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경제 상황은 IMF때 보다 더욱 어렵다고들 한다. 세계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서브프라임」금융 위기에, 그 끝을 모르게 치솟기만 했던 석유류와 원자재류 등의 파동, 미제 쇠고기 및 멜라민 문제로 인한 사회불안, 날만 새면 치솟는 물가로 소비 심리가 위축 되면서 서민 가계가 어려워지고 수많은 기업들과 중소 자영업들이 쓰러지고 있다.

1973년은 우리가 처음 경험했던 제 1차 오일 쇼크와 고철파동이 함께 우리 경제계를 덮친 해였다. 그 때 가장 심한 영향을 받은 것은 에너지와 고철을 주원료로 사용하는 주물 산업이었다.

소자본(小資本)으로 주물 부속품을 주로 사용하는 위생, 난방 공사업을 경영하던 나는 하루아침에 집과 모든 것을 내 놓고 거리로 나 앉는 처지가 돼 버렸다. 몇 차례나 재기를 해 보겠다고 발버둥 쳐 보았으나 모두 허사였다.

끝내는 아이들 돌 반지까지 팔아서 그 당시 한창 건설 중이던 포항제철공사 현장을 찾아갔으나 몽땅 사기를 당하고 다가오는 추석날,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기는커녕 귀성 버스로 떠나는 행복한 얼굴들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다가 휑하니 비어있는 현장으로 돌아와 서서 눈물짓던 일이 바로 어제일 같이 생생하다.

이 때, 객지에서 혼자 떠도는 나를 찾아 따라온 아내가 하루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당신이 잘 알아서 하겠지만, 당신이 하는 일이 내가 보기에 앞으로는 남는 것 같지만 뒤로는 밑지는 것 같으니 잘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떠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사업 실패의 직접적인 원인은 물론 석유류와 고철 파동이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내가 하는 사업이 「건설회사 하청업」이라는 것이 문제였다.

건설회사에서 도급한 원도급금 중에서 이익금으로 몇 %를 먼저 떼어놓고, 그 나머지 금액을 가지고 하청업자 간에 경쟁을 시켜 그 중 최하위 금액으로 하도급 공사업자를 결정하니, 겨우 명맥을 유지해 나가다가 예기치 못했던 파동을 겪게 되면 손을 들고 쓰러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아내와 함께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처자식과 내가 먹고사는 것이었다. 이것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기릴 처지가 아니었다.

소화기 판매업을 시작한지 두 달쯤 지난 어느 날이었다. 소화기 배달을 마치고 대현동 이화여대 입구 W제과 앞을 지나고 있었는데 “이거 이선생 아니오?” 하면서 가로수 그늘 의자에 앉아 부채질을 하던 노인이 일어서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자세히 보니 그는 바로 W제과 L사장이었다. 7년여 전에 내가 공직생활을 하면서 민원업무를 맡아 보았을 때 그가 이 건물을 지었는데 이웃 사람의 근거 없는 진정과 투서 등으로 많은 곤경을 겪었었다. 그 때 현장 조사를 하면서 사정을 알게 된 나는 그에게 힘닿는 한 도움을 주려했고 위로도 해 준 일이 있었다.

W제과 안으로 나를 데리고 들어간 그는 음료수를 권하면서 나의 근황을 물었고, 나는 솔직하게 내 처지를 이야기 해 주었다. 그러자 그는 “마침 잘 됐다.”면서 “요즘 소방법이 강화되어서 소방시설을 해야겠는데 이선생이 맡아서 해 달라”고 했다. 공사 견적을 산출해 보니 1,600여만 원이 되었다. 그러나 나는 “수중에 한 푼도 든 것이 없어 성의는 고맙지만 죄송하다”면서 사양을 했다.

그러자 그는 “그런 문제라면 걱정할 게 없다”면서 “일만 잘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 거금 600만원을 현금으로 주면서 “우선 이것을 가지고 필요한 자재와 공사비용으로 쓰라”는 말과 함께 빵을 한 아름 싸서 “집에 아이들 갖다 주라”면서 주었다.

너무나 고마운 그의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으나 공사를 잘해서 보답하겠다고 마음먹고 최선을 다했다. 드디어 공사를 마치고 시운전을 하던 날 그는 동네 사람들을 다 모아 놓고 직접 소화전을 방수하는 시범을 보이기도 했다. 그 후 L사장의 도움으로 많은 공사를 하게 되었고 드디어 내가 재기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하게 되었다. 다만 아쉬운 것은 L사장이 이제 고인(故人)이 되어 찾아뵙지 못하는 것이 죄스러울 뿐이다.

재기하는데 있어, 로또 당첨 바라듯 가슴에 바람을 안고하면 100% 실패한다. 또 의타심을 가지고 남을 의지하려고 해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타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 초심(初心)으로 돌아가야 한다. 과거에 어떤 화려한 경력을 가졌었건, 또는 어떤 고학력을 가졌건, 그런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직 나와 처자식이 어떻게 하면 굶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뛰어야 한다.

둘째 : 실패한 원인을 냉철하게 분석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 두 번의 실패는 할 수 없지 않은가?

셋째 : 신용을 회복해야 한다. 일단 실패한 나를 믿어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넷째 :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죽기를 한 하면 못할 일이 없다. 그래서 병법에도 병가상사(兵家常事J)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은 원래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일은 보통 있는 일”이라는 뜻인데 “실패는 흔히 있는 일이니 낙심할 것 없다.”는 말로도 사용한다.

끝으로 이 짧은 글이 어려운 상황에서 실패한 모든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씨름판에 있어서도 두 발로 땅 바닥을 딛고 힘을 주어 서 있어야지 섣부르게 잔재주를 부리려 하다가는 백전백패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재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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