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은 그 달을 가장 행복하게 바라 볼 수 있는 가을 명절이다. 어쩌면 달의 얼굴도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울는지 모른다. 동서남북에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타향에서 외롭게 혹은 서럽게 바라 봤을지도 모르는 달을 모처럼 자리를 같이 하여 바라볼 수 있기에 그것만으로도 아름다운 것이 한가위 보름달 일 것이다. 그 달이 올 한 가위에는 구름에 가려 조금밖에 안 보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조금밖에 안 보이면 어떠한가. 하늘에 한가위 달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사람들에게 서 구름은 절대로 보름달을 가져가지 못할 것이다. 보름달 비록 구름에 기리워도 희망을 잃지 않고 열심히 산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구름사이로 보일 듯 말 듯. 살짝 그리고 빙그레 웃음 지어주는 달빛이 더욱 고맙고 눈물겨운 것일 수 있으니까.
<눈물 나올 만큼 좋은 이야기>라는 책이 있다. 일본의 한 민간단체가 30년 동안 작은 친절 운동을 일으킨 이야기들을 모아서 만든 이 책에 실린 123편의 애틋한 이야기들 중에 사업에 실패하고 살길이 막막해진 어떤 가장의 이야기가 있다.
중소기업의 사장으로 있던 그는 뜻하지 않은 사업의 실패로 막노동판으로 내 몰렸다. 다만 몇 푼이라도 벌기 위하여 안 해보던 노동을 한다는 것이 나이가 57세나 된 전직 사장으로서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다른 도리가 없었다. 주변의 보는 눈도 있고 하여 아예 먼 타향으로 가 힘든일을 하게 된 그는 점심 한 그릇을 먹어도 가장 싼 집을 찾곤 했다.
그 날도 싼 집을 찾아 골목 골목을 도는 중 좀 작은 집이 눈에 띄어 오늘은 이 집에서 점심을 먹자고 들어갔는데 문을 들어서는 순간 그는 ‘아차’ 했다. 그 집은 겉만 작아 보였지 고급음식점이었던 것이다.
“이 일을 어쩌지.”
다시 문닫고 돌아 나가기는 자존심이 허락하지를 않고 식사를 하고 가자니 분수에 맞지를 않고. 에라 모르겠다 하며 앉을 자리를 찾으려고 보니 화이트 컬러들이 넥타이를 메고 여기 저기 앉았는데 잡일하다 온 자기 옷이 너무 초라하고 창피했다. 결국 구석으로 가서 죄지은 사람처럼 앉아 몸 둘 바를 몰라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그를 향해 어떤 회사 여직원 같은 예쁜 아가씨 하나가 가까이 다가왔다. 그녀는 물주전자의 물을 한 컵 따라 주면서 “물 마시세요” 하고 빙그레 웃었다. 순간 이 외로운 나그네의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아올랐다. 그리고는 고마움에 복 받쳐서 엉엉 울고 말았다. 돈으로 환산할 가치도 없는 단지 식당 주전자의 물 한 컵이었는데 수고라고 할 것도 없는 단지 빙그레 웃은 것이 전부였는데 한 컵의 물 때문에 눈물 솟은 사람이 있었다면 빙그레 미소지어 준 것 때문에 엉엉 운 사람이 있었다면 우리는 그 물 컵의 사람 그 미소의 사람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카드 빚에 쪼들려 2000만원에 심장을 떼 낸 무직자 노동자 아르바이트생이 있다고 한다.저승사자같다는 단전통지서를 받고 전기가 끊겨 촛불로 지새거나 단전위기에 놓인 집이 48만이라고 한다. 생존의 무게가 어깨를 짓누른다는 가난한 가장들이 가짜 빚 독촉장까지 받으며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금으로 포장한 양주 한 병을 몇 천만 원씩 주고 추석선물로 사는 사람들이 있다. 민생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 배 채우기에 급급한 기득권자들은 여전히 자기들이 훌륭한 지도자라고 명함을 찍고 있다. 그러한 먹구름들이 보름달 같은 우리 이웃들의 얼굴을 자꾸 가리운다. 보이지 않게 가리운다.
그러나 한가위 밤하늘 달이 않 보여도 환하듯 우리 가난한 이웃들의 마음 또한 그러할 것이다. 비록 모든 것이 다 가리워 졌어도 어두울 수 없는 마음으로 웃는 사람들의 한가위 먹구름이 아무리 가득한 하늘일지라도 구름은 곧 흘러 갈 것이고 보름달이 다시 하늘과 땅을 아름답게 할 것이다. 가난한 이들의 꿈과 희망 또한 그렇게.
최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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