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9월27일 새벽 4시10분쯤의 일이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동 1가네 있는 영일시장 앞이 문제의 장소다. 새벽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어둑한 여명을 뚫고 열심히 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 애를 쓰는 시간이었는데 그중에는 야채장사를 하는 박미영씨도 포함되어 있었다. 박미영씨는 남보다 싱싱한 야채를 구입해서 하루 일과를 시작 하려고 부지런히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과속으로 달리던 택시 한대가 박미영씨를 치고 어둑한 새벽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사고가 여기에서 끝났더라면 흔히 있는 보통의 뺑소니 사고라고 이해하겠지만 이 사건은 그저 억울한 뺑소니 교통사고 정도가 아니라는데 에 우리의 안타까움과 한숨이 있는 것이다.
채소를 받아 그 날 장사를 하려고 박미영씨는 가방 속에 230만원의 현금을 넣고 나왔는데 도시락과 함께 들어있던 그 돈이 택시에 치이면서 길거리에 흩날리게 되자 주변에 있던 사람이 삽시간에 날고기를 나누어 먹는 야수나 맹수로 변하게 된 것이다. 당장 피를 흘리면 쓰러져 신음하고 있는 사람은 아랑곳 하지 않고 모두들 돈을 줍는데 정신이 없었다. 더구나 그 돈은 32세의 젊디젊은 여인이 남들처럼 한 번 잘 살아 보겠다고 준비해 가지고 나온 피눈물 나는 돈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그 곳 주변의 사람들은 정신없이 흩날리는 돈을 저마다 주어들고 달아난 택시마냥 그렇게 총총히 그 자리를 떠났다는 것이다.
좋은 말로 지나가는 사람들이 돈을 주워 갔다는 것이지 그거야말로 차에 치어 쓰러진 사람의 돈을 훔쳐간 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하지만 모두가 그런 비 양심과 몰염치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쓰러진 박미영씨를 발견하고 주위 사람들에게 살려달라고 애걸하게 외쳤던 사람은 놀랍게도 사고 현장 가까이에서 포장마차를 하던 39세의 박소길씨였다. 전남 신안구에서 올라와 배운 것은 없어도 부인과 함께 바르게 살면서 그 날도 밤새워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말아 팔며 자리를 지켰던 분이다. 사고가 난 것을 직감한 박소길씨는 『왜들 이러십니까? 돈은 주워서 가방에 넣어 주시고 이 분 좀 부축해 주세요』하며 미친 듯이 외쳐댔지만 누구 하나 손 내밀어 도와주기는커녕 쓰러져 있는 젊은 여인의 돈을 주워 사라지더라는 것이다. 환자를 옮겨야 할 운전들마저 차를 세워 놓고 돈을 주울 뿐 환자를 병원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양심이 실종되고 비인간적인 사람들만 북적대던 그 곳에서 착한 사마리아 사람 같은 포장마차 주인 박소길씨는 주위의 도움을 포기하고 어쩔 수 없이 가까운 공중전화로 달려가 파출소에 사고 신고를 한 뒤 피투성이가 된 여인을 부축했다. 그러나 때때로 그 포장마차에서 국수로 끼니를 때우면서 열심히 살아 보려고 몸부림쳤던 32세의 박미영씨는 끝내 숨을 거두었고 박미영씨를 친 뺑소니차는 어둠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그 순간 우리 사회의 양심도 어둠 속으로 사라진 뺑소니차처럼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는지 모른다. 그렇게 사라져버린 우리 사회의 양심 우리 시대의 양심은 영영 되돌아오지 않을 것인지 정말 두렵고 가슴 떨린다.
사라진 우리 사회의 양심은 언제쯤에나 되돌아올 것인지…
박규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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