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려니<부부상담사>

어디에선가 흘러나오는 노래가 오래전의 어떤 곳, 어떤 사람을 반사적으로 떠오르게 하는 일이 있다. 유리가 부서지듯 평상심이 조각나고 있을 때 귓가에 들려오던 노래, 남다른 사연을 가진 누군가 불러주던 눈물겨운 노래. 커튼이 살짝 들리는 순간 쏟아져 내리는 햇살처럼 이런 노래들은 그때 그곳에서 내 감정이 드높이 솟았던 순간을 반짝 되살려낸다.
여행지를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오늘 조간에 스위스 마테호른 이야기가 있었다. 마테호른으로 오르는 산악 열차의 출발지 체르마트 이야기도 살짝 곁들여 있었다. 육십 대 후반으로 보이는 그 아주머니는 식사 자리에서 돈 자랑을 많이 했다. 유럽의 이곳저곳 안 가본 데가 없었다. 스위스는 처음이었다고 했던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녀는 사십 대로 보이는 딸과 초등 고학년으로 보이는 손녀와 동행이었다. 어쩐지 딸을 수족 부리듯 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나는 그녀가 가족의 여행 경비를 다 부담한 게 아닐까 짐작했다.
그날 일정은 오직 마테호른을 오르는 것밖에 없었다. 한 사람당 약 십만 원 정도를 내야 하는 옵션 조항이었다. 산에 오르지 않는 사람은 종일 체르마트에서 알아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대형 버스에 가득했던 사람들 가운데 옵션을 선택하지 않은 건 퇴직 은행원이라던 부부와 그 아주머니 가족, 두 팀밖에 없었다. 밥 먹을 때마다 돈 자랑이라도 하지 말든가. 스위스 여행은 몽블랑 아니면 마테호른이 전부가 아닌가. 그 아주머니에게 부아가 치밀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딸에게 물었다.
“왜 안 올라가세요?”
“엄마가 힘들다고 하세요.”
“그럼 두 분만 올라가도 되지 않나요?”
딸은 머뭇대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오후 늦게 우리 일행이 내려왔을 때 딸이 바삐 내게 다가왔다.
“어땠어요? 좋았어요?”
나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열차가 마테호른 정상의 코앞에서 멈췄고 짧은 팔을 입고 그저 동네 뒷산에 오르는 느낌으로 돌아다녔노라, 전할 수 없었다. 티브이로만 보던 빙하와 크레바스를 보았다는 말도. 돌아오는 길에 퇴직 은행원 부부가 내 앞에 앉았다. 두 사람의 분위기도 심상치 않았다. 부인은 입을 꽉 닫은 채 줄곧 창밖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돈이 아까워서든 혼자 네다섯 시간을 보낼 두려움에 이기적으로 굴었든 간에 산에 오르지 않겠다고 결정한 그들은 어리석었다. 그들은 가족을 위해 여행에 거금을 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가족들은 그 여행에서 두고두고 여행의 정수를 놓친 그 좌절감만을 기억할 것이었다. 스위스 하면 자동 반사적으로 그 슬픈 마테호른이 떠오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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