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역시 산으로 가로막힌 아랫마을 과 새로 생긴 마을사이에 왕래가 빈번해지자 산길을 넘어 다니는 것이 크게 불편한 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두 마을 지도자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 “문명의 이기인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있도록 산을 깎아 차도를 건설하자”는데 의견을 모으고 백방으로 노력한 결과 그들의 숙원 사업이었던 번듯한 차도가 드디어 완공되었다.
그 결과 그들의 불편은 해소되었다. 추운 겨울에도 산길을 넘어 다녀야하는 고통이 없어졌고 비 오는 날 자녀들을 학교까지 자가용으로 데려다주니 편하기 이를 데 없었으며 밤이 늦어도 산길을 넘어 다녀야 할 걱정이 없어졌다. 이제 이 두마을 은 한마을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세상에는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문제들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제까지 맑은 공기와 환경을 자랑하던 마을에 자동차에서 뿜어내는 매연과 먼지 공해를 맛보아야했고 자동차에 의한 교통사고로 마을 사람들이 불구가 되거나 생명을 잃게 되는 경우가 생겨 그들 가슴에 아픈 한(限)을 심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집집마다 자동차를 마련하려다 보니 부채와 살림살이의 씀씀이는 늘어만 갔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인간관계도 마치 이 좁은 산길과 마찬가지여서 아무리 교분이 두텁고 친한 사이라도 오랫동안 내왕이 없거나 연락이 끊기게 되면 그 인간관계도 단절되고 만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고 갈파한 소크라테스의 말이 아니더라도 사람은 살아가면서 때로는 외롭고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다른 사람의 위로와 도움을 받고 슬픔과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어울려 살아가는 것이다.
그리고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각종 모임 이라는 것이 있다. 향우회나 동창회 같은 것이 이 같은 모임의 좋은 예(例)이다.
그러나 이런 모임도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고 많을수록 좋은 것만은 아니다. A씨의 경우를 보자 「우선 향우회가 있다. 그것도 도민회 군민회 면민회 까지 있다. 다음에는 동창회가 있는데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별로 전체 동창회 외에 기(期)수별 동창회가 세분되어 있다. 또한 지역사회에 있는 대학 AMP과정 두 군데를 수료했더니 대학별로 총동문회 기수별 동문회 외에 분임조 모임까지 있다. 게다가 전에 근무했던 직장의 동료들로 구성된 친목 모임이 몇 개 현재 그가 하고 있는 사업에 관련된 모임이 또 몇 개가 있고 지역사회에서 사업을 하다 보니 봉사단체에도 참여를 안 할 수가 없어 그것이 몇 군데…… 그리고 사회교육에 참여했더니 수료생들끼리 만들어진 동문회가 또 몇 개 이런 저런 것을 모두 합해서 참여하는 모임이 줄잡아 2 30개가 넘는다.」
물론 모든 모임이 매월 모이는 것은 아니지만 A씨는 이 많은 모임을 쫓아 다니다보면 생업인 자기 사업에 바치는 시간보다 모임에 참여하는 시간이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때도 있는데다가 피치 못해 몇 번 참석지 못하는 모임에서는 신용불량자로 취급당하는 경우도 있다. 뿐만 아니라 이런 모임을 위해 지출되는 각종 회비와 찬조금들도 결코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생활비보다 모임에 관여하는 체면 유지비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이런 것들이 바람직스럽지 못한 사회 현상으로 나타나게 되는 것이 「자기과시 현상」이라 하겠다. 자기가 치르는 애?경사나 행사에 어떤 계층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참석했는가를 가지고 자기의 신분을 재는 잣대로 보여주고 싶어 하고 또 이것을 근거로 그의 가치를 평가하고 인정해 주려는 사회 분위기가 문제다. 이런 거품은 우리가 하루속히 걷어내야 할 과제라고 본다.
「좁은 산길」이라고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닌 것처럼 넓은 차도(車道)라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모두가 그 나름대로의 장.단점과 소중함이 있다고 본다. 새로운 만남과 모임만이 좋은 것은 아니다. 옛날 인연을 소중하게 그리고 새로운 만남을 귀하게 여기면서 자기가 좋아하는 모임을 능력에 맞게 조절해 가면서 부담보다는 참여 속에 보람을 느끼게 되는 것이 참된 인간관계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이재중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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