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경영학박사>

코로나19의 방역수준이 완화되면서 주일아침에 교회에 오는 길에 반대 방향 도로 중앙에서 추돌사고로 인해 쌍방이 논쟁을 하고 있었다. 아침이라 통행차량도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서두를 이유가 있었던 걸까? 우리나라 속담에 ‘아무리 바빠도 바늘허리 매어 못쓴다’는 말이 있다. ‘바쁠수록 돌아가라’라는 말도 있다. 서두르면 낭패를 볼 확률이 그만큼 크다는 교훈이다. 서양에도 서두름에 대한 비슷한 속담이 있다. 즉,  Haste makes  waste(서두름은 쓰레기를 만든다), Do nothing hastily but catching of fleas(벼룩을 잡을 때를 제외하고 어떤일에도 서두름이 없어야 한다). Whatever is produced in haste goes hastily to waste(무엇이든 서둘러서 만든 것치고 변변한 것이 없다,

Wisely, and slow. They stumble that run fast(신중하되 천천히 하라. 빨리 뛰는 것이야말로 넘어지는 것이다) 등이다. 빨리빨리의 서두름이 반세기만에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난했던 빈국에서 부국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그때에는 설혹 실패해도 더 잘못될 것이 없었다. 그리고 서둘러서 잡아야 할 목적이 분명했고 생존과 관련이 있었다. 벼룩을 잡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 따라 잡아야 할 경쟁 대상도 불분명하고 존재를 위협받지도 않는다. 그런데 여전히 서두른다. 강박관념이 지배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송나라 인종은 선황들이 국가 건국초기에 안정적인 통치를 위해 지방의 호족들을 대거 관료에 임명하였기 때문에 관료의 수가 지나치게 많아서 세수로 급료를 감당하기 어렵게 되었다. 관료들은 결국 백성들에게 과도한 세금을 거두어들이고 부패한 관료들은 부를 축적하었다. 이를 개혁하기 위해 부필, 범중엄, 구양서 등을 통해서 서민이라도 유능하면 과거를 통해 등용시키고 부패관료를 대거 퇴진시키는 경력신정의 국가혁신운동을 전개했다. 당연히 기득권을 쥐고 있던 신하들과 지방호족들의 반발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

1년만에 인종은 범중엄을 지방으로 보내고 개혁은 중단되었다. 당초 범중엄은 오래된 관행을 고치기 힘들고 실패의 확률이 높으니 신중하게 천천히 할 것을 주장했었다. 당장은 실패했지만 짧았던 신정 기간에 관료기구도 재정비되고, 가문에 의해 관직에 진출하던 풍속이 엄격하게 제한되고, 경력만으로 승진하던 관례가 개인의 품성과 업적이 반영되었다. 과거시험도 실용적인 문제가 늘어나고, 학교가 만들어지고 새로운 학풍이 싹트게 되었다. 개혁의 불씨는 꺼지지 않았고 인종이후에 국태민안을 이루었다.
   조급함은 오히려 본질을 훼손할 수 있다. 씨부리는 사람이 있으면 거두는 사람도 있다는 사고가 필요하다. 서두르면 실수 할 확률이 그만큼 커진다. 심리학과 행동경제학자들의 인지적 편향에 대한 연구결과 과도한 낙관주의, 지나친 자신감, 경쟁대상의 대응을 무시하는 행동지향의 편견이 작용할 때 성급한 의사결정을 하게 된다고 한다.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빠름이지만 사랑과 평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느림이다’ 고 했다. 독일의 뮌헨대 칼 하인츠 가이슬러(Geibler Karlheinz A. Geibler) 교수의 책 ‘시간’에 나오는 말이다.

빠름을 이기는 것은 더 빠름이고 더 빠름을 이길 수 있는 것은 더 더 빠름이 아니고 느림이란다. 프랑스의 수필가, 철학자인 피에르 상소(Poerre Sansot, 1928~2005)는 느림의 미학을 논하면서 ‘느림이란 시간을 급하게 다루지 않고 시간의 재촉에 떠밀려 가지 않겠다는 각오이며, 나 자신을 잊어버리지 않는 능력과 다른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겠다는 확고한 의지에서 비롯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7:9), 부지런한 자의 경영은 풍부함에 이를 것이나, 조급한 자는 궁핍함에 이를 따름이니라(잠21:9), 지식이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가느니라(잠19:2),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크게 명철하여도 마음이 조급한 자는 어리석음을 나타내느니라(잠14:29). 성서의 말씀들이다.

정책을 서둘러 실행하면 수많은 시행착오를 예상해야 한다. 서두름은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품질의 저하, 자원의 남용, 낮은 수준의 혁신 반복, 구성원들이 피로감 누적으로 지치게 한다. 뿐만아니라 기술과 변화의 속도가 빠르지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유연함과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세심한 관찰력이 필요하다. 섣부른 판단은 돌이킬 수 없는 잘못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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