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채 논설위원

어둑한 여명을 뚫고 열심히 살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애를 쓰는 시간이었는데, 그중에는 야채 장사를 하던 박미영 씨도 포함 되어 있었습니다.

박미영씨는 남보다 싱싱한 야채를 구입해서 하루 일과를 시작하려고 부지런히 횡단 보도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과속으로 달리던 택시 한대가 박미영씨를 치고 어둑한 새벽 어둠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사고가 여기에서 끝났더라면 흔히있는 보통의 뺑소니 교통사고라고 이해하겠지만, 이 사건은 그저 억울한 뺑소니 교통사고 정도가 아니라는데에 우리의 안타까움과 한숨이 있는 것입니다.

채소를 받아 그날 장사를 하려고 박미영씨는 가방속에 230만원의 현금을 넣고 나왔는데, 도시락과 함께 들어있던 그 돈이 택시에 치이면서 길거리에 흩날리게 되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삽시간에 날고기를 나누어 먹는 야수나 맹수로 변하게 된 것입니다.

당장 피를 흘리며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사람은 아랑곳하지 않고 모두들 돈을 줍는데 정신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그 돈은 32세의 젊디 젊은 여인이 남들처럼 한번 잘 살아보겠다고 준비해 가지고 나온 피눈물 나는 돈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곳 주변의 사람들은 정신없이 흩날리는 돈을 저마다 주워들고 달아난 택시마냥 그렇게 총총히 그 자리를 떠났다는 것입니다.

좋은 말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돈을 주워 갔다는 것이지, 그거야말로 차에 치어 쓰러진 사람의 돈을 훔쳐간 것과 무슨 차이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모두가 그런 비양심과 몰염치의 소유자는 아니었습니다. 쓰러진 박미영 씨를 발견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애절하게 외쳤던 사람은 놀랍게도 사고 현장 가까이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39세의 박소길 씨 였습니다.

전남 신안군에서 올라와 배운것은 없어도 부인과 함께 바르게 살면서 그날도 밤새워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말아 팔며 자리를 지켰던 분이었습니다.

사고가 난것을 직감한 박소길 씨는 “왜들 이러십니까! 돈은 주워서 가방에 넣어 주시고, 이분 좀 부축해 주세요!”라고 말하며 미친듯이 외쳐댔지만, 누구 하나 손 내밀어 도와주기는 커녕 쓰러져 있는 젊은 여인의 돈을 주워 사라지더라는 것입니다.

환자를 옮겨야 할 운전자들마저 차를 세워 놓고 돈을 주울 뿐,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양심이 실종되고 비인간적인 사람들만 북적대던 그곳에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같은 포장마차 주인 박소길 씨는 주위의 도움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가까운 공중전화로 달려가 파출소에 사고 신고를 한 뒤 피투성이가 된 여인을 부축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그 포장마차에서 국수로 끼니를 때우면서 열심히 살아보려고 몸부림쳤던 32세의 박미영 씨는 끝내 숨을 거두었고, 박미영 씨를 친 뺑소니차는 어둠속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쩌면 그 순간 우리 사회의 양심도 어둠속으로 사라진 뺑소니 차처럼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우리 사회의 양심, 우리 시대의 양심은 영영 되돌아오지 않을 것인지 정말 두렵고 가슴 떨립니다.

사라진 우리 사회의 양심은 언제쯤이나 되돌아올 것인지...

박규채 논설위원  webmaster@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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