많은 분노의 卽審과 증오의 誤審에 괴로워 했던가. 너를 가두면 내가 갇히고 너를 풀어주면 내가 풀리는구나. 마음의 분노가 별을 삼키려 할 때 저 강물을 떠올리겠구나.
시인 반칠환의 해설이 나를 더욱 인격적으로 함량미달이라 낙인 찍누나. 우리가 미개인의 대명사처럼 비하하는 아프리카의 부족도 극악 죄인을 다스림에 있어 그처럼 여유롭거늘, 솔직히 내 맘속 깊숙이에 아직도 남의 일에 취모멱자(吹毛覓疵 : 털을 홀홀 불어가면서 흠을 찾아낸다) 하려는 못된 근성이 꿈틀거리고 있었나 보다. 지지리도 못난거였구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가 좀처럼 이해되지 않지만,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흉본다’거나 ‘매달린 개가 누워있는 개를 비웃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사리와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런데 그런 부류들이 판을 치고 있으니 이게 바로 거세계탁아닌가?
도대체가 남의 약점을 캐면 그것이 곧바로 고스란히 내 강점이 되리라는 발상부터가 축복받기 글렀다. 하늘이 무섭지 않다면 그것은 똥뱃짱이다.
지금 대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이 나라의 정치판을 보면 그 꼬락서니가 싹이 노랗다. 모두가 상대방의 약점 들추기에 혈안이다 보니 자기의 알몸이 통째 드러나고 있음이다. 觀照의 눈이 흐린 자가 어떻게 지도자를 자처하고 나설 수 있단 말인가? 정말 웃긴다구.
이럴 때면 고 김활란 박사의 왕년의 불호령 ‘죽을 각오없이 겨레의 삶을 걱정하는 자리에 앉지 말라!’던 경구가 호되게 가슴을 친다.
요즈음도 계속 신문에 실리는 소위 사회 지도층 아들들의 갖가지 병역 면탈 방법에 혀를 내두르면서 더 괘씸한 것은 그런 그들(나라가 안전하고 완전한 때에만 얼굴을 내미는)을 기회를 만들어 重用하는 위정자에 대해 분노를 삭일 길이 없다. 위정자가 노리는 반사이익이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함이 아니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국민의 불이익을 전제로 한다.
잠시 눈을 감고 현재 생존해 있는 역대 대통령들의 어록들을 더듬어 본다. 겉과 속이 달랐음이 입증되고 있음이 아닌가? 막대한 불법축재에서 면책특권의 최대활용 등등, 그들의 속계산은 주권을 가진 국민을 어느 만큼 축재와 면책의 방패막이로 이용할 수 있는가를 실험하다 임기를 마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고도 뻔뻔스레 전관예우를 받고 있다. 제발 더도 말고 바람 찬 간이역에 하루만 서보라고요.
조간 신문에서 만난 詩 한 수가 나를 왜 이토록 흥분케 하고, 비약(?)하게 하는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정의는 시들었고 계속 속고 있다는 피해의식을 털어버릴 수 없어서다.
아프리카의 어떤 부족보다도 너그럽지 못한 주제에 그들을 비하하다니 …
자칭 지도자들이여! 제발 책을 읽으시라. 그러면 나 자신이 얼마나 모자라는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리라.
/이재중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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