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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비적 사랑(prodigal love)양진영<법무법인 온누리 대표변호사>
  • 안산신문
  • 승인 2019.02.27 1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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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란법이 있기 전에도 우리 사회는 상대적으로 젊은 사람들 간에 더치페이(Dutch pay)문화가 이미 일상화가 되었다. 요즘은 더 진화하여 주로 2030세대 영맨들은 등산문화도 바꾸어 놓았다. 이들은 등산조직도 회비도 없다. 리더를 코파운드, 산악회를 크루, 등산을 세션이라 부르고 인스타그램을 통해 세션의 참여자를 모은다. 압권은 뒷풀이를 할 때다. 각자 음식, 주류 선호 여부 등 취향에 따라 서너 명씩 끼리끼리 앉아 즐기고, 먼저 일어나고 싶으면 계산대로 가서 자기테이블 식대의 n분의 1만 카카오페이로 지급하고 자기 볼일을 본다. 그러니 당연히 회비가 따로 있을 리 없다. 기존 아재들의 등산문화를 떠올려보면 지극히 합리적이고 깔끔하다. 그런데 뭔지 모를 아쉬움을 넘어 왠지 모를 불편함까지 스멀스멀 기어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아재세대의 한계인가.

곰곰이 이 낯선 감정의 뿌리를 찾아가다 보니 너무 군더더기 없는 만남이라는 점이 역설적으로 허전함으로 다가온다. 아재들도 찬란한(?) 등산복 차려입고 모처럼 산행에 나설 때 원래 의도는 결코 흥청망청하려고 주말 늦잠까지 반납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산도 좋지만 정이 그립고 사람이 좋아 따라 나서는 것이다. 간혹 제 기분에 취해서 오버하기도 하고 모처럼 한잔 걸치다 보니 이런 저런 가십거리를 남기기도 하지만 대체로 시간이 흐르면 그 해프닝은 추억으로 전환되고 관계는 묵은 정으로 쌓인다. 그러니 2030 크루든지 아재들의 산악회든지 문화의 차이가 있을 뿐이므로 어느 편이 너 낫다 그르다 할 일은 아닌 듯싶다.

시대의 변화는 등산문화만 바꾸어 놓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 법률소비의 패턴도 바뀌고 있다. 요즘은 강남부자들 간에는 효도계약서, 혼전계약서가 유행이다. 전자는 지금은 자식이 이쁜 짓(?)을 해서 재산을 나누어 주지만, 돈만 챙기고 효도는 뒷전일 경우 본전 생각에 준 것을 도로 물릴 수 있도록 하는 장치를 해 놓음으로써 자식의 변심을 막아보자는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후자는 지금은 죽고 못살 정도로 사랑해서 내것네것 구분이 없지만 나중에 사랑이 식어 헤어질 때는 원래의 내것네것을 원상회복하는데 편리하도록 미리 금을 그어놓자는 취지에서 비롯된 것인데, 스카이캐슬 부류의 잘난(?) 사람들이 특히 선호한다고 한다. 이 또한 구차하지도 구질구질하지도 않고 깔끔하고 어쩌면 매우 합리적이다.

그런데 이 불편한 진실이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계산적 사랑”, 바로 이것 때문이리라.
반면, 어느 탕자의 아버지는 이러했다. 아버지에게 생떼를 부려 일찌감치 자기 몫을 챙겨 가출한 후 수년 동안 케세라세라식 인생을 살면서 기생집에서, 도박장에서 분배받은 재산을 다 날리고 상거지가 되어 터벅터벅 집으로 돌아오고 있을 때, 수년의 세월동안 오매불망 집을 나간 아들만 기다리던 아버지는 동구 밖 아들의 그림자만 보고도 맨발로 뛰쳐나가 부둥켜안고 입을 맞췄다. 그리고 씻긴 다음 제일 좋은 옷을 입히고 포동포동한 소를 잡고 돌아온 아들을 환대하였다.

그야말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끊임없이 퍼부어 주는 사랑, 넘치고도 흘러서 흥건하게 버려질 정도의 무모하고 계산 없는 사랑, 한마디로 “낭비적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헤픈 사랑을 한 아버지는 과연 어리석은 것인가. 이 아버지는 이런 사랑의 낭비 때문에 후에 망했을까. 뒷얘기를 상상으로 채워보면 한 가지는 분명해 보인다. 이 아버지는 그 후에 두 다리를 뻗고 단잠을 이룰 수 있었으며, 탕자아들의 효도를 제대로 받았으리라.

낭비가 다 나쁜 것은 아니다.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리라 본다. 낭비가 다 헤픈 것도 아니다. 퍼주고도 잘 되는 사람을 수없이 많이 보아 왔다. 그래서 흉내를 내어 보기로 한다. 훈련이 덜 되어 쉽지는 않겠지만 오늘부터 작은 사랑의 낭비부터 시도해 보려고 한다. 오늘 저녁 대학원동기모임 밥값은 내가 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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