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중 논설위원

지금은 예비역 장성인 Y씨가 일선(一線) 여단장(旅團長)으로 근무 하던 때의 일 이라며 들려 준 이야기다.
그때 여단장 숙소에서 부대까지 가는 넓은 들판은 온통 호박 넝쿨로 덮여 있었다. 장병들의 부식용과 사육하는 가축들에게 사료로 주기 위해 심어 놓은 것이다.

하루는 출근 하던 길에 ‘지프’ 차를 세우고 호박 밭을 돌아 보았더니 한참 솟아 나기 시작한 연하디 연한 순들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그것을 보고 있노라니 시골 태생인 Y장군의 어린 시절, 어머니가 호박순을 밥 솥에 쪄서 된장으로 쌈을 싸 주시던 생각이 떠오르면서 그때 먹던 호박순 쌈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저녁에 숙소로 퇴근한 Y장군은 당번병(자녀들 학교 문제 등 으로 가족이 부대에서 함께 살지 못하고 병역 의무를 이행 하기 위해 입대한 사병 중에서 차출해, 여단장 숙소의 청소며, 아침, 저녁 식사문제, 세탁을 하게 했는데 초등학교 교사로 있던 H상병이 담당하고 있었다)을 불렀다.

Y장군은 “H상병, 자네는 도시 출신이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이 호박순들을 밥 할때 밥 솥에 넣고 쪄 보게, 그래서 쌈장에 싸 먹으면 아주 휼륭한 반찬이 될걸세”

다음 날 아침, H상병은 호박순을 쪄서 밥상에 올렸다. 옛날 어머니가 해 주시던 것 만은 못했지만 그런대로 먹을만해서 그는 호박순을 싸서 밥 한그릇을 다 비웠다.

그런 일이 있고 난 후, H상병은 아침 저녁 매끼 마다 호박순을 쪄서 여단장 밥상에 올렸다. 그렇지 않아도 여단장님이 무슨 음식을 좋아 하실까? 하고 고심 하던 H상병에게는 호재(好材)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는 동안 여름이 지나 호박순이 억세어져서 먹을수가 없었지만 H상병은 아랑곳 하지 않고 매 끼마다 밥상에 호박순을 정성껏 쪄서 올렸다.

처음에는 맛있게 먹었던 Y장군도 매 끼마다 빼 놓지 않고 밥상에 올라 오는 호박순을 보고 질린데다가 철이 지나 억세져서 먹을 수 없는 것까지 밥 상에 올라 오니 고역이 아닐수 없었다.

처음에는 H상병을 불러 놓고 “야, 임마 이 걸 사람 먹으라고 상(床)에다 올려 놓은 거냐? 네가 좀 먹어봐라! 이게 짐승먹는 거지 어디 사람이 먹는 거냐?” 하고 야단을 처 주려고도 했다.

그러나 Y장군은 이내 마음을 접었다. 그렇지 않아도 자기를 위해 극진히 노력하는 그가, 알면서 일부러 그랬을 리는 없을 것이고, 배울 만큼 배웠고, 교육계에 몸을 담고 있던 그에게 상처를 줄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Y장군은 호박순들을 종이에 싸 들고 출근을 해서 부대 쓰레기통에 버리곤 했다는 것이다.

이때 이야기를 함께 듣고 있던 K사장이 끼어 들었다. “그런 것은 진작 본인에게 가르쳐 주셨어야지, 좀 잘못 하신것 같네요” 그러자 Y장군은 “조금만 이야기를 더 들어 보라”면서 말을 계속 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휴가를 다녀온 H 상병은 귀대 인사를 하러 Y장군 앞에 들어오더니 무릎을 끓고 앉았다. 그리고는 “장군님, 그동안 제가 큰 잘못을 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황당한 일을 당한 Y장군은 그 에게 연유를 물었더니 H상병이 털어 놓은 이야기는 다음과 같았다.

휴가 온 아들에게 부모님은, 그중에도 특히 어머니는 아들의 병영(兵營)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궁금 하셧던 것 같았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끝에 호박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어머니는 “아이구, 저걸 어쩌면 좋으냐?”고 큰 걱정을 하셨다. “왜 그러시냐?”고 묻는 아들에게 “철이 지나면 호박순이 쇠서 못 먹는 건데 그걸 계속 해서 장군님의 밥상에 올렸으니 어쩌면 좋으냐?” 면서 “귀대 하는 데로 장군님께 용서를 빌라”고 당부를 했다는 것이다.

H상병은 “제가 너무 몰라서 그랬습니다. 용서 해 주십시오.” 하면서 눈물까지 흘리 더란다. Y장군은 그러는 그의 어깨를 두드려 주면서, “자네가 무슨 잘못을 했는가 도시에서 태어나 공부나 하고 교편 생활을 하던 사람이 어떻게 그런것 까지 알수 있겠나” “괜찮아, 괜찮아” 하면서 그를 일으켜 세웠다.

Y장군은 “내가 K사장처럼 월급을 주고 취사 책임자로 채용한 사람이라면, 야단도 치고 책임을 물을 수 있었겠지만, 국토 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위해 입대한 사람에게 그런것 까지 얘기 할수는 없더라”고 말했다.

후일담 이지만 H상병은 제대후 계속 교편 생활을 하면서 지금은 어느 초등학교 교감 선생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예비역으로 편입된 Y장군에게 “아버님”이라 부르면서 서로가 대소사(大小事)에 참여 하면서 지내고 있다고 한다.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한결 같이 “오늘처럼 나 밖에 모르는 각박한 사회에는 Y장군 같은 사람들이 많이 있어야겠다”고 아쉬워 했다.

이제 6.2 지방선거가 앞으로 한달도 남지 않았다. 출마한 후보들은 마치 “하늘의 별이라도 따다줄것” 처럼 앞, 뒤 가리지 않고 공약(公約)을 남발 하고 있다.

그러나 한표를 행사할 국민들 중에 이말을 곧이 들을 사람도 없다. 이제까지 속아서만 살아온 그들이기 때문이다.

입에 발린 말은 안해도 좋으니 서로를 이해 하고 배려해 주는 Y장군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이 사회는 좀더 살만한 세상이 될수 있지 않을까?

그나마 선거 분위기가 과열되지 않고 있는 것은 천안함이 침몰 한후 내내 국민들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는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칡흙 같은 어둠과 차가운 물속에서 죽움의 공포와 맞서야 했던 우리 병사들의 처참했던 몸부림’의 모습을 국민들은 잊지 못하는 것이다.

요즘 돌아 가는 시국의 모습을 Y장군은 어떠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그것이 궁굼하다.

이재중  논설위원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