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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의 인생상담]녹두전
  • 안산신문
  • 승인 2024.04.03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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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부부상담사>

 고향의 옛집 부엌에는 커다란 유리창이 있었다. 창을 열면 조각구름이 걸린 한라산 정상이 눈에 들어왔다. 창 옆으로 ㄱ자 형태의 싱크대가 있었다. 엄마는 커다란 대야를 앞에 두고 바닥에 앉았다. 대야 안에는 토막 난 생닭이 가득 담겨 있었다. 엄마는 미리 양념에 재워놓은 그것들에 밀가루를 뿌려 튀김 옷을 입혔다. 그리고 기름이 끓고 있는 프라이팬에 한 조각씩 집어넣었다. 그 고깃덩이 주위로 기름이 자글자글한 거품을 만들며 빠지직 소리를 내었다. 지금도 귓가에 그 소리가 생생하다. 엄마가 튀겨준 닭을 앉아서 먹었던가, 기억에 없다. 아마 작은 접시 하나 들고 엄마 곁에 바싹 서서 정신없이 팬을 들여다보고 있었을 것이다.
 이 이야기를 내 아이들에게 들려준 적이 있다. 그 얘기 끝에 나는 ‘엄마가 해 준 음식 중에 뭐가 가장 좋았어?’ 하고 아이들에게 물었다. 녹두전이었다.
 내 녹두전 레시피의 원래 주인은 언니였다. 언니는 동생들을 불러 자주 밥을 먹였다. 녹두전은 그 밥상에 빠지지 않는 음식이었다. 언니가 해 준 밥을 잘 먹고 집으로 오던 어느 날이었다. 남편이 ‘자기도 녹두전 만드는 법 좀 배워봐.’ 하였다. 나는 남편의 말을 그냥 흘려들었다. 녹두전은 무척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요리 과정이 간단한 음식을 좋아했다. 재료 손질도 양념도 조리도 조금만 복잡해져도 외면해 버렸다. 요리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열정을 쏟아부어야 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내가 녹두전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쳐왔다. 형부가 퇴직하고 언니네가 고향으로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언니가 우리 곁을 떠난다는 게 그렇게 서운할 줄 몰랐다. 그 서운함은 나로서도 아주 낯설었다. 우리는 그동안 학업이다 취업이다 결혼이다 하면서 숱하게 헤어졌다 만나기를 되풀이했다. 그랬는데 그때의 이별은 또 특별했다. 언니네 가족은 고향에 뿌리를 내리고 살 확률이 높아 보였다. 이제 아주 드물게 볼 수 있다는 의미였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곰곰 생각해보면 이유는 또 있었다. 분명하게 의식한 건 아니지만 언니가 가고 나면 지금껏 언니가 도맡아 해 온 일을 내가 해야 한다는 어떤 자각이 있었다. 때가 되면 동생들을 불러 밥 먹이는 일. 언니가 해 준 밥을 날름날름 받아먹을 때는 미처 몰랐던 새삼스러운 의무감이었다.
 나는 이제 녹두전의 대가가 되었다. 깐 녹두 두 봉지를 사 와 깨끗이 씻어 놓는다. 잘게 간 돼지고기도 넉넉하게 양념에 재운다. 잠자리에 들기 전, 대야에 녹두와 쌀 한 컵을 놓고 물을 붓는다. 다음날 녹두가 탱탱하게 부풀어 오를 때까지 계속 담근다. 녹두가 다 불면 소쿠리에 받혀 물기를 뺀다. 그동안 신 배추김치 한 포기도 다지고 숙주도 분량에 맞게 무쳐 썰어 둔다. 녹두를 믹서에 갈아 이 모든 재료를 한 데 섞으면 녹두전 준비는 비로소 끝이 난다. 녹두전은 모양이 아주 중요하다. 크고 넓적하면 맛없다. 나는 언니가 숟가락 하나 분량으로 야무지게 반죽을 퍼 동그랗게 구워내던 걸 기억했다. 그 모양의 기준은 언제나 언니의 녹두전이었다. 내 녹두전 반죽은 언제나 넉넉하다. 조그만 통에 담아 동생들 손에 들려 보내기 위해서다. 그들이 가져간 것을 먹는 동안에 함께 했던 잔치의 여흥을 되새기길 바랐다. 모두 언니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이었다.
 우리 아이들의 녹두전에는 늘 시끌벅적한 가족 잔치가 있었다. 내가 옛집의 유리창과 한라산, 부엌 구조를 닭튀김과 연결 지어 기억하듯 우리 아이들 역시 녹두전을 먹던 가족의 풍경을 오롯이 머리에 남길 것이다. 내 닭튀김과 아이들의 녹두전에는 서러움이 없다. 즐거움이 있다. 음식과 관련해 즐거운 어릴 적 기억 하나쯤 있다는 건 참 다행이다. 음식이 꼭 즐거움과만 연관되지 않는 삶이 많다는 걸 잘 알기에 더욱 감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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