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도 집에서 민주를 봐주게 되었는데 『할아버지! 우리 병원놀이해요! 네?』하고 졸랐다. 『민주가 심심한 모양이구나. 그럼 할머니하고 셋이서 함께 해 볼까?』하자. 『할아버지하고 할머니는 환자니까 여기서 기다리세요』하고는 작은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조금 있으려니 『이재중님 들어오세요!』하고 내 이름을 호명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방으로 들어가 보니 자기는 컴퓨터 의자에 앉아서 『어서오세요』하면서 그 앞의 의자에 앉으란다. 시키는 대로 의자에 앉자. 『어디가 아프세요?』하고 묻는다.
그래 어쩌나 보려고 『어디가 아픈지 잘 모르겠는데요.』하고 대답했더니 배를 만져보고는 『아! 배가 아프군요』하면서 앞에 있는 침대에 누우라고 하고는 배를 꾹꾹 몇 번 눌러보고서 『주사를 맞고 약도 먹어야겠는데요.』하면서 여기 저기 찾아다니더니 어디서 볼펜을 줏어가지고 와서는 엉덩이에 대고 찌르는 시늉을 했다.
나는 조금 있다가 『이제 배도 안 아프고 다 나았으니까 가볼께요.』하면서 일어나려고 했더니 질겁하면서 진찰할 곳이 더 있으니 그냥 누워 있으라고 못 일어나게 몸으로 눌렀다. 그러더니 어디서 찾아왔는지 손전등을 가지고 와서는 불을 켜고 내 입에다 갔다대면서 입을 벌리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입을 벌렸더니 전등을 이리 저리 비치면서 들여다보고는 『이가 썩었네요 사탕을 먹으면 꼭 이를 닦아야 해요! 알았어요?』 『네』 그것으로 끝난 줄 알았더니 이번에는 귀속에다 손전등을 비추고 들여다본다. 그리고는 『귀속에 물이 찼네요 약을 드릴 테니 잡수세요.』
나는 우습기도 하고 기가 차서 물었다. 『이민주 선생님은 자격증이 있어요?』 그러자 『자격증이 뭔데요?』하고 되물었다. 『자격증이란 의사가 되려고 시험을 봐서 합격한 사람에게 의사 노릇을 해도 좋다고 나라에서 인정해 주는 거예요. 우리 선생님은 그런 자격증을 가지고 있나요?』 『그런거 없어요.』 『그럼 선생님은 돌팔이 의사네요?』 그러자 『쉿! 조용히 해요! 돌팔이라도 잘해요』하면서 그만 일어나 밖으로 나가란다. 그리고는 『박명규님 들어오세요!』하고 할머니를 호명했다.
나는 이 기상천외한 진찰을 받고 나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됐다.
첫째는 애들이 갖는 순수함이다. 그동안 민주가 아플 때마다 병원에 가서 의사가 하는 모습을 유심히 보고는 그대로 흉내를 내는 것이다.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고 감기가 심해서 병원에 갔더니 중이염이 됐다고 해서 치료를 받았고 이가 아파서 치과에를 갔었고 요즈음에는 태어난 지 한 달이 조금 지난 동생 호준이가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을 했었기 때문에 제 어미와 같이 병원에 가서 살다 싶이 했었다. 이 순수한 마음에 비춰진 의사들의 모습이 고압적이고 불친절하고 보기 싫게 비쳐졌더라면 그는 그것이 원칙인 줄 알고 그렇게 따라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애들 보는데는 물먹는 것도 조심해야한다.」던 옛 어른들의 말씀이 그렇게 가슴에 와 닿을 수가 없었다.
둘째는 그가 가지고 있는 진지함이다. 『이제는 아픈 곳이 없다』는 데도 손전등까지 가지고 와서 귀속까지 들여다보는 그 진지하고 최선을 다하는 모습 앞으로도 그런 마음가짐으로 자라줬으면 하고 바라는 마음이 간절했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자기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자」는 그런 진지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간다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밝고 행복해
질 것인가?
그러나 당선되기 위해서는 「민생문제」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던 사람들이 지금 『오직 자기주장만이 옳다고』 싸움으로 날을 보내고 있으면서 오늘의 현실에 대해서는 핑계 대기와 변명에 급급하고 있어 생활고에 어려운 삶을 살아가는 서민들의 마음을 더욱 서럽게 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길게 꼬리를 물고 손님을 기다리며 서 있는 빈 택시기사의 애타는 소리가 들리지를 않는가?」「수확을 앞두고 있는 논과 밭을 트랙터로 갈아엎는 농민들의 애 끓는 소리가 들리지를 않는가?」 「솥단지와 냄비를 내 던지며 울부짖는 영세 음식점 주인들의 성난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돌팔이라도 잘 하면 된다』는 민주의 말이 아니라도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를 잘 잡는 고양이가 좋은 고양이다」
<이재중 논설위원 webmaster@an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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