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재로 사용되는 약물은 풀뿌리와 나무껍질, 곤충, 돌, 동물 등 사람 이외의 사물인데도 사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 이는 사물이 가지고 기운을 이용하기 때문이다. 천지는 음양의 두 가지 기운으로 구성돼있다. 음양이 움직이는 것이 오행(五行)으로 관찰되고 음양이 가지고 있는 기(氣)의 많고 적음에 따라 서로 짝을 이루면서 육기(六氣)가 된다.

인간의 생명은 천(天)의 양기를 부(父)로 하고, 지(地)의 음기를 모(母)로 하였으니, 천지의 오행과 육기를 받아 인체의 오장육부가 생긴다는 뜻이다.

일반 사물이 비록 인간과 다르다고 하나 천지의 음양을 근원으로 하여 생기지 않은 것이 없다. 단지 일반 사물은 음양의 편차가 심한 편이지만 사람은 천지의 중심이므로 음양의 균형이 비교적 잘 조절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인체의 기운이 조절되지 않게 되면 질병이 발생하게 된다. 이 때 사물(약물)이 가지는 기운의 편벽됨을 빌려 인체의 기의 성쇠를 조절하여 화평한 상태로 돌아가게 하면 병이 낫게 된다. 사물의 음양을 빌려 인체의 음양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한약의 과학적 연구라고 하는 많은 것들은 주요 활성성분을 밝히고 그 함량을 조사해서 동물실험과 병리실험을 거쳐 약리학적 효능을 알아내고 아울러 독성연구를 병행해 질병에 가장 유효하고 인체에 가장 부작용이 적은 성분을 찾아내어 이용하는 것이다.

과학과 실험적 연구가 발달하면서 이렇게 알게 되는 사실들을 무시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들에 지나치게 집착하면 전체를 놓칠 수도 있어 주의해야 한다. 메주에 발암물질인 아플라톡신 등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천연항암제인 제니스틴이 풍부한 된장을 못 먹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의학에서 한약을 쓸 때는 성분보다는 약의 전체적인 성질을 파악해서 그 장점을 취해 쓴다. 인삼을 예로 들면 한의학 고전에 인삼은 단 맛이 있으며 원기를 크게 보하고 갈증을 없애며 진액을 돕되 몸의 안과 밖을 두루 고르게 한다고 돼 있다. 실제 인삼을 관찰해 보면 경쾌한 향기가 있고 맛이 좀 달며 겉은 황색, 속은 흰색이며 가운데가 통통하며 진액이 많은 육질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비위계통과 폐 등 인체의 중상초(中上焦)에 작용을 하면서 기운을 보충하므로 큰 병을 앓고 난 후에 신체가 허약한 상태나 소화흡수기능이 떨어지거나 진액이 소모된 경우에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 여기에 혈액은 기운을 받아야 잘 순환되므로 당연히 혈액순환에도 크게 도움이 되고 기운이 떨어지면 정신 신경도 예민해지고 약해지니 신경계통에도 효과가 있다.

항간에 인삼이 혈압을 높이는 성분이 있으므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글을 본 적이 있다. 실제로 인삼의 대표적인 성분인 인삼사포닌 중 특히 흥분작용은 아드레날린 등 카테콜아민을 분비시켜 혈압을 높일 수 있다. 따라서 현대의학이 발달되지 않았던 예전부터 저혈압이나 쇼크에 가까운 상태에서 혈압을 높이는 구급약으로 귀하게 사용되기도 했다.

하지만 인삼사포닌은 섬유소를 용해시키고 혈액응고를 방지하므로 혈액을 맑게 하여 혈액순환에 도움이 되며 유효성분 중 진세노사이드는 혈관을 확장시키므로 오히려 혈압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고혈압이라는 것은 한 가지 질병이 아니라 인체의 여러 상태를 반영하고 여러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하나의 지표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인삼이 혈압을 높이는 물질을 잘 만든다고 해서 고혈압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메주에 발암물질이 있다고 된장을 못 먹게 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한의학에서 인삼을 사용하는 기준은 소화흡수가 불량하고 신체가 허약하면서 진액이 없고 기운도 없고 혈액순환도 안 되고 정신도 맑지 못한 것의 원인이 중상초에 있는 것이지 고혈압을 갖고 있는 지의 여부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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