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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미학
  • 안산신문
  • 승인 2024.04.17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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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경<경제학박사>

  “이곳은 언제나 꽃같은 날들이 이어진다. 하늘은 시리게 푸르고 날씨는 덮지도 춥지도 않다. 먹을 것이 풍족하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눈빛과 마음이 선한 이들이 모여 살기에, 그들은 ‘미움’이나 ‘아픔’ 혹은 ‘슬픔’이라는 감정을 모른다. 날이 선 말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어 늘 평화롭다. 이 마을에서는 세상의 빛이 되는 아름다운 능력을 가진 이들이 사람들이 사는 곳마다 온기를 불어 넣으며 달이 뜨면 은은한 달빛 아래 춤을 추고, 해가 뜨면 따뜻하고 눈부신 웃음으로 하루를 살아간다. 
살을 에는 몸의 추위도, 어깨가 움추려드는 마음의 추위도 없다” 윤정은의 장편소설 ‘메리골드 마음 세탁소’에 나오는 맨 앞장의 글이다. 이 글을 읽는 순간 상상력은 파라다이스를 연상시킨다.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가 이런 상태가 아닐까?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곡, 하마스의 이스라엘 테러로 전쟁이 끊이일 않는다.이이러니하(Irony)다. 인류는 스스로 전쟁을 일으키고 반목하면서도 여전히 평화를 욕망한다.
  인간은 평화로운 좋은 삶을 가지고 싶고, 누리고 싶은 간절한 욕망을 지닌 존재이다. 욕망은 인간을 사람되게 하는 에너지이다. 욕망을 잃어버린 삶은 죽음과 다름없다. 우리는 예기지 않은 실패 등 불행이나 슬픔에 맞닿으면 현실에 대한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단계를 거치면서 궁극적으로 욕망을 잃어버린다. 
누군가 나이가 들면 욕망을 내려 놓으라고 한다.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내면에 잠재된 욕망을 불러 일으켜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 실패를 딛고 일어 설 수 있는 힘은 욕망뿐이다. 달라이 라마(Dalai Lama)는 희망은 우리의 실패를 이길 수 있는 힘을 제공한다고 했다. 솔로몬은“모든 살아 있는 자들 중에 들어 있는 자에게는 누구나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낫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리는 욕망(欲望)과 욕망(慾望)을 구분해야 한다. 사전에는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欲望(욕망, Desire)은 무엇을 가지거나 누리고자 하는 간절히 바라는 것이다. 좋은 결과를 기대하고 바라는 희망이고, 간곡히 바라고 원하는 소망이다. 한편 미래의 큰 일을 이루고자 하는 야망일 수 있다. 바람직하고 건전한 기대와 원함이다. 반면 慾望(욕망)은 뒤틀린 욕망이다. 어떤 것을 정도에 지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바람이다. 정욕이나 탐욕과 유사하다. 성경은 인간의 탐욕적 욕망을 금한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 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탐욕이 지혜 있는 자를 우매하게 하고 뇌물이 사람의 명철을 망하게 하느니라”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아니하리라”
  욕망의 진원지는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인간의 속성이다. 우리는 고통을 아픔, 슬픔, 고픔이라고 한다. ..프다는 온전히 채워지지 않은 결핍이라고 볼 수 있다. 결핍은 없다면 욕망도 없다. 우리는 고통을 벗어나고 싶고, 모자람을 채우고 싶고, 꿈을 이루고 싶은 욕망으로 살아간다.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욕망을 욕구(want)와 요구(need), 욕망(Dsire)의 세 가지 요소로 구분했다. 욕구는 갈증, 식욕 등 생리적이고, 본능적인 필요성이고, 요구는 욕구를 구체화하여 언어를 통해 표현된 것이다. 
욕구는 확실한 대상을 목표로 하기에 충족이 가능하지만 요구는 완전한 언어적 표현이 어렵기 때문에 욕구와 요구의 사이에 욕망이 생겨난다고 했다. 욕구계층이론으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매슬로우(Abraham Harold Maslow. 1908~1970)는 욕구를 결여와 결핍을 충족시키려는 생리, 안전, 사회, 존경의 욕구와 자아실현의 성장욕구로 나누었다. 인간은 낮은 단계의 결핍욕구가 충족되면 높은 단계의 성장욕구로 발전한다고 했다.
  아름다운 욕망은 나다움의 완성을 지향하는 것이다. 나다움을 위해 영적, 도덕적 결핍을 채우려는 거룩한 욕망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총선이 끝났다. 여당은 참패를 면치 못했다. 야당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악조건에서 승리했다. 
결과에 대해 논하려 하지 않는다. 다만 당선된 국회의원들이 품었던 아름다운 욕망들 곧 정치가다움을 추구해야 한다. 막스베버는 정치가를 망치는 악마의 속삭임을 “남 탓하는 일”이라고 했다. 좋은 사회, 좋은 삶을 이끌기 위해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정치적 덕성을 지닐 때 좋은 정치인이 될 수 있다. 세상이 무섭게 변하고 있다. 
전쟁이 끊이질 않고 우리 역시 위협을 받고 있다. 그 여파로 세계경제는 우리 마음대로 어떻게 할 수 없다. 밖은 요동치는데 안에서는 화합과 협력은 뒷전으로 밀리고, 정치는 사라지고 정쟁만 있다면 희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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