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국장을 가로질러 설치 해 놓은 여러 곳의 심사대 앞마다 승객들은 길게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와 아내는 외국인용 심사대 줄에 가서 섰다.
이번 여행은 일생동안 인생의 길동무가 되어 주었고, 어려울 때마다 기댈 수 있었고,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걱정 해 주고 위로 해 주고 용기를 주며 같이 살아온 아내가 며칠 전 칠순을 맞았는데 다리가 불편해서 많이 걷지 않도록 휴양지인 이곳을 택해 여행을 오게 된 것이다.
잠시 후 내 차례가 되어 심사대 앞에 섰다. 먼저 여권과 입국 신청서, VISA등을 확인한 후에 심사관은 양손의 둘째손가락을 약품에 적신 스탬프에 찍게 한 다음 지문채취기에 올려놓으라고 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 이더니 촬영기 앞에 서서 얼굴 촬영을 마친 후 통과해도 좋다고 손짓을 했다.
나는 심사대를 통과 하자 그 자리에 서서 아내를 기다렸다. 그러나 아내는 무엇인가 문제가 생긴 듯 손짓 발짓을 해 가며 설명하기에 바빴다.
나는 다시 심사대로 돌아가 사정을 들어 보니 아무리 해도 지문이 채취되지를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사대를 통과 시켜줄 수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우리들의 상황을 열심히 설명해 주었다. “저 여자는 나의 아내인데 금년에 한국 나이로 70세를 맞았기 때문에 한국 풍습에 따라 축하 겸 위로 여행을 온 것이다. 젊었을 때 일을 많이 해서 지문이 마모된 것 같으니 이해해 주었으면 고맙겠다.”고 사정을 했다. 그러나 몸무게가 100kg은 훨씬 넘을 것 같은 심사관인 그녀는 한숨만 내쉴 뿐 “OK”를 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사정을 했다. “고국에는 꽤 많은 재산도 있다. 그리고 정당한 절차와 인터뷰를 통해 입국비자도 받았다. 그런데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가 있으면 직접 주한 대사관에 확인해 보라. 이 나이에 이곳에 불법체류자가 되기 위해 왔다면 말이 되는 소리인가?”면서 열변을 토했다.
내가 말하는 동안 잠자코 듣기만 하던 그녀는 머리를 짚고 고민하더니 “노-굿” 한마디를 하고는 일어서서 자기를 따라 오라면서 옆 사무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그곳은 이민국 재심사실이었다. 25평쯤 되는 사무실에 직원들이 근무하고 있었는데, 재심을 받기 위한 7~8명의 승객들이 대기용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중에는 파나마인도 있고 맥시코인도 있었다.
우리를 데리고 온 여자 심사관은 상사인 듯한 남자에게 일건 서류를 넘겨주면서 경위를 보고 하는 것 같았다. 서류를 건네받은 남자는 어디론가 나가 버렸다. 추측하건데 주한 미국대사관에 확인하고 상부에 보고해서 그 지시를 받으러 간 것 같았다.
하릴 없이 우리도 대기석에 앉아 기다리다가 아내가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면서 문을 열려고 했으나 문은 열리지를 않았다. 그때 카운터에 앉아 있던 직원이 “어디를 가려하느냐?”고 묻고 카운터에서 버튼을 누르니 그제야 “덜컥”하면서 문이 열렸다.
그리고는 아내가 화장실에 가는 동안 직원 1명이 감시를 했다. “이제 우리는 완전히 감금당했구나.”하는 실감이 났다. 그와 동시에 걱정이 태산 같았다. 외부와 단절된 이역만리 타국에서 우리 편을 들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떻게 하던지 입국 심사대를 통과해야 화물로 탁송한 짐을 찾고, 공항 입구에서 현지 가이드와 미팅을 할 텐데……. ‘짐은 어떻게 됐는지?’, ‘현지 가이드는 어떻게 만날 것인지?’, ‘앞으로 관광은 어떻게 될 것인지?’ 모두가 답답하고 한심스러웠다.
그렇게 한 시간쯤 지났을까? 서류를 들고 밖으로 사라졌던 상사인 듯한 직원이 문을 열고 우리를 불렀다. 그는 아내를 다시 심사대로 데리고 가더니 흰색 크림 같은 약품을 손가락에 바르게 한 후 지문채취기에 올려놓으라고 했다.
그래도 결과가 만족하게 나타나지 않는 듯 고개를 갸웃 거리다가 그 사유를 서류에 기재하고 싸인을 하더니 우리에게 “수고했다”면서 심사대를 통과시켜 주었다.
그 곳을 통과 하자 우리는 짐 찾는 곳으로 부지런히 걸어갔다. 그 곳에는 현지에 주재하고 있는 대한 항공 여직원이 우리들 짐을 찾아놓고 우리를 기다리다가 반색을 하며 맞아 주었다.
그녀는 “그런 곳에를 무엇하러 가셨어요?”하고는 다행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이곳 현지 가이드 분이 한참동안을 기다리다가 다른 관광객들의 관광일정을 맞추기 위해 떠나면서 핸드폰 전화번호를 남겨놓았어요. 두 분이 나오시면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으니 잠시 후면 이곳으로 돌아올 거예요.”
조금 있으니 차량 한 대가 관광객 몇 명을 태우고 돌아와서 우리 앞에 멎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모두들 박수를 치고 환영을 해 주었다. 따뜻한 동포애를 느낄 수 있는 순간이었다.
이번 호놀룰루 국제공항에서의 경험을 통해 나는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첫째는 약소국의 비애였다. 우리가 러시아와 같은 강대국이었어도 그런 대우를 받았을까?
둘째는 심사관인 관리들의 체계 있고 합리적인 업무태도였다. 우리 공무원들이 그들과 같은 근무자세로 일을 했다면 국민들에게 불량식품을 먹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재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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