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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의 인생상담]글이 안 써지는 이유
  • 안산신문
  • 승인 2024.04.17 09: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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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려니<부부상담사>

 아침에 집을 나서니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집안에서 볼 때는 비가 조금 내리는 것 같았는데 아니었다. 전철을 이용할까 하다가 차를 끌고 나섰다. 두두둑 차체에 떨어지는 빗소리에 길 안내 음성이 잘 들리지 않았다. 빗물이 쉴 새 없이 시야를 가리는 통에 앞 유리 와이퍼를 빠르게 작동시켜야 했다. 월요일이라서 그런가. 차들도 좀체 속도를 내지 못했다. 비 오는 날,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 안. 브레이크에 올린 발을 밟았다 떼었다 하며 생각에 잠겼다. 나는 어제 왜 글을 쓰지 못하였을까?
 나는 여기 <인생 상담>에 올라오는 에세이를 보통 주말에 쓴다. 그런데 어제는 컴퓨터 앞에 꽤 오랜 시간을 앉아 있었음에도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보통 글쓰기가 힘들 때는 글감이 없을 때다. 그러나 어제 내가 글을 쓰지 못한 이유는 그게 아니었다. 어제 내 머릿속을 구르던 글감은 오히려 너무 많아 문제였다. 어제는 생각나는 몇 가지 글감을 몇 대목 적다가 자꾸만 지우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작가는 글을 쓰면서 자기 검열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가족이나 친구, 주위 사람들을 글에 등장시킬 때 한 번쯤은 그들의 입장이 되어 본다. 혹여 그들이 내 글로 인하여 마음을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런 자기 검열 끝에 나온 글에도 상처받는 사람이 있었다. 여기서 그게 누구인지 콕 집어 밝힐 수는 없다. 다만 나와 아주 가까운 사이라는 점만 말해둔다. 그 사람이 꼬박꼬박 글을 읽어주는 것은 언제나 내게 큰 기쁨을 준다. 진심이다. 그런데 아주 가끔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뭐라 할까, 눈치 보지 않고 속 시원히 말하고 싶을 때가 있다.
 얼마 전에는 후배 하나가 내 에세이를 읽는다고 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바쁜 시간을 쪼개 볼 만큼 내 글이 그렇게 대단했던가? 잠시 혼란스러웠다. 후배가 내 글을 읽는 이유는 곧 밝혀졌다. 그 역시 어딘가에 칼럼을 연재하는 중이라 내 글에 관심을 둔 것이었다. 어쨌든 이 은밀한 독자의 등장도 내 글감에 적잖은(?) 제약이 된다. 내 글이 후배와 내가 함께 속한 어느 커뮤니티에 누가 되면 안 되기 때문이다. ( 작가는 이 모든 제약을 가뿐히 넘어서 하고픈 말을 요령껏 할 수 있어야 함을 잘 안다. 그러니 은밀한 독자여, 내 말을 무시하시라)
 글이 잘 안 써졌던 또 다른 이유가 있다. 그날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날 나는 서울에서 일을 마치고 동부 간선 도로를 타고 집으로 오는 중이었다. 갑자기 이곳저곳에서 내게 전화가 쏟아졌다. 안산, 수학여행, 고등학생. 나를 아는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오는 것이 당연했다. 내 아이도 당시 고등학생이었기 때문이다. 그 일이 벌써 십 년이나 되었다.
 나는 그동안 진실 규명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에게 크게 도움이 되지 못했다. 그래도 때가 되면 이렇게 마음이 어수선해진다. 글을 쓰면서도 재밌거나 행복했던 얘기를 써서는 안 될 거 같았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아닌데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어쩌다 보니 글을 쓰지 못한 변명을 늘어놓은 셈이 되었다. 글이 우왕좌왕이다. 어쩌겠는가? 이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이 그와 같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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