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희<소설가>

  매월 1회 무료급식 봉사를 가는 날은 반팔을 입고 머리를 질끈 묶고 나선다. 급식소 내부는 음식 만드는 열기로 인해 사시사철 찜통이다. 비지땀을 흘리면서 급식을 완료하고 설거지를 했다. “주방 안에도 에어컨 한 대 있으면 좋겠다.” 지나는 말로 누군가 열악한 환경을 탓했다. 그러자 다른 봉사자가 “기다려봐 이번에 로또복권 당첨만  되면 에어컨뿐이겠니? 무료 급식소 하나 지어 기증할게”라는 말에 모두 복권 이야기를 했다. 복권에 당첨되면 이웃을 위해 기부하겠다는 공약을 걸었다. 과연 우리 중 누군가 당첨이 되어 열악한 복지시설을 바꿔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얼마 전부터 인생역전 한다는 광고의 로또복권이 생기면서 전국이 복권 열풍에 달아올랐다.  1등에 당첨되면 상상도 못할 거액을 손에 거머쥐어 인생이 뒤바뀌는데 어찌 솔깃하지 않으리? 그래서 너도 나도 횡재를 꿈꾸며 복권을 사고 그로 인해 당첨금은 더 높아 가는 것이다. 인생역전 이 얼마나 근사한 말인가? 그러나 그 인생역전은 아무에게나 누구에게나 오지 않는다.
  나의 친구부부는 편의점을 하고 있다. 영세한 가게라 부부가 교대로 근무하느라 늘 지치고 바빴다. 편의점은 24시간 영업이라 자유시간이 거의 없다. 많은 물품과 함께 복권도 판매한다. 단골손님 중에는 자신이 산 복권을 가져가지 않고 주인에게 맡겨두고 발표가 나면 알려 달라고 한다. 그 손님은 매주 몇 십만 원어치의 복권을 샀는데, 발표 때마다 가게주인도 손님의 1등 당첨을 기도했지만 기회는 쉽게 오지 않았다고 한다. 어느 날 그 손님은 자신이 가진 돈의 마지막이라며 평소보다 적은 돈만큼만 복권을 구입했고 그날도 가게주인에게 맡기고 떠났다. 친구는 그런 식으로 올인하는 사람들을 보면 가슴이 아파 저절로 기도를 한다고 했다.
  기적이 일어났다. 1등에 당첨이 된 것이다. 가게 주인은 손님에게 연락을 해서 1등 복권을 찾아가게 했다. 얼마 후 그 손님은 사례금이라며 약간의 돈을 친구에게 주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사람들은 “왜 주인 찾아주니? 그냥 자기가 가지지. 그럼 인생역전 되잖아”라며 바보 취급하더라고 했다. 만약 내가 그 가게 주인이라면 손님이 맡긴 복권이 1등 당첨되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그 많은 복권에 번호도 매겨 두지 않고 내가 산 것이라고 하면 간단히 자기 것이 될 수 있을 텐데….
 친구 부부는 1등을 해서 벼락부자가 되기보다는 1등 복권 당첨자가 나온 판매점이라고 해서 매출이 많이 올라 서서히 부자가 되는 걸 원했다. 일말의 갈등도 없이 주인에게 돌려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그것이 공짜로 당첨된 복권이든 물건이든. 순간 부자는 될 수 있겠지만 평생 남의 행운을 가로챈 죄의식에 사로 잡혀 살아가지 않았을까? 현명한 그 부부는 그런 면에서 성공한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나는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생각한다. 공짜로 얻은 만큼 아니 그 배 이상으로 나가기 마련이다. 그래서 사소한 것도 공짜를 바라지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인생역전을 하는 1등 당첨에도 고민하지 않는 친구를 보면서 인격의 차이에 고개를 숙일 따름이다. 요즘 우울한 분위기를 날려버리는 기분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친구는 진정한 부자라고 생각했다.
 복권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벼락 맞을 확률보다 낮다. 또 막상 복권에 당첨되어도 그 돈을 잘 지키고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통계에 의하면 복권 당첨자들의 10년 후의 삶은 복권 당첨되기 전보다 더 비참한 경우가 80% 이상이나 된다고 했다. 인생역전을 시켜 줬지만 그 인생역전을 관리하는 것은 당첨되는 확률보다 더 어려운 일이다. 누구나 복권을 사면서 나만은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며 산다고 한다. 그러나 통계가 보여 주듯이 신이 당첨되는 복과 그 돈을 잘 간수하는 복까지는 주지 않는다.
  ‘삶을 온전히 보존하려는 이는 욕심을 적게 갖고, 몸을 온전히 보호하려는 이는 명예를 피한다. 욕심 없기는 쉬우나 명예욕을 없애기는 어렵다.’ 는 고전의 말처럼 욕심과 명예욕을 초월한 사람은 도인의 경지일 것이다. 평범한 범부인 나는 지금 가진 것으로도 행복하다.  그런데 로또가 당첨되면 얼마나 더 좋을까마는 당첨되기 전보다 더 비참해 질까봐 나는 아예 복권을 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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