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개혁을 미덕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그러다 보니 6.25가 북침이라 하는 말이 오히려 아름답게 들리고 그 분위기를 보호하고 살리려는 노력이 위대해 보이는 특이한 사회현상을 가져왔다. 이럴 때는 누가 더 혁명적 발상을 하고 개혁적 발언을 하느냐에 초점이 모아질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그날 밤 국내 주요방송사가 고은 시인 집 앞에 설치했던 네대의 대형중계차들을 그냥 철수하지 말고 다만 한곳이라도 마치 노벨상이라도 받은 것처럼 계획했던 방송을 했으면 어땠을까. 가히 개혁적이고 파격적이지 않은가.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미친 짖이라 생각하고 아무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 강정구 교수 같은 용기가 없어서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토록 힘들게 준비한 자료들은 일시에 쓰레기가 되고 말았다. 상을 타면 특종이고 못타면 쓰레기인가. 상과 관계없이 우리문학은 보배이며 수상과 관계없이 우리 매스컴들은 우리문학을 특집으로 다뤄야 할 것이다.
만일에 그 날밤 전국의 매스컴이 일제히 노벨상을 탄 것과 똑같은 차원에서 한국의 문학과 문인을 소개하고 노벨상을 받게 된 해럴드 핀터보다 더 요란스럽게 우리문인들과 그들의 작품을 소개하고 월드컵 4강에 올랐을 때처럼 전국의 식당에서는 밥을 무료로 주고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한국문학’을 외치도록 했다면 다음 번 노벨 문학상이 우리에게 오는데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6.25를 북침이라 주장하는 사람도 있는데 왜 그런 용기는 없는지 모르겠다.
이번에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영국의 헤럴드 핀터(1930~)는 부조리 극작가로 유명하다. 어쩌면 그가 바라본대로 세상은 너무나 부조리하한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는 블레어 영국 총리를 향해서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향해서도 ?바른 소리?를 하는 인물로도 유명다. 특히 영국과 미국의 이라크전쟁 참전을 강력히 비난하는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도 소신있는 발언을 종종 해왔다. 그것을 우리는 용기라고 한다.
유대계 재단사의 아들로 태어나 런던 해크니 문법학교에 다니면서 연극 공연의 주인공 역할을 맡기도 하며 13살에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1957년 첫 단막극 ?방?을 쓴뒤 ?생일파티? ?벙어리 웨이터?로 능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이들 작품의 특징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어떤 기관이 휘두르는 폭력의 위협에 개인이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그는 그가 발표한 작품들을 통하여 구체화되지 않은 위협적 요소를 일상적 상황으로 나타내 작품의 소재로 다루면서 이를 해체시켜 부조리로 제시하였다. 자신 스스로 초기 ?일종의 정치적 극작가?에서 비정치적 작품?을 썼던 시기에 발표됐던 ?귀향?(1964) ?사장된 땅?(1974) ?배신?(1978) 등과. 고문과 핵문제에 대한 관심이 구체화한 작품은 ?최후의 한 잔?(1984) ?산골 사투리?(1988) 등이 이런 작품들이다.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가을의 자연은 혼란스럽도록 황홀하지만 그것은 결코 순서를 어기거나 아니요를 예라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연이다. 우리가 그런 자연에 순응하려면 아예 누가 노벨상을 받더라도 덤덤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면 애석하게 밀려난 작품들을 오히려 더 크게 클로즈업 할 수 있는 개혁가들로 모든 언론은 거듭나야 할 것이다. 한국이 노벨상을 가져오지 못하는 것은 좋은 글이 없어서가 아니라 좋은 홍보가 없어서이다. 비켜 간 노벨 문학상을 위해 제대로 길을 내는 한국 언론이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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