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독서삼매경에 푹 빠지기를 작심하고 우선 詩<곱게 늙고파서>를 지어 아담하게 詩畵로 꾸몄다.
나 지금
나이는 80대 몸은 50대 맘은 20대
나 10년 후면
나이는 90대 몸은 60대 맘은 30대
그렇게 순조로고픔 주름에 새기면서
날마다 다가오는 저녁놀 밀쳐내고는
밝게 차오르는 해돋이 합장하는 삶이어라
꿈은 영원한 나의 동반자 때론 절대자
끝이 올 때까진 끝이 아니라 결단코!
살아 오면서 터득한 것은 행복이란 삶의 리듬을 타는 것이더라. 내가 보다 더 여유롭게 지혜롭게 늙는 연습하는 까닭이다.
암으로 작고한 정채봉님(소설 초승달과 밤배의 작가)이 투병중 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다 고안해낸 비법이 “눈을 감고 잠이 들 때까지 그날 있었던 일 중에서 가장 기분 좋았던 일을 떠올리고 그 생각만 하다가 잠이 드는 거죠. 그러면 아주 편안한 잠을 잘 수 있어요”라는 것이었다고 한다.
문제는 그 가장 좋았던 일이 날마다 있어야 할 텐데… 그 주체는 어디까지나 ‘나’여야 하리.
날마다 눈을 뜨는 순간부터 말을 하고 사는 우리입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늘 좋은 말을 해야지 하면서도 결심과는 달리 무례하고 사랑 없는 말을 더 많이 내뱉고 후회하곤 하는 나약한 우리입니다. 그러나 아주 조금만 노력하면 무미건조함에서 감탄으로 부정에서 긍정으로 교만에서 겸손으로 건너가는 표현을 찾아 하며 성숙하는 ‘웰빙(참살이)언어’의 멋진 수련생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만의 언어수첩을 만들어 고운 말을 분류해 두고 실수할 적엔 어떤 말로 하면 좋았을까 검토하면 고운 말 쓰기에 도움이 될 거예요.
고운 말(향기로운 말)을 하면 고운 말로 메아리가 돌아오는 기쁨! 이해인 수녀님의 글이 잔잔히 가슴을 적시네.
신혼치고 잉꼬부부 아닌 커플이 없다. 그러나 이혼하는 사람들의 이유를 보면 ‘성격차 때문’이 아닌 경우가 드물다. 진짜로 성격 차이 때문이라면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성격 차는 처음부터 있을 수밖에 없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한 두 사람이 어떻게 성격 차가 없겠는가. 다만 처음에는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 때문에 그것이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요즘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하고 참을 성이 적은 부부들이 “자식 때문에 발목이 잡혀 최악의 상황을 참고 살아야 하느냐”고 항변하는데 그러니까 최악의 상황에 이르지 말라고 예로부터 부부간의 일상의 화목을 강조하는 것이다라는 김영복 교수의 정곡을 찌르는 충고가 찡하니 가슴에 긴 여운을 긋누나. 느린 느낌이 더 아프다.
배고픈 사람이 정말로 원하는 것은 밥 한 그릇이 아니라 사람대접이다. 민들레 국수집을 찾아오는 손님은 하느님이 보내신 大使이다. 그래서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불러 드리고 최대한 각자의 식성에 맞게 대접하려고 애쓴다.
손님들이 주눅들지 않도록 민들레 국수집은 늘 작고 허름한 모습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동정이 아닌 사랑을 나눌 것. 지금 당장은 작고 보잘것없는 씨앗도 사랑을 쏟으며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할 것이다.
이는 세 평도 채 안되는 곳에서 하루 백 명이 넘는 노숙자들에게 따뜻한 밥을 지어 대접하는 서영남 주방장이 쓴 「배고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란 글의 맺음이다. 인간애가 물씬 풍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하면서 내 마음이 과연 보름달처럼 둥굴었던지 두리번거려진다. 부끄럽다.
문득 「동생의 선물」이라는 금인식님의 글이 생각나서 옷깃이 여며진다.
병석에서의 어느날 아침 눈을 떠 보니 머리맡에 곱게 장식한 상자가 놓여 있었다. 상자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더 의아하게 느끼며 뚜껑을 열어 보았다. 순간 나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것이 솟아오름을 느꼈다. 안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굵직한 글씨로 ‘형 새벽 공기야’라고 쓴 메모지가 들어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 상자 속에 무슨 보약이라도 들어 있는 양 가슴 깊이 동생의 정성을 들이마셨다. 그 후 동생의 갸륵한 정성 덕분인지 나는 거짓말처럼 건강을 되찾을 수 있었다.
나는 새벽 공기를 대할 때마다 머리맡에 쪼그리고 앉아서 나를 지켜보던 그 아이의 사슴 같은 눈을 그리며 눈물짓는다. 진정 가족은 산소같은 존재임을 절감케 한다.
어쩌다 화려하고 비싸고 거창한 것에만 익숙해버린 우리네 선물문화 깊이 자성할 때다.
내가 하는 문학은 일종의 대리 경험이기에 늙어가도 시들지 않아 다행이다. 문학을 통해 우리는 삶의 치열한 고통 환희 열정 등을 느끼고 감동한다. 정신적으로 자라나고 삶에 눈뜬다는 것은 때론 아픈 경험이지만 이 세상을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겪어야 할 통과의례인 것을~
여러 글쓴이들의 천정한 마음씀이에 용해되어 나 또한 올 추석연휴엔 전혀 막히지 않아 무척 뿌듯하다.
이기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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