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명을 깜박 잊었지만 신부님이 남긴 다음 일화는 내 평생 머릿속을 떠날 줄 모른다.
신부님은 꽃을 무척이나 좋아해 화단 가꾸기는 마치 성전을 꾸미듯 정성을 다하는 그의 유일한 취미여서 성당은 늘 꽃향기로 가득 찼다. 그리고 아이들을 더없이 사랑해서 믿지 않는 동네 꼬마들까지 성당의 좁은 마당이 그나마 맘껏 뛰노는 유일한 좋은 놀이터로 개방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여름철의 한낮 마당에서 천방지축으로 뛰놀던 꼬마들이 그만 화단을 엉망으로 망가뜨리고 말았다. 사무장이 지체없이 꼬마들을 모조리 꿇어앉히고는 호되게 꾸짖고 있는데 외출에서 돌아온 신부님이 그 광경을 보게 되었다.
사무장은 자신의 관리 소홀을 연신 미안해하면서도 꼬마들의 탓에 무게를 두어 자초지종을 보고하는 것이었다.
신부님은 꼬마들을 일일이 일으키고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은 채 인자로이 사무장에게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웃는 꽃을 보셨나요? 아이들은 천심인 거요”라며 사무장의 처진 어깨를 툭툭 다독이는 것이었다.
동심은 천심-그래서 ‘부자가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지나가기보다 어렵다’지만 동심은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임을 일깨우신 것이었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거울’이라 했다. 그러니 동심이 아닌 것이 동심을 나무라거나 꾸짖는 일은 정상이 아닌 성싶어 나는 자괴를 금할 길이 없었다.
웃음은 언제나 친근감과 화해의 신호이거늘 인간에게만 부여된 이 특전을 왜 모든 상생의 터전에서 맘껏 뿌리지를 못하는 것일꼬.
‘등산길에 길가에 쓰러진 야생화 한 포기를 일으켜 가꿔주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아름답게 본 것을 남에게도 아름답게 보게 하려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가?’
이 또한 50여년전의 어느 일간신문 사설의 도입부 글귀이다.
금방 ‘자연은 생명이다’라는 표어가 연상된다. 따라서 자연을 훼손하는 행위는 곧 생명을 해치는 범죄행위라고도 할만하다. ‘구름치마에 시를 쓰노라’했던 옛 시성(詩聖)들의 낭만과 순수가 지금은 마냥 어디를 떠돌고 있는 것일까? 그 풍류를 맛들일 길이 없으니 삭막하기만 하구나. 나의 이기심이 나를 옥죈다.
‘모든 것은 제자리에 있을 때 아름답다’했던가. 야외에라도 나갔다가 작은 돌멩이 하나라도 슬쩍 들고 오지 말자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공유돼야 한다.
그런데 요즘 사설에서 다루는 논조들의 거의가 전투적이며 살벌해 읽기는 하지만 뒷맛이 개운할 때가 별로이다. 사설이 곧 세태의 반영이니 마음은 노상 기댈 언덕을 잃어 불안하고 자주 갈피를 못 잡게 한다.
이는 정치가 자신감을 잃고 갈팡질팡해 국민으로 하여금 항상심(恒常心)을 갖게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아전인수로 시종하는 당쟁은 이젠 정말 싫증난다.
나는 종종 정치한다는 사람들을 정원사에 비유하곤 한다. 정원사는 나무나 꽃의 성장을 각별히 별나고 효율적으로 돕는 기술자이다.
그들에 의해 청색 장미도 탄생했고 가시 부드러운 선인장도 육성됐다. ‘비탈에 선 나무도 하늘을 향해 자란다’는데 그런 나무들을 직접 손보는 일은 얼마나 복되고 보람된 축복일까 싶어 부럽기조차 하다. 가지치기도 나무를 위해 하는 일인 것이다.
그런데 정원사 중에는 분재목 가꾸기를 본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이 심심찮다. 그들은 하늘을 향해 자라는 나무를 캐다가 억지로 구부리고 비틀어서 그릇에 가두어 성장을 더디게 하는 수법으로 이른바 ‘병신나무’를 만들어서 비싼 값을 매기고는 좋아라 우쭐대는 부류이다. 더 큰 문제는 병신나무인 그 분재목을 명품 또는 상품이라면서 맞장구치는 무리들이 끊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더더욱 참기 어려운 것은 성직자나 학교 선생의 탈선엔 가혹하게 대응하면서 왜 민의를 대변한다는 미명 아래 후한 보수에다 특권을 누리면서 공공연히 파렴치한 짓거리를 일삼는 그들에게 면죄부까지 주어 화를 자초하느냐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여 그대 이름은 민초’인가?
이런 이웃들은 연쇄살인범 못지않게 위험한 존재이다. 노상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겠지만 까마귀 노니는 곳에 가면 백로인들 별 수 없이 물들더라.
개혁은 결단코 입으로 성취되진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저마다의 개혁부터 우선 행해져야 하겠지만 왠지 윗물에 노상 신경이 쓰인다. 어느덧 습성이 된 것일까?
나는 오늘밤도 아련히 이 나라 지천에 웃는 꽃 피기를 동심으로 꿈꾸려고 기도하며 안온한 잠을 청한다.
<이기진 논설위원 webmaster@an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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