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전화기 너머로 A의 흥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녀는 집단 상담 지도자 워크샵에 참석하고 있다고 했다. A와 다른 수련생 한 명이 짝이 되어 공개 실습을 하다가 둘 다 마음에 심각한 내상을 입은 상태였다. 아마도 그녀의 상대는 정도 이상으로 자기방어를 하는 사람이었던 모양이었다. A가 이야기를 맺으려고 해도 상대가 자꾸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바람에 오전 세션이 다 허비되었다고 했다. 남에게 폐 끼치는 것을 유독 싫어하는 A였다. 그녀는 너무 창피한 나머지 수련생들을 피해 점심도 혼자 먹었다고 했다.
나는 늘 그렇듯이 그녀를 화나게 한 그 수련생을 향해 실컷 흉을 보았다. 내가 흉을 보는 사이 그녀는 그렇지, 맞아, 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차츰 흥분이 가시기 시작했다. 대신 한숨이 늘었다. 오후 시간을 어떻게 맞아야 할지 무척 초조하다고 했다. 오후는 다른 세션이 시작되므로 같은 일이 재연될 여지는 없었다. 그러나 오전에 벌어진 그 사단을 그대로 묻고 지나가는 것이 그녀로서는 너무나 찜찜한 일이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A가 물었다. 이렇게 물어오면 나는 언제나 너는 어떻게 하고 싶니? 하고 묻는다. 그러나 지금 J는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할 상태가 아니었다. 그리고 오후 세션을 불과 십여 분 앞두고 있는 상황이었다.  
“시작하면 슈퍼바이저에게 5분만 시간을 달라고 그래, 그리고 네 마음을 얘기해. 나 오전 시간 내내 이러저러해서 속상했다. 우리가 지루하게 공방을 해도 슈퍼바이저가 아무런 개입을 하지 않았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나? 또 우리가 슈퍼바이저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개입하고 조정해야 하나? 하고 물어보는 게 어떨까?    
오전의 상황은 너와 그 수련생이 논쟁을 벌이는 식으로 되었는데 내 생각에는 그것을 조정하지 못한 슈퍼바이저에게 잘못이 있다고 봐. 그러니까 5분 발언하면서 오전 내내 너희 둘이 가지고 논 그 공을 슈퍼바이저에게 던져 보는 거지.”
다음날 A와 통화를 하였다. 목소리가 밝았다. 5분 발언을 하니 참가자들이 모두 자기를 공감해주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고 했다. 슈퍼바이저 역시 A가 먼저 이야기를 꺼내주어 고맙다고 한 뒤, ‘조정’에 대해 여러 가르침을 주었다고도 했다.
A는 나를 한껏 추켜세웠다. “어디 가서 이렇게 고급 훈수를 받겠니?” 그녀의 칭찬에 내 마음은 둥실 허공으로 떠올랐다.  
나는 그녀의 상담사다. 그녀 역시 나의 상담사다. 그리고 그녀의 훈수는 언제나 나보다 한 수 위다. 난 앞으로도 오래도록 그녀 곁에 머무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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