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박규채 논설위원 |
||
백화점에 가서 물건을 살 때도 백화점 카드를 이용하면 5%라도 할인이 되니까, 웬만한 도시 생활자들은 유명 백화점의 회원 카드를 한두 개쯤은 가지고 있다. 카드를 하나 만들려면 자신의 신용을 입증하기 위해 가족 사항이나 직장에 관한 사항이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집 전화번호나 직장 전화번호, 직장에서의 직위, 수입정도까지도 부득이 알려줘야만 한다.
또 요즘에는 호텔이라는 공간이 비즈니스의 공간으로 자주 활용되고 있기때문에 바이어 상담이나 작은 모임같은 것도 호텔에서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호텔의 이런 저런 부대시설을 이용하는 일반인들도 많이 늘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호텔들이 헬스장이나 수영장 등의 시설물을 호텔 회원제로 관리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따져 보면 도시에서 사는 중산층 생활인만 해도 몇개 이상의 회원 카드를 갖게 마련이다. 백화점 카드, 유명의류회사 카드, 은행에서 발행하는 현금 카드, 신용 카드 두어 개 … 또 요사이 새로 등장한 직불 카드까지 두루 다 갖추고 있는 경우가 많다. 조금 더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골프장 회원권, 호텔헬스 클럽 회원권, 콘도미니엄 회원권, 회원제로 운영하는 고급 식당이나 술집의 회원권에 이르기까지 회원권의 종류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을 것이다.
필요하다면 개인의 신상 기록에 대해서는 그야말로 아낌 없이 숨김 없이 알려줘야할 의무와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뿐인가, 자가운전을 하는 운전자들의 경우, 직장이나 집 근처에 정해 놓고 다니는 주유소나 특정 회사의 주유소를 드나들다 보면 주유소마다 카드를 만들라고 권하기도 한다. 그 카드를 만드는데에도 최소한 차량번호와 직장 전화번호, 집 전화번호가 필요하다. 개인에 관한 신상 정보가 노출되는 곳은 이런 곳만이 아니다.
해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의 동창회에서는 동창생들의 명부나 동창회 수첩을 만들어서 전해 주는데, 웬만한 고등학교의 동창생 명부는 멋지게 장정도 하고 회원의 사진과 함께 가정과 직장에 관한 정보까지도 소상하게 기록해두고 있다. 뿐만 아니라 향우회 명단에도 이사를 가면 이사를 갔다, 집을 샀으면 집을 샀다는 개인 정보를 보내줘야 되고, 군대를 다녀온 분들은 향군 관련 기관에댜가 회원으로서의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무슨 예술 단체나 친목 단체에 가입을 해도 입회 원서에다가 개인과 가족의 정보를 기어하게 되어 있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니까 정보가 유출된 만큼 들어오는 것도 많다. 퇴근길에 우편함을 열어 보면 유명 의류사에서는 여름 신상품 안내 카탈로그가 들어와 있고, 동네의 각 대리점마다 ‘저희 대리점으로 한번 와주십시오’하는 카탕로그와 함께 상품 소개서들을 보내오고, 컴퓨터 회사에서는 귀댁 자녀의 대학 입학을 축하 한다는 인사말과 함께 어디서 주소니 이름, 게다가 남의 집 자녀들의 대학 진학 여부까지 알아냈는지 최신 컴퓨터 모델을 보내 주고 있다.
누군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우리집 가정의 변화 상황을 소상히 알고 있다는 것은 사실 좋은 일이고, 나쁜 일이고를 떠나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생일이 되면 용케 알고 카드까지 보내 오는 업체들도 많이 있지 않은가.
이처럼 우리는 개인과 가정의 정보를 어쩔 수 없이 유출하고 또, 그만큼 사생활을 침해받고 있다. 그러한 정보를 관리 책임자인 백화점 업체들이나 호텔, 각종 신용 카드 회사들이 잘 활용하고 그 관리의 헛점을 노출시키지 않는다면, 개인의 생활 정보는 보다 합리적이고 경제적인 소비 생활을 유도하기 위한 각 기업들의 생산라인에도 상당히 중요한 자료로 쓰일수 있고, 그 밖에도 여러모로 쓸모 있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 등지의 선진국에서는 이미 그러한 생활 정보를 다방면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구축해 놓고 있는 실정이다. 각 유통업체에서 가장 많이 팔려나가는 물품도 어느 세대를 중심으로 호평을 받고 있느냐, 싫다면 왜 싫으냐 하는 간단한 설물 조사를 데이터화시켜서 다음 시장의 판도를 분석하고 새 상품을 개발하는 데 결정적으로 이용하는 기업들이 생겨나고 있고, 그러한 정보와 분석에 입각한 다음 시장의 판도를 비싼 값으로 받아들이는 대기업들도 많이 있는 걸로 알고 있다.
사실 정보화 사회라는 것이 그다지 멀리 있는 것은 아니다. 각종 첨단 장비와 시스템이야 우리가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고 또 공부해서 따라가면 그만이지만, 정보를 활용하고 또 안전하고 믿을 수 있게 유통시키는 정보 흐름의 과정을 우리 사회가 통제할수 있느냐 없느냐가 바로 올바른 정보 사회로 가는 정신적인 기틀이 되어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따라서 요즘같은 정보 시대에는 개인의 사생활과 가정의 안전을 보장받을수 있는 장치가 반드시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벌써부터 각 나라마다 중요한 정보들이 다국적 해커들에 의해 없어지고 침투당하는 정보 통신상의 사고가 많이 생겨나고 있고, 남의 신용 카드 번호를 도용한 이런 저런 금융 범죄들도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해커들의 등장뿐만 아니라, 연전에 발생한 지존파 일당의 사건만봐도 그들이 우연히 입수하게 된 어느 유명 백화점의 우수 고객 명단에서 본격적인 사건의 모의시험을 결심했다는 것은 이미 다들 알고 있는 끔찍한 사건의 동기이다. 바로 이런 지존파 사건의 시작은 아직 제대로 뿌리 내리지 못한 우리 사회의 정보화 단계에 하나의 큰 교훈이 될것이다. 기술도 좋고, 편하고 빠른 문명 사회도 좋지만 우선은 남의 개인 생활을 철저히 보호하고 존중해 주는 정보 사회의 기본적 덕목부터 살려 나가야 할 것이다.
박규채 논설위원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