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문화를 꽃 피운 가야국의 수도 김해시가 2007년 책의 도시를 선포한 후 전국의 집중 조명을 받고 있다. 김해시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한 달 평균 5~6개의 지방자치단체와 교육청, 일선학교가 김해를 방문하고 있고 어떤 책이 올해의 책으로 선정될 지 출판업자들 마저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이다.

김해시는 책의 도시 선포 4년 만에 도서관 80여개를 만들고 어디서나 책을 빌리고 반납할 수 있는 완벽한 타관대출 서비스까지 갖춰 우리나라 최고의 도서관 인프라를 구축했다.

한편 안산시는 김철민 시장 취임 후 1개동 1개 도서관 건립을 골자로 하는 도서관 기반 시설 확충하기 위한 사업을 서두르고 있다. 당장 내년까지 일동과 본오1동 주민자치센타를 리모델링 해 공공도서관을 마련하는 등 임기 내 도서관이 없는 14개 동에 도서관 건립을 계획 중이다.

하지만 도서관 숫자를 늘리는 양적인 확대와 함께 기존 도서관끼리 네트워크  강화하고 효율적인 운영방법에 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번 편은 김해시 도서관 운영사례를 통해 그 해답을 알아보고자 한다.

■ 책의 도시 선포배경

△ 김해는 매달 인구가 1,200명씩 늘어나는 젊은 도시다. 진영한빛도서관에서 아기와 함께 책을 읽고 있는 엄마들. 이들도 김해로 이사온 지 몇 달 되지 않았다. "가까운 거리에 도서관이 있어 다행이라며 책 읽는 아이로 키우고 싶다"고 다짐했다.

김해시는 지방도시로는 이례적으로 인구가 매년 늘어나는 몇 안되는 도시 중 하나다. 매달 1 천여 명씩 1년이면 1만명씩 인구가 늘어나고 있다. 인구 증가의 원인은 중소규모 공장 설립과 부산에서 베드타운(주거기능을 담당하는 큰 도시 주변의 주택지역)을 찾아 김해로 이동하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김해시는 중소기업 공장 위주의 산업구조, 다문화 가정과 외지인이 많은 인구구조 등 많은 부분이 안산시와 닮았다.

 김해시가 책의 도시를 선포하게 된 배경은 급격히 변화하고 있는 시의 생산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2005년 인구 40만을 넘어선 김해시는 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느 도시들처럼 지방 중소 도시로 발전 전략을 세우기에는 가야국 수도라는 역사성을 져버려야 했고 역사문화 도시로 키우기에는 외지에서 유입된 인구가 많아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다.

역사 문화의 도시와 공업도시 사이에서 고민하던 김해시는 결국 시의 정체성은 시민의식이 결정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시민들이 책을 읽고 토론하는 문화가 성숙하다 보면 어떤 발전 방향으로 끌고 나갈지 스스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판단으로 ‘책읽는사회문화재단’과 함께 사회적 책읽기 문화 확산전략을 세웠다. 이 계획은 중기 목표로 김해시내 100개 도서관을 만들고 2015년엔 유네스코로부터 책의 수도로 지정받는다는 장기 비젼을 담고 있다.

■ 4년 만에 도서관 80개 만들어
책의 도시를 선포한 2007년 김해에는 시립도서관 4개와 대학도서관 4개가 있었다. 시민들이 책을 쉽게 빌려 볼 수 있는 도서관을 늘리는 것은 당면한 선결 과제였다.

김해시는 우선 시립인 화정글샘 도서관(2008년 10월 개관)과 진영 한빛 도서관(2009년 11월 개관)건립을 서두르는 한편 각 마을마다 작은 도서관 설립을 지원하고 나섰다. 도서관을 짓기까지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드는 반면 작은 도서관은 적은 예산을 투입해 접근성이 높은 도서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작은 도서관은 85㎡이상의 공간과 인력이 확보된 지역에 도서관 설립자금 5,000만원과 매달 운영비 200만원을 지원하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다. 그러자 아파트 단지를 중심으로 도서관 설립 신청이 줄을 이어 2008년 8개의 작은 도서관이 문을 열었고 현재 김해시내 곳곳에 28개의 작은 도서관이 운영 중이다.

