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참 지혜롭다. 짧은 경구 안에 의미를 담아 참 아름답게 표현한다. 그들의 경구에는 휘익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가르는 칼날의 번뜩임이 있다. 조용한 충격을 남긴다. 그들은 친구를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라고 한다. 친구란 내 슬픔을 나눠 등에 질 수 있다면 기꺼이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가장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가족이다. 가족이라면 내 슬픔을 기꺼이 나누어 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친구를 또 하나의 가족이라고 여겼을 수도 있겠다.
최근에 나는 오래된 친구와 이상한 일을 겪고 있다. 그녀와 나는 같은 고향 출신으로 대학교를 함께 다녔다. 그녀도 나도 집안 형편이 부족하지 않았지만 그리 풍족하지도 않았다. 그녀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하고 나는 학교에서 거리가 먼 곳에서 하숙을 하였다. 그녀는 자주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밥을 먹였다. 그 나이 때의 학생이 누군가에게 밥을 지어 먹인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돈도 충분치 않았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녀가 그럴 수 있었다는 게 참 고맙다.  
살면서 그녀가 나를 다소 서운하게 할 때가 있었다. 그러면 나는 그녀가 그때 내게 먹인 밥을 생각했고 그 섭섭했던 일은 곧 대수롭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올 6월부터였을 것이다. 친구가 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톡으로 인사를 남겨도 답이 없었다. ‘나한테 섭섭한 게 있니? 내 연락을 피하는 거 같아 섭섭하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마음이 편해지면 언제든 연락줘’ 나는 이렇게 톡을 남겼다. 비로소 그녀에게서 답이 왔다. 아주 짧았다. ‘그러자’
세상 모든 것은 태어나고 성장하고 늙고 죽는다. 여기에서 예외인 것은 없다. 우정 또한 그렇다. 이전에도 내게는 자연스럽게 혹은 의식적인 노력으로 관계가 끊어진 친구들이 있다. 내가 싫거나 혹은 상대가 나를 싫어했다. 이 관계의 종말을 아메리카 원주민들이라면 어떻게 표현했을까? 사이가 틀어진 친구는 ‘ 더 이상 내 슬픔 따위에는 관심이 없는 자’일까? 이렇게 표현해 놓고 보니 마음이 아프다. 그 친구도 역시 마음이 아플 것이다.
끝났다 해도 아무렇지도 않은 관계가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은 관계도 있다. 나는 이 친구를 꼭 붙잡고 싶다. 사랑이든 우정이든 가꾸는 보살핌이 없다면 뿌리까지 마르게 된다. 가꾸지 않는 우정은 우정이 아니다. 그 친구와 나 사이에 무엇이 있었는지 깊이 돌아볼 때다. 나는 언제든 이 40년 된 우정에 물 주고 거름 주고 그늘을 만들어 줄 마음이 있다. 그녀는 지금껏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자’ 였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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