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권력 손에 쥔 입주자대표회의

그 동안 동대표는 입주민들의 일정비율 이상 자필서명을 받아 선출돼 아파트 관리업체 선정부터 관리소장, 직원, 경비원의 인사권까지 손에 쥐고 있어 막강한 권한을 행사해 왔다. 또 대규모 보수공사 입찰과 각종 용역발주에도 관여, 아파트 운영에 둘러싼 의혹제기가 끊이질 않으면서 입주민 사이에 크고 작은 분쟁은 흔한 일로 치부됐다.
안산시 상록구 A아파트는 올해 일부 입주민들에게 수도공급을 중단했다. 일부 입주민들이 기존 관리업체에 관리비를 입금하자 관리사무소측이 관리비를 체납했다며 수도 공급을 중단한 것이다. 이는 이 아파트 내 2개의 입주자대표회의가 서로 자신들이 정당하다고 다투면서 벌어졌다.
대표회의 구성 문제 등 입주민간 분쟁으로 3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서 입주민들은 단수로 인해 극심한 불편을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아파트 단지는 소송과 고소·고발 등이 끊이지 않아 행정관청 등에서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이 같은 단수조치는 체납을 이유로 단전·단수를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마저 무시하고 벌어지고 있어 논란은 확산됐다.
해마루법률사무소 장완익변호사는 “대법원은 관리비 장기 연체를 이유로 아파트 세대에 단전조치를 한 대표회장과 관리소장에게 전기사업법 위반 등을 적용해 벌금 2백만원, 1백만원을 각각 선고한 서울지법의 판결을 인정, 유죄를 확정한 바 있다”고 밝히고 “설령 관리비를 체납했다고 단전·단수를 단행하는 것은 명백한 불법이다”고 밝혔다.

끊임없는 분쟁 입주민만 골탕

이와 비슷한 사례는 안산지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안산시 단원구 B아파트의 경우 아파트 외벽 도색과정에서 공사비가 비싼 업체를 선정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입주민간 다툼의 발단이 돼 입주민과 입주민대표회의간 양측이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의 이유로 서로를 고소·고발할 정도로 상황은 악화되고 있다.
최근 아파트 관리에 대한 입주민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관리비나 각종 공사·용역계약 등 아파트 관리와 관련된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 아파트 일부 입주민들이 “입주민 대표회의가 선정한 H업체의 공사단가는 다른 지역보다 20~30% 높음에도 불구하고 입주민대표회의에서 아무런 문제의식도 없이 선정됐다”며 공사정지 가처분신청을 안산지원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입주민대표회의측은 “공정한 입찰과정을 통해 투명하게 선정된 과정을 일부 입주민들이 딴지를 걸고 있다”며 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맞고소한 상태다.
또 다른 C아파트도 비슷한 논란으로 내홍을 겪고 있다.
비슷한 규모의 아파트단지가 장기수선특별충당금을 5억원~10억원선을 비축하고 있는 반면에 이 아파트는 두세배가 넘는 23억을 비축하고 있다. 이 같이 장기수선특별충당금이 늘어난 이유는 동대표간의 불신으로 인해 각종 시설 보수를 미뤘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해당 아파트는 놀이터 등 주민 편익시설이 개·보수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늦어지면서 애꿎은 입주민들만 골탕을 먹고 있다.
이 아파트에서는 최근 한 관련업체가 동대표에게 뇌물을 전달하려다 미수에 그치는 등 잡음이 끊이질 않고 있다.

솜방망이 처벌 실효성 의문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아파트에서 많이 발생하는 명예훼손 관련 분쟁은 관리비나 각종공사, 용역계약 등 아파트 관리와 관련된 의혹에서 출발한다.
올 한해만 안산시에 신고된 분쟁 진행 아파트는 총 5건이 이른다. 또한 각종 관련법 위반으로 과태료가 부과된 아파트도 4건인 것으로 조사됐다. 대부분 예산집행에 문제점이 들어나 관리소장과 입주민대표회의에 과태료가 부과됐다. 그러나 대부분의 분쟁들이 고소·고발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안산시에 신고된 건수보다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안산시 소통위원회가 최근 안산지역 300세대 이상 105개 공동주택을 대상으로 아파트 분쟁경험을 조사한 결과 전체 60%이상 아파트단지에서 1번 이상 분쟁 경험이 있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됐다.
관련 전문가들은 “아파트 관리업무 가운데 불특정 다수인의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동대표들은 전문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업무 집행절차 및 방법 등이 적정하지 못한 경우 입주민들이 의혹을 제기하고, 동대표들은 고소 등으로 대처해 명예훼손 등의 분쟁으로 이어진다”고 말하고 있다.
아파트에서 발생되는 민원 중 상당 부분이 주민간 분쟁에 의한 것이라는게 관련업께의 말이다. 그러나 이들 대부분은 관련 법조항에 근거해 명확히 기준을 제시하기 어렵다는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분쟁해결 제도장치 마련 절실

문제는 이러한 분쟁을 중재할 만한 장치가 사실상 마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아파트에서의 주민간 분쟁은 곧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안산시 관계자도 “주민 간 갈등에 대한 중재나 조정을 요구하는 민원이 종종 있지만 수사권이 없고, 역할은 제한돼 있어 어려운 점이 많다”고 토로했다.
관련법을 위반해도 안산시에서 부과할 수 있는 과태료는 100만원에 불과해 솜방망이 처벌에 머무르기 때문이다.
안산시에도 아파트분쟁조종위원회가 구성되어 있지만 위원회가 소집돼 회의를 진행한 횟수는 상견례 등 2~3번에 그쳐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아파트 대표회의나 관리소는 각종 의혹이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법령이나 관리규약 등 규정에 따라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관리업무를 처리하고, 입주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하며, 참여를 높여 분쟁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게 일고 있다.
또한 ‘공동주택 관리 분쟁조정위원회’를 활성화하거나 공동주택 관리 전담기구를 설치해 법원에 가지 않고도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입주민간 분쟁을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안산시 단원구 D아파트 관리소장은 “아파트에서 분쟁이 자주 발생하는 부분을 보완하고, 분쟁시 해결할 수 있는 내용 등을 법령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며 “현행 주택법령은 구속력이 떨어지므로 강제성을 높여 분쟁을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관련 전문가들은 “아파트에서 분쟁이 있을 경우 감정적인 대처를 자제하고, 서로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리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입주민들도 관리와 관련해 어떤 의혹이 있을 때 관리소나 대표회의에 합리적인 절차를 통해 이의를 제기하거나 시정을 요구해야 하며,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사실인 것처럼 유포하는 등의 행동은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다.
해마루법무법인 장완익변호사는 “아파트 관리에 있어 좀 더 투명성 등이 보장될 수 있도록 주택법령을 대폭 개선해 분쟁을 사전에 억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김형욱 기자  hyung@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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