뿐만 아니라 공공기관이나 다중이용시설에 도서관 설치를 의무화해 ‘미니 도서관’ 33개를 만들었고 다소 실험적이긴 하지만 버스 정류장에 서가를 설치한 ‘참 작은 도서관’ 6개, 주요 명산 전망 정자에 50권 이하의 책을 비치하는 ‘정자 도서관’도 3개 만들어 책의 도시 선포 4년 만에 크고 작은 도서관 80개를 확보했다.

한 김해시민은 "부산 살다 왔는데 김해는 어디를 가나 도서관과 책이 있어서 놀랐다. 보건소에서 기다리는 시간동안 책을 보다가 다 못 본 책은 아파트 관리실에 있는 작은 도서관에서 빌려 보기도 한다"며 무엇보다 가까이서 편리하게 책을 빌려 볼 수 있다는 것을 가장 큰 장점으로 꼽았다.

■ 타관대출 '책두레 서비스'

△ 김해시내 도서관을 다니며 책 배달일을 맡고 있는 배달업체 직원. 34군데 도서관을 다 돌기 위해서는 하루가 빠듯하다며 무거운 책 가방을 끌고 총총히 사라졌다.

김해시는 공공도서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서량이 부족한 작은 도서관 이용객들의 도서 선택권과 자료이용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타관 대출 서비스를 도입하기로 했다. 접근성에 중심을 둔 작은 도서관을 늘리다 보니 부족한 장서량을 보완할 수 있는 타관대출 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책두레’라는 이름의 이 서비스는 가까운 도서관 어디서나 김해시내 공공도서관과 작은 도서관이 소장한 책을 빌리고 반납할 있게 만든 것이다.

김해시는 책두레 서비스를 원활하게 시행하기 위해 먼저 도서관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고 4개 도서관이 소장한 모든 도서의 바코드를 교체했다. 또한 도서관을 순회하며 도서를 배달할 배달전문 업체와 업무협력 계약을 체결했다.

시스템 통합을 위해 초기 비용이 많이 들었으나 현재는 매년 5,000만원의 예산으로 책 두레 서비스를 진행하고 있다. 시로부터 배달 업무를 위탁받은 배달업체가 시립도서관 6곳과 작은도서관 28곳에서 반납과 대출 도서를 받아 매일 한 차례 각 도서관을 순회한다.

뿐만 아니라 김해시내 4개 대학과도 협력을 맺어 도서관 회원증을 발급받은 시민들이 대학 도서관에서 자료 검색과 열람이 가능하도록 만들었다. 이로 인해 인제대학교의 풍부한 의학 관련 자료를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연간 김해시민 1인당 대출 권수는 4.5권이다. 안산시 3.1권보다 1.4권이 더 많다.

김해시 관계자는 “여느 지방자치 단체보다 도서 대출이 많은 이유는 타관대출서비스가 잘 이뤄지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 자료에 따르면 김해시내 도서관 대출의 약 10%가 타관대출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대규모 공사비를 들여 건립한 진영한빛도서관의 대출량보다 많다. 김해시는 연간 5,000만원으로 도서관 건립과 맞먹는 효과를 보는 셈이다.

■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
김해시는 도서관 건립 타관대출 서비스 등 인프라를 정비하는 한편 책 읽는 시민문화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한 도시 한 책읽기 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첫해 최인호의 장편소설 ‘제4의 제국’ 2008년 김려령의 ‘완득이’ 2009년 신경숙의 ‘엄마를부탁해’ 2010년 한비야의 ‘그건 사랑이었네’가 그 해의 김해의 책으로 선정됐다.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김해의 책 추진위원회’가 시민들의 추천도서 중에서 김해의 책을 골라 매년 3월 발표한다. 김해의 책이 발표되면 김해시는 약 1500권의 책을 구입해 각 도서관에 비치한 후 책 읽기를 권장한다. 또한 각 학교를 중심으로 독서릴레이와 독후감 공모행사를 진행한다.

뿐만 아니라  전국 규모의 토론대회인 청소년 인문학 읽기 대회를 개최해 올해 2년째 진행 했다. 지난해 29개 학교가 참가한데 이어 올해 41개 학교 120여명이 참가하며 청소년 책읽기 장려 행사로 주목받고 있다.

