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세월이 흘러 아이를 둘이나 낳은 지금에도 여전히 전등을 끄게 하길래 남편이 냉소 섞인 말투로 물었다.
“당신 아직도 부끄러운 거야?”
“아니오”
“그럼 왜?”
“또 당신인가 싶으면 맥이 풀여요”
금강산 관광이 절정이었을 때의 일이다. 예쁜 북한 가이드 아가씨에게 경상도 사투리의 한 사나이가 바짝 다가서며 짓궂게 그러나 속삭이듯 물었다.
“아가씨 여기서는 남자들에게 달린 고추를 뭐라카는기요?”
가이드 아가씨가 얼굴이 불그스레해지면서 입가에 감도는 예쁜 미소를 살짝 손으로 가리고는 또렷하게 평안도 사투리로 “요기서는 그걸 ‘속살 쑤시개’라 하디오”
위의 두 가지만으로도 좌중은 한결 훈훈하고 부드러워질 것이다. 그래서 유머들이 삶의 윤활유라고도 일컫는 것이다.
그것이 수다와는 다르게 익살스럽고도 풍자가 섞여 이내 공감을 자아내게 함으로써 긴장으로 경직된 마음을 햇볕이 봄눈 녹이듯 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아마도 우리의 일상이 알게 모르게 얼마나 증폭되는 경쟁의식에서 메말라 있는가를 입증하고 있음이리라.
만약에 떠벌이 수다장이 여자와 박힌 말뚝같은 무뚝뚝한 사나이만 사는 이웃이라면 어찌 오래 머무르고 싶으랴. 오래지 않아 숨이 막힐 것 같아서 떠날 것이 뻔하다. 그러나 아무리 점잖은 척 유머를 낮추어 말하는 위인 일지라도 유머가 숨통을 트이게 한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하리라.
가령 잠에 빠져 있는 며느리가 밖에서 일 시키려고 부르는 시어머니에게 “지금 막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재우려는 참이에요”라고 했을 때 시어머니가 나직이 “아긴 지금 밖에 나와 나하고 놀고 있단다”라고만 하고 웃어 넘기면 얼마나 좋을꼬. 그게 아니고 벌컥 화를 내면서 “무슨 잠꼬대를 하는 거냐? 아긴 밖에서 놀고 있는데. 빨랑 나오지 못해!”하고 소리 질렀다면 그렇잖아도 겹치는 스트레스에 잠이 모자라는 며느리는 얼마나 당혹스럽고 민망스러우랴. 역지사지하면서 측은지심이 우러나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어른 구실을 못하고 있음이다.
평생을 익살로 지냈던 정수동이 죽음에 이르렀을 때 베갯머리에서 지켜보던 제자들이 입을 모아 물었다.
“사부 지금의 심정 어떠하신지요?”
“글쎄다. 처음 가는 길이라서…”하면서 애써 미소를 남기더라 일화에서 그의 넉넉함을 엿볼 수 있다. 죽음이 별 거드냐 그에겐 그저 사소한 일상일 뿐. 다들 단 한번밖에는 못 가는 것을 이것 저것 따지고 챙기느라 법석여서 무엇하리오. 오늘 하루를 마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면 될것을…
그렇지만 유머는 위트(기지)와는 좀 다르다. 여기 위트의 적절한 예화가 사막 떠오른다.
일본이 아직 경제적으로 후진국이었던 때의 이야기다. 값 싸고 질 좋은 일본 상품이 동남아 일대를 크게 잠식하기에 이르자 당황한 프랑스가 제약을 가해 우위를 유지하려고 일본측에 통상조약을 맺자고 제의하면서 그 회담장소를 자국의 마르세이유 항구에서 6마일 떨어져 정박하고 있는 군함의 갑판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일본은 약자의 입장이라 승락했다.
그런데 회담 당일 일본측 대표 일행 이 시간을 넉넉히 잡고 항구에 나갔으나 배가 한 척도 없었다. 극도로 초조하게 기다리는데 허술한 배 한 척이 지나가기에 비싼 값 지불하고 지정된 군함의 갚판에 숨 차게 오르니 프랑스 측 대표가 “우리는 다음 스케이줄이 있어서”라며 일어서는 게 아닌가. 전 세계에 ‘재패니즈타임’을 전파하여 후진국임을 입증시키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통상조약을 유리하게 이끌려고.
그 절박한 순간 난감하기 이를 데 없게 된 일본측 대표가 그들 앞에서 갑자기 차고 있던 손목시계를 풀더니 냅다 바다에 던지면서 “나는 프랑스에서 최고라고 자랑하는 시계라고 해서 비싼 값 주고 샀더니 5분이나 시간이 틀리다니 이런 나라와 통상조약이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 가자! 하면서 철수하려 하자 당황한 건 프랑스측이었다. 영락없이 프랑스 제품의 저질이 전 세계에 알려질 터라 정중히 사과하고서야 회담이 진행되었으니 일본측의 주장이 골격이 된 통상조약이 체결되고 말았다는 ‘외교비사’에서 우리는 위트가 갖는 힘을 읽는다.
이렇듯이 서로 격한 어조로 다투지 않고 난제를 해결하는 인격과 지혜가 현대인에게 절실히 요구된다. 다툼은 우선 내 입을 먼저 더럽히고 남에게는 상처를 남겨 기억하기 역겨워지게 하더라.
바야흐로 국제화시대요 국내적으로는 일일생활권이다. 종횡무진 뛰어야 생존할 수 있다. 그렇다고 좌충우돌해선 더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항상 ‘일단정지’에 유의해야 한다.
촉박한 설레임으로는 남을 앞서지 못한다. 느긋하면서 넉넉하고 여유롭게 관찰하고 유머와 위트로 대처해 나갈 때 비로소 나와 남이 제대로 확인되며 거기서 공통분모를 발견할 수 있으리니 뉘라서 이를 마다하리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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