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민족 대부분이 기댈 곳도 없고 바라볼 것도 없는 나날을 못 먹고 못 입고 서러워하며 등잔불 켜던 살던 시절, 한 달에 한 번씩 둥글게 떠오르는 보름달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위로였고 희망이었다. 한낮의 태양은 너무 찬란해 감히 오래 쳐다 볼 수 없었고 한밤의 혹성은 너무 멀어 가까이 할 수 없었는데 보름달은 오래 쳐다보아도 해처럼 눈이 부시지 않았고 가까이 있어 별처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었다. 어쩌면 보름달은 의지가지없는 고단한 백성들을 위해 그렇게 떠오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달을 우리는 ‘쟁반같이 둥근 달’이라고 노래했다. 쟁반은 접시보다 한국적(韓國的)이다. 접시는 보이게 웃지만 쟁반은 안보이게 웃는다. 접시는 깨끗하려고 하지만 쟁반은 희생하려고 한다. 접시는 자기를 나타내려고 하지만 쟁반은 자기를 숨기려고 한다. 쟁반에는 접시에 없는 얼룩도 있고 흠집도 있고 더러는 깨어짐도 있고 일그러짐도 있는 것이 늙으신 아버지 같지만. 그래도 쟁반은 접시보다 위대하다. 접시는 혼자 가지만 쟁반은 그 접시들을 품고 간다. 접시는 음식을 담지만 쟁반은 그 접시들을 담는다. 접시는 쟁반을 밟고 서지만 쟁반은 그 접시들을 안고 보호한다.
쟁반 같이 둥근 달은 둥글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넉넉지는 않지만 남의 것 탐내지 않고 남에게 손해 끼치지 않고 그저 무난하게 살던 사람들의 하늘에 보름달은 언제나 쟁반같이 크고 둥근 달이었다. 올해도 한가위가 되면 사람들은 보름달을 쳐다볼 것이다. 관연 그 달은 어떤 달일까. 쟁반같이 둥근달이 다이어트를 하고 금 간 접시같이 뜨는 것을 보게 되지는 않을까 생각 해 본다.
사람들이 많이 달라졌다. 잘 보이려고 자기를 가꾸는 데는 배나 힘을 쓰면서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희박하다. 마음들은 마치 금 간 접시 같아서 언제 깨질지 모르고, 한번 깨어지면 여러 개의 사금파리 칼날이 되어 찌를 곳을 찾는다. 개인도, 가정도, 나라도 그래서 위태하고 조심스럽다. 정당이나 노사는 물론이거니와 종교 간에도 도무지 양보가 없고 용서가 없다. 아전인수 격 집단이기주의도 극단적이고 언론보도도 모두 칼날 같다. 못 가진 자는 가지려 하고 가진 자는 더 가지려 함이 지나쳐 부딪치는 소리, 부서지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린다. 참으로 들리지 말아야 할 소리가 아니던가. 6.25때 남북 간 전쟁으로 깨어져 보고 IMF때 경제대란으로 깨어져 본 우리인데 웬만하면 쟁반같이 둥글게, 참고, 이해하고, 양보하고, 용서해서 한가위 보름달로 떠야 하는 것 아닐까.
미국 조지 부시 대통령이 어느 날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면서 브로콜리를 넣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한 일이 있었다. 이 사실이 입소문을 타고 언론에까지 보도되면서 ‘대통령은 브로콜리를 싫어한다’ 는 소문이 전국에 퍼지게 되었다. 애꿎은 피해를 입게 되어 화가 난 브로콜리 재배 농장주들이 대책을 세우기 위해 모였다. 논의 끝에 그들은 거친 항의 대신에 한 통의 편지와 함께 브로콜리를 가득 실은 화물차 한 대를 백악관으로 보내자는 결정을 했다.
“대통령님, 이것은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아 준 미국 사람들이 즐겨 먹는 채소입니다. 단백질이 많고 철분이 함유 되어 있어서 몸에 상당히 이롭습니다. 생각을 바꾸셔서 이것을 즐겨 드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편지내용과 선물사건이 다시 언론에 보도 되면서 브로콜리는 엄청난 홍보효과를 거두게 되었고 브로콜리 농장주들은 전보다 더 많은 수익을 거두게 되었다고 한다.
올해도 한가위 보름달은 말할 것이다, 둥글게 살라고.
둥글게 살지 못했기에 바라보는 둥근 달, 둥글게 살아 보겠다고 다시 바라보는 쟁반같이 둥근 달. 달 아래 늙은 대추나무에는 올해도 단맛을 더해가는 대추가 붉은 웃음을 짓는다. 감나무에서는 달빛을 받아 더욱 고운 빛으로 익어가는 감이 등불처럼 우리의 마음을 밝힌다. 우리가 비록 우주 탐사시대에 살고 있기는 하지만 늘 보는 그런 것들은 여전히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달에는 60년 이내에 고갈 될지도 모를 석유와 천연가스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헬륨3이 무궁무진하다고 한다. 1톤에 40억 나간다는 이 헬륨3을 캐서 지구로 실어 오겠다며 강대국들 간의 경쟁도 치열한 것 같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마음들을 쟁반처럼 둥글게 만들 수 없다면 그 어렵던 시절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던 사람들의 얼굴을 비춰주던 달빛 한 점만 하겠는가. 이번 추석에는 우리 민족 모두가 서로를 용납하고 쟁반처럼 둥글게 뜨는 달이 되기를 빌어 본다.
/그사랑 교회 목사
최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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