■ 지방정부 교체로 사업 추진 미지수

△ 대포천 작은도서관 운영위원들. 지원금 삭감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 모였지만 얼굴엔 별 걱정이 없다. 공동체 문화가 사라지지 않은 이 도서관은 상동면민들의 힘으로 도서관 하나쯤은 거뜬히 운영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그러나 최근 김해시가 도서관 100개를 건립해 2015년 책의 수도로 지정받겠다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지방정부의 정권이 바뀌면서 작은 도서관 지원을 줄이고 김해의 책 관련 사업이 취소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포천 작은 도서관 김옥순관장은 “작은도서관 지원금을 60만원으로 낮출 계획이라고 들었다. 우리 도서관은 면사무소에서 지원받아 어떻게든지 꾸려 나가겠지만 아파트 관리사무소 안에 있는 작은 도서관 관장들은 걱정이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작은 도서관 관장들은 “지원이 끊어지면 더 이상 작은 도서관들이 생겨나지 않을 것”이라며 “책의 수도로 만들겠다는 김해의 꿈은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한편 김해 취재에 동행한 박은희 꿈을 키우는 도서관 관장은 “시민들의 의견을 대표하는 기구도 없이 공공기관과 협력해 일하고 있는 작은 도서관 관장들이 참 대단하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작은도서관을 지원하고 축소하는 것도 모두 시의 일방적인 결정에 의존하는 것 같다"고 아쉬워 했다.

박관장은 “다행히 안산시의 경우 안산의제 21 도서관 특별분과와 작은도서관 네트워크 등이 있어 시민단체와 공공기관이 역할 분담을 잘 한다면 책 읽기 운동의 새로운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예를 들어 김해시처럼 공공기관이 접근성이 높은 도서관을 건립하고 이들을 엮는 타관대출 서비스를 도입하고 '한 도시 한 책 읽기' 운동을 민간영역에서 펼쳐나가면 '책 읽는 안산'이라는 사회적 흐름을 만들어 낼 것"이라고 자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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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산시 전면적 타관 대출 서비스 시행엔 난색

중앙도서관에 따르면 ‘타관 대출 서비스’는 현재 진행 중인 사업이다. 지난 7월 도서관 시스템을 통합한 후 타관대출을 위한 준비를 마치고 작은 도서관과 한 개의 공공도서관을 연결하는 타관 대출이 일부 시행되고 있다.

 

△ 안산시내 도서관 지도. 1개동 1개 도서관 건립이라는 형식적인 목표가 아니라 도서관 접근성에 따라 공공도서관과 작은도서관의 적절한 배분이 필요하다. 뿐만 아니라 도서관 이용객을 늘이기 위해서는 자유로운 상호대차 서비스도 도입되어야 한다.(붉은색은 공공도서관 반경 1Km. 푸른선은 작은 도서관 반경 500m)

그러나 이용횟수는 지난해 110회로 매우 저조한 상황이다. 타관 대출이 저조한 이유에 대해 작은 도서관 관계자는 “이용자가 책을 신청해서 받아보기 까지 1주일이 넘게 걸린 적도 있다. 또 전체 도서관과 연결되어 있지 않고 일부 도서관에서만 대여되다 보니 원하는 책이 있어도 대출이 안 될 경우가 많아 몇 번 이용해 본 시민은 불편하다며 더 이상 신청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면적인 타관 대출을 시행해 언제 어디서든지 책 반납과 대여가 가능하다는 홍보가 이뤄져야 이용객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 중앙도서관은 예산 등을 이유로 적극적인 도입에는 다소 미온적이다. 사업 시행을 하기 위해서는 배달 인력도 뽑고 차량도 구입해야 하는데 투입하는 예산만큼 이용자가 많을 지도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중앙도서관 관계자는 “현재와 같은 시스템으로 운영하다 시민들의 이용이 많아지면 전면 시행도 검토해 볼 수 있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적은데 굳이 전면적인 타관 대출 서비스를 해야 하는 필요성은 못 느낀다”는 것이다.

타관대출 서비스가 원활하게 운영되는 김해시의 경우 타관대출 이용객이 전체 대출 이용객의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책 빌리는 것이 쉽고 편리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도서관 이용자들은 “도서관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는 이미 보편적으로 시행하고 있고 더 많은 사람이 도서관을 이용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서비스"라며 입을 모았다.

하혜경 기자  sekami03@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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