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외에서 눈부신 태양을 마시는 마음이야 젊은이 못지 않지만, 단테가 말했듯이 “아무리 불행한 때에도 행복했던 시절을 회상하는 것은 더 큰 슬픔”이라기에 신이 인간에게 베푼 ‘망각’이라는 특권을 여행에서 맛봐야겠다는 일념 때문에 모처럼의 여행을 포기 하지 못한다. 더구나 5월의 ‘가정의 달’을 제대로 지내지 못했으니 그 보속으로 6월의 휴가철 시작을 골똘히 궁리한다.
6월은 온통 푸르름 일색이다. 사계절을 두루 교감하면서 그 어느 계절도 자기 차례를 건너뛰려 하지 않는 겸허한 자세를 배워왔음이다. 그것이 자연의 정연한 질서인데 유독 우리 인간들만이 노상 건너뛰려고 파괴를 일삼고 있음이 아닌가.
“자연은 위대한 외과의사다” 라고 말한 이가 있었건만, 우리들은 그 위대한 외과의사를 심심풀이하듯 죽이고 있으니, 이제 우리의 상처를 누구로부터 치료받을 것인가. 최근 중국에서 터진 지진의 대참사를 거울 삼을 때 지구가 숨차 있는 판에 우리가 숨찬 것은 당연하며 업보인 것이다.
정해진 차를 타고, 예약된 장소에서 자고, 또 다음 행선지로 가는 것은 출장이지 여행이 아니다. 林語堂은 여행자의 필수도구로서 “사물을 느낄 수 있는 마음과 사물을 볼 수 있는 눈을 잊지 말고 갖추어야 한다”면서 여행을 즐겁게 할 수 있는 세 가지를 제시한다.
첫째, 무엇을 배우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는 생각을 버릴 것. 여행안내원에게 코가 꿰어 다니는 것처럼 지루하고 피곤한 여행은 없다.
둘재, 화제의 추억을 찾는 여행은 그만두라는 것이다. 여행할 때 카메라를 메고 떠나면, 사람 아닌 카메라가 주인급이 되고 만다.
셋째, 빈틈없는 스케줄처럼 여행을 지치고 지겹게 만드는 것도 없다. 요는 유유자적하는 여행의 지혜를 가져보라는 충고일 것이다. 석가여래도 ”길을 갈 때는 나와 비슷한 사람이나 나보다 월등한 사람과 가는 것이 좋다.
어리석은 사람과 같이 가면 차라리 혼자 떠나는 것이 훨씬 좋다”하셨고, 루소는 국토를 보기 위해서 여행하는 것과 혹은 국민을 보기 위해서 여행하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다”하였으며, C.골도니는 “현명한 여행자는 결코 모국을 경멸하지 않는다”고 했다.
평소 지나치게 흐린 눈으로 내 나라의 현주소를 과소평가했거나, 더러는 괜히 남들 것을 돋보곤 하는 버릇들이 있다. 그런데 외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된다더니 과연 후회가 무겁게 가슴을 압박하던 경험을 나는 갖고 있다. 주인의식은 희박했으면서 주인행세만 하려고 했었구나 하는 모진 뉘우침에 부딪쳤었다.
여행은 어디까지나 매일 생활의 구속과 강제의 연속에서 마치 팽팽한 밧줄처럼 긴장된 중추신경을 풀어주는 것이라 생각된다. 행복한 생활의 본질은 근심으로부터의 해방이 아니던가.
모두들 바라로, 또는 밋밋한 능선을 따라 산행을 하는 것도 좋은 것이다. 거기 시야에 포착되는 사물마다 필시 정다움이 배어 있을 것이다. 그 자연과의 교감이 이루어지는 순간 우리의 마음이 혼건하게 껍질을 벗고 자연을 받아들이는 넉넉한 시간이기도 하고, 그리하여 호연지기(浩然之氣)를 키울 일이다. 그리하여야만 관조하는 눈이 트인다.
이때 불현듯 김용호의 시 <주막에서>가 떠올라 입맛 다시며 미소짓는다.
어디든 일찌감치 통한다는
길 옆 주막
그 수없이 입술이 닿은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나도 입술을 댄다
흡사 정처럼 옮아오는
막걸리 맛
여기 대대로 슬픈 노정(路程)이 집산하고
알맞는 자리 저만치
위엄있는 송덕비 위로
맵고도 쓴 시간이 흘러가고
소금보다 짜다는
인생을 안주하여
주막을 나서면
노을 비낀 길은 가없이 길고 가늘더라만
내 입술이 닿은 그 사발에
누가 또한 닿으랴
이런 무렵에.
여행은 이렇듯 느슨해야 하는 것. 도중 주막에라도 들려 남의 입술이 닿았던 이 빠진 낡은 사발에 막걸리를 가득 부어 마시는 멋스러움이 있어야 그게 진짜 여행이리라. 6월 화려한 장미의 계절에!
안산신문 webmaster@ansansm.co.kr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