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규채 논설위원

어느날 백발이 성성한 철학 교수가 물이 반정도 담겨져 있는 유리컵을 학생들에게 내보이며 “이 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엉뚱한 질문을 하더라는 것이다.

빌 코스비 뿐만 아니라 당황한 학생들이 그대로 가만히 있자 그 노교수는 ‘물이 반 정도 담겨져 있는 유리컵’에 대한 자기 나름대로의 느낌과 생각을 정리해 오라는 과제를 남긴채바람처럼 사라져 버렸다.

아무리 타고난 코미디언이고 학창 시절부터 느긋하고 장난기가 심했던 빌 코스비였지만, 도대체 무슨 대답을 원하는지 감도 잡지 못한채 숙제를 앞에 두고 하루 온종일 고민에 빠져 있었다.

밥도 안 먹고 저녁 내내 물이 반 정도 채워져 있는 유리컵만 들여다보면서 끙끙대는 아들을 보고 빌 코스비의 아버지가 도대체 무슨 일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어보았다.

빌 코스비의 아버지는 대학에서 정규 교육을 받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의 인생 철학을 가지고 있었고, 거리를 떠돌아 다니는 흑인들 특유의 삶의 지혜와 강렬한 생명력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때 코스비는 그저 아버지에게 하소연하는 마음으로 학교에서 받아온 철학 과제물에 대한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가 기막힌 대답을 해주더라는 것이다. 아버지의 답인즉은 물컵에 반정도 채워져 있는 그 물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행복도, 만족도, 또 생활 자체도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 물을 반밖에 없다고 그냥 내버려두면 영원히 쓸모없는 물로 남아있지만, 반씩이나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그 물로 시원하게 목을 축이고, 뭔가 절실한 것에 쏟아부으면 그것은 정신과 몸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어주는 귀한 물이 될 수 있다.”라는 아버지의 명해석으로 빌 코스비는 그 학기에 유일하게 A학점을 받았다고 한다.

유리컵 안의 물뿐만이 아니다. 충분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나름대로의 노하우와 아이디어일지라도 개개인의 능력과 개성을 인정하고, 그것으로 뭔가 절실한 것을 위해 노력하고 열정을 쏟으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힘으로 발산될 수 있다.

그러나 작고 보잘것없는 꿈이라고 해서 또는 제대로 갖춰져 있지않은 아이디어라고 해서 무시하고 그대로 방치해 버린다면 그것은 결국 먼지와 더러움만 쌓여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묻혀버리고 말것이다.

세상에는 세종류의 사람이 있다. 자기는 너무 많은 것을 가졌다고 스스로 자만하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별로 부족한 것 같지도 않은 사람이 자기는 늘 부족하고 모자란다는 피해 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많고 적음을 떠나 자신의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속에서 미래를 설계하고,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 국력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아시아권에 있는 싱가폴이나 홍콩의 국부에 비해서도 우리의 국부는 현격하게 저조하다. 반정도 채워져 있는 물을 가지고 최대한 활용을 해보느냐 아니면 해봤자 별로 소용도 없을텐데 하고 옆으로 밀어 놓느냐 하는것은 순전히 우리 사회 분위기나 개인의 의지에 달려있는 문제이다.

단순히 숫자로 개량화된 수치만 보고 배아파하고 속상해 하기보다는 먼저 높은 평가를 받아낸 우리의 훌륭한 인재들이 곳곳에 진출해 있는 우리 사회의 독특한 자원 구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 훌륭한 자원들을 제대로 적재적소에 사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미래를 설계하는 중소기업이나 젊은 세대들도 인식의 전환, 사고의 대전환으로 모든것에 새출발 할 수 있는 각오를 다져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가오는 21세기를 위해 계속 추진하고, 건설하고 있는 우리의 미래 공사들도 계획대로 단단하게 자리를 굳혀 나간다면 우리의 국부는 머지않아 세계중심 국가의 수준으로 향상될 것이다.

반밖에 남아있지 않다고 해서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과 반씩이나 남아있다고 힘을 내는 사람의 차이는 그 시작은 미약하지만 끝에가서는 엄청난 차이로 나타날 것이다. 조직이나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현실을 직시하고 발은 땅을 딛고 눈은 푸른 하늘을 향해 모든 일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또 행동한다면 우리의 미래도 수치로뿐만 아니라 내실면에 있어서도 보다 알차고 견고해질 수 있을 것이다.

2012년 런던올리림픽의 승리가 이를 증명해 준다. 하면된다는 의지를 몸과 정신에 꽉 채우자.

박규채 논설위원  webmaster@ansans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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