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 수그리고 걷는
겨울바람 속에
어머니 가만한 말씀 들려온다
『얘야 차 조심하거라』
갈 곳 몰라 비틀거리는
외로운 저녁답
어둠 속에 어머니 음성 들려온다
『얘야 마음 편한 것이 제일이다』
옛날 그 옛날엔
잔소리같이 들리던 말씀
옛날 그 옛날엔
쓸데없는 걱정같이 들리던 말씀
『네! 어머니/차조심 하겠습니다』
『네! 어머니/욕심없이 마음 편히 살겠습니다』
(전문)
한 아이가 산에 가서 실컷 소리 지르고 집에 돌아와서 투덜거리며 어머니께『엄마 산이 나더러 나쁨 놈 하고 욕해요』라고 고하자 어머니가 얼른 알아차리고는 『그랬어? 그럼 지금 바로 다시 산에 가서 「나 너를 사랑한다」하고 크기 외치고 오렴』하고 타일렀다. 아이가 어머니 시키는 대로 했더니 산이 『나 너를 사랑한다』고 화답하니 아이가 신이 나고 기뻐서 연거푸 『나 너를 사랑한다』고 되풀이했다는 이야기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해 준다. 이처럼 메아리는 내 한 것에 대한 정직한 울림인 것이다. 이게 바로 상생이다.
「간 밤 금실지락(琴瑟之樂)을 맛본 아내는 푸짐한 아침밥상 차리기에 분주하다」는 우리네 해학적 속담 또한 같은 맥락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답답한 것은 이 간단한 이치를 우리의 각계 지도층이 모른 체 한다는 사실이다. 왜? 양심에 켕기는 게 있어서일 거라고 생각한다. 왜 하필이면 양심에 켕기는 짓거리를 고뇌하며 골라 발상하고 그리고 거침없이 행하는 것일까? 안타깝다.
왕년에 장병림 교수(서울대 심리학)는 「창녀들이 대낮에 떼 지어 외출해선 거리에서 군것질을 하면서도 도망칠 궁리는 않고 저녁이면 다시 홍등가 그 소굴로 돌아가는 것은 보이지 않는 족쇄를 겁먹고 오히려 도망치려는 궁리보다 돌아가는 편이 낫다고 체념하기 때문」이라고 하던 말이 생각난다. 이 나라 각 계 지도층들이 소속의 족쇄에 체념하여 「기왕이면」하고 오히려 한 술 더 뜨고 있는 것은 아닐는지…….
1월 13일 저녁 6시부터 2시간 남짓 「KBS」TV에서 「지진·해일 피해민들과 하나 되는」프로가 진행되는 동안 모금된 의원금이 물경 11억원이 넘었다는 보도이다. 오랜만에 맛보는 가슴이 뭉클할 일 아닌가?
문득 톨스토이가 전 재산을 농노에게 나눠주면서 한 말이 생각났다. 『돈은 퇴비와 같아서 쌓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뿌리면 대지를 비옥하게 한다』
이처럼 사랑과 봉사는 잔잔히 남의 얼굴에 미소를 깃들게 한다. 그리고 그 미소가 나에게로 돌아와서 마음의 평화를 누리게 한다. 아기를 어르던 심성을 헤아려 보면 쉬이 납득되리라. 우격다짐으로 이룬 것은 상상누각처럼 위대롭다.
1980년 테레사 수녀가 우리나라를 첫 방문했을 때의 일이 기억이 생생하다. 맨발에 값싼 샌들을 신은 허술한 차림이었다.
이틀 묵고서 떠날 때의 일이다. 김포국제공항 귀빈실에서 배웅 나온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받은 선물은 이틀 동안의 행적을 찍은 세 권의 두툼한 앨범이었는데 첫 권의 서너 장을 넘기시더니 앨범을 접는 것이었다. 추기경이 계속 펼치면서 설명을 하자 수녀님은 외면하며 딱 잘라 한 마디 뿐. 『내 얼굴은 매 한가진데 어쩌자고 이렇게 많이 찍었나요? 그 비용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도우실 일이지요?』그 때 곁에 섰던 한 기자가 『저는 수녀님의 덕을 기려 이틀 굶었어요』라고 능청을 떨자 『고맙소 이렇게 아낀 걸 내게 주었더라면 어려운 이들에게 나눠주고 떠날 것을...』라며 못내 아쉬워하는 것이었다. 오로지 베푸는 일념으로 뭉쳐진 그런 모습이었다.
옛날 초등하교 교과서에서 읽었던 「바람과 해님의 길손 외투 벗기기 내기」가 물안개처럼 아련히 피어오른다. 먼저 바람의 차례였다. 바람은 뿔을 세우고는 바람통을 몽땅 열어 거세게 다그쳤지만 길손은 오히려 외투를 단단히 몸에 감고 두 손으로 바싹 죄기만 할 뿐이었다. 해님의 차례가 되자 해님은 따뜻한 빛을 계속 보내니 길손은 땀이 나서 외투를 벗어 들고 갔다는 줄거리였다.
「심은 대로 거둔다」고 한다. 그것 보다는 「심은 가꾼 대로 거둔다」가 더 옳다. 누군가가 말했다. 『사랑은 우리를 위하여 시간을 비워 놓았네. 마지막 남은 진실 하나를 거기 채워 넣어야지』라고.「새해에는 미친 듯이 환호 할 일들로 충만 되게 하소서」이것이 나의 매일 기도이다. 그렇게 되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어머니」란 말과「사랑」이란 말과「양심」이란 세 가지 말이 으뜸 자리에서 추호도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일상에서 입버릇이 되어야 할 텐데…….
이기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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