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30분,「관광증」을 받아 목에 걸고 아래층으로 내려가 출경수속을 마친 후 출입문을 통해 건물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앞 유리에 번호를 써 붙인 버스14대가 번호 순서대로 나란히 서있었다. 내게 배정된 버스는 11번이었다. 버스 안에는 벌써 많은 관광객들이 자리를 잡고 있어 빈자리를 골라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8시에 출발 하게 되어있는 버스가 “군사당국간에 연락차질로 늦어지고 있다”고 하더니 9시에 1번 버스부터 차례로 열을 지어 출발했다. 버스는 아스팔트 4차선으로 잘 포장된 도로를 따라 비무장지대를 달리면서 군사 분계선을 넘어 북으로 향했다.
15분후 버스는 「북측남북출입사무소」에 도착했다. 모두들 내려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 곳에서 똑같이 검색대를 거치고 입북수속을 마친 후 밖으로 나가니 우리가 타고 온 버스들이 번호 순서대로 나란히 서있었다.
그 곳에서 북측안내원이 버스에 탑승했는데 그는 반소매 와이셔츠에 넥타이를 매고 왼쪽가슴에는 김일성 배지를 패용 하고 있었다. 버스는 개성을 향해 출발했고, 마이크를 잡은 북측안내원은 환영한다는 말과 함께“북과 남이 화해협력으로 하나가 되면 큰 힘을 발휘하게 될 것” 이라면서 그 좋은 예로 개성공단을 꼽았다. 또 “피곤하시겠다.” 면서 노래도 불러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개성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송악산의 아름다운 자태가 눈앞에 전개되었다. 드디어 개성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버스는 송악산을 옆으로 끼고 달리면서 박연폭포로 향했다. 도중에 구절양장같이 구비 구비 돌아가는 정명사 고갯길의 2차선 도로를 따라 위태로운 퍼레이드를 펼치던 버스들은 드문드문 보이는 50년대의 농가주택을 지나 개성시내에서 40여리나 떨어져 있는 박연폭포에 도착했다.
기생 황진이와 서화담의 사랑이야기로 유명하고 금강산의 구룡폭포, 설악산의 대승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 가운데 하나라는 박연폭포는 그날따라 날씨가 가물어서 그런지 떨어지는 물줄기가 허약하기 그지없어 그동안 마음속에 동경해 오던 것이 허상처럼 느껴졌다.
개성시내로 들어온 우리 일행은 개성 남대문 뒤편 자남산 입구에 있으며 500명 수용규모의 대형민속요리 식당인「통일관」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측 봉사원들의 서비스를 받으며 개성전통음식이라는 「13첩 반상기」의 점심을 먹었는데 개성음식 특유의 정갈하고 깔끔한 맛은 느낄 수가 없었다.
점심 식사 후 우리일행은 고려 말의 충신 정몽주가 이성계를 문병하고 돌아가다 그의 아들(후의태종)이방원 에게 철퇴를 맞아 숨진 곳 이라는 선죽교를 비롯해서 정몽주가 살던 집터인「송양서원」과 고려시대 최고의 국립교육기관인 성균관 을 개조해 만든 박물관을 비롯해서 기념품 판매장등을 돌아보고 개성공단으로 향했다.
개성시내의 넓은 도로를 우리일행이 탑승한 버스 14대가 열을 지어 퍼레이드를 벌였는데, 큰길로 통하는 골목 요소 마다 정복을 입은 보안서원들이 지켜 서서 시민들을 통제 하는 것 같았고, 큰길가 에는 관공서 인 것 같은 저층 건물들이 줄지어 서 있었는데 이곳을 지나는 시민들은 걷거나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었으며 우리들에게는 무관심 한 듯 바라보지를 않는다.
개성공단은 2000년8월「현대아산」과 북측「아태,민경련」이 개성공업지구 2,000만평 개발을 합의 한 후, 현재 1단계인 100만 여 평에 건축한 공장에서 1만 여명의 북측 근로자들이 종사하고 있는데, 나머지 2~4단계의 개발 사업이 완료되면 개성지역은 35만 명의 북한근로자와 3만 명의 남측근로자가 2,000여개의 기업에서 연간200억 달러의 제품을 생산하고 남북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계적인 경제평화특별도시로 발전할 것이라고 하며 이곳에 공급할 전력의 송전탑과 전선공사도 완료 되었으나 건설공사는 중단 상태에 있는 것 같았다.
개성시내를 관광하면서 다음 3가지를 보지 못했다. 그 중 하나는 산에 나무가 없는 것이었다.「북측남북출입사무소」를 출발해서 개성으로 향하는 도로 양쪽 산에는 나무가 하나도 없는 민둥산이었다. 또 하나는 폭이 넓고 잘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 위를 통행하는 차량이 한대도 없었으며 넓은 네거리에는 교통 신호등이 없었다. 세계 여러 도시들을 다녀 보았지만 이런 곳은 처음이었다.
우리들이 살아온 50~60년대의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 관광객들은 안쓰러워했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풍요로운 생활에 우월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어려운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것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인내심과 내성이 있다. 그러므로 좀 더 어려운 사태가 닥치더라도 크게 잃을 것이 없는 것이다.
반면에 그동안 풍요로움과 스피드 시대 속에서 살아온 우리들은 참을성과 내성이 없어 조그마한 어려움이 닥쳐도 그 고통을 이겨 내기가 힘들다. 당장 며칠간 전기 공급이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길경우, 수십층 고층 아파트를 오르내리기가 어렵고, 수돗물이 올라가지 않아 취사가 어렵고 화장실도 문제가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산업 시설은 마비 될 것이다.
앞으로 6.25전쟁과 같은 불행한 사태는 없어야한다. 그러기 위해 남. 북간의 화해협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것은 누가 일방적으로 누구를 돕고, 도움을 받는 형식이 아니라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 상생(相生)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재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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