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경영학 박사>

겨울을 정의하기는 쉽지않다. 절기로 따지면 입동(11/8)에서 입춘(2/4)사이를 겨울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의 어원으로 '겻다(머무르다)'를 꼽는 이도 있다. 집에 머무르는 것을 '겻집'이라 했고, 여기서 규중생활을 하는 겨집(계집)이란 말이 나왔다고 한다. 겨울에는 밖에 나가서 할 일이 없으니 집에 머물러야 했던 것에 유래했다고 한다. 겨슬 곧 ”것’에 접미사 ‘을’을 붙인 ‘것을’이 겨울이 되것이다. 고드름이 ‘곧’과 ‘얼음’이 된것과 비슷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겨울을 끝남이라고 인식한다. 혹은 삶의 끝은 죽음이기에 겨울은 죽음과 같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나 겨울은 봄을 준비하는 시련의 겨우살이로 견디어 낸다는 의미도 있다. 겨울이 추워야 이듬 해에 병이 적다는 말도 있다. 실제로 겨울에 나무의 밑둥에 짚을 둘러두면 강추위를 피해 모여든 해충들을 봄이 되면 태우기도 한다.

사계절이 뚜렷한 땅에는 겨울에 삼한사온의 순환기적 기후가 특색이다. 사람의 삶과 비슷하다. 추운 날을 견디면 따뜻한 날을 맞이할 수 있듯이 어렵고 고통스러운 날들을 견디고 이기어 내면 푸근하고 싹이 돋아날 봄이 온다. 성서에도 ‘땅이 있을 동안에는 심음과 거둠과 추위와 더위와 여름과 겨울과 낮과 밤이 쉬지 아니하리라’(창:22)라고 했다.

개인적인 생각일지 모르지만 사계절이 있는 곳의 사람들이 열대나 한냉지역에 사는 사람들보다 도전적이고 창의적이다. 다양성에 대한 적응도 뛰어나다. 미래를 위한 기술도 진보적이다. 역동적인 문화를 가지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은 사람의 뇌를 꿈꾸게 하고 열정과 사색을 갖게 하고 자기를 통찰하게 한다. 8년이란 햇수를 여름만 있는 땅에서 살았었다. 더위는 사람을 게으르게 한다. 행동은 굼뜨고 자고 일어나도 세상은 변함이 없다. 때로 사람들은 변함이 없는 삶이 여유있고 행복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사람은 변화에 도전하고 극복하고 적응하면서 삶을 느끼고 의미를 찾도록 창조되었다.
  네델란등의 화가이면서 사진작인 레오 리오니(1910~1999)의 [프레드릭]이라는 그림책이 있다. 프레데릭은 오래된 돌담 옆의 헛간에 사는 들쥐이다. 늦가을 다른 들쥐들은 겨우살이 준비를 하는데 프레데릭은 다른 들쥐들처럼 양식을 모으지 않고 춥고 어두운 겨울날들을 위해 태양의 따뜻한 햇살과 여름에 볼 수 있는 색깔, 계절에 어울리는 낱말들을 모으느라 바빴다. 다른 쥐들은 투덜거렸지만 막상 겨울이 되어 저장해 놓은 먹이가 떨어지자 들쥐들은 배가고파서 재잘거릴 기력조차 없어졌다. 그 때 쥐들은 프레데릭이 모아놓은 따뜻한 햇살과 푸른 색깔, 아름다운의 계절의 낱말에 추위와 배고픔을 잊고 행복해 한다.
  앙상한 가지만 남은 숲 길에는 수북히 쌓인 낙옆이 오히려 정겹다. 겨울을 준비하는 나무들은 잎들을 떨구어내고 가득히 담고 있던 수분들을 최소로 줄인다고 한다. 그래야 추운 겨울에 몸이 어는 것을 방지하고 품은 움들을 얼지 않도록 보호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왠지 지혜로움이 경이롭게 느껴진다. 인간은 철을 인식하지 못하고 탐욕으로 채우려고 하지 않는가? 이가 덜덜 떨리고 차가운 날씨에도 추운만큼 따뜻한 마음을 품을 수 있어 좋다는 어느 시인의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러나 겨울을 예찬한 문학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겨울을 표현할 때 대개가 음침하고 황량한 계절로 보고 배경을 설정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심훈(沈熏)의 소설인 [영원한 미소]에서는 “서울의 겨울밤은 깊었다. 달도 별도 없는 음침한 하늘 밑에서 갈갈이 찢어진 거리에는 전신줄에 목을 매어 다는 밤바람의 비명이 들릴 뿐 더구나 북촌 일대는 기와집 초가집 할 것 없이 새하얀 눈에 덮여 땅바닥에 납작히 얼어붙은 듯하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겨울은 말 그대로 서럽고 힘들며 배고픈 계절이다. 입고 먹고 사는 일에 무리가 올 수 밖에 없다. 생존에 가장 위협적인 계절임을 틀림없다. 올해에는 예년과 달리 코로나19의 펜데믹이 엎친데 덮친격이다.

뉴스는 실업률이 최고로 늘어나고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폐업과 휴업, 젊은 세대의 낮은 취업률 등 우울한 소식들로 마음을 더 움추려들게 한다. 프레드릭이 모아놓은 따뜻한 햇살과 푸른 색깔, 아름다운 계절의 낱말들의 속삭임이 필요하다. 좋은 환경을 기대하는 것보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따뜻한 햇살과 풍요로운 색깔로, 매력 넘치는 언어로 바꾸어 이 겨울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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