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절없이 나의 82세도 83세로 주름을 더 새기려 하니 허허로워 더더욱 그러하다. 그러면서 아름다운 황혼빛이고 싶어라.
12월 한 달 동안에 연간 술 소비량의의 3분의 1을 마셔댄다는 우리네의 술판 풍습이 과연 온전한 것인지 오랜 세월 그 대열에 동참해 있었던 나도 몽롱하다. 28세에 첨 입에 술을 댔을 때의 (마산에서) 나의 주량은 주로 정종 두 됫병. 그로부터 꼭 50년을 樹州 ‘卞영로’의 ‘酩酊 40년’이나 羅大坤의 ‘취해서 50년’ 못잖은 酒樂은 누렸으니 酒色에는 여한이 없지만 그래도 날이면 날마다 술 간판이 애틋했던 숱한 추억들을 한꺼번에 뭉개려든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지. 하물며 늙으면 추억에 산다거늘. 추억의 끈을 놓치면 生은 끝자락에 이르는것~
40대까지의 주종은 정종 그 후로는 백알이나 양주 그러다가 퇴임 1년전부터 소주로 전환했었다. 맥주는 싱거워 기피해 왔다. 자연히 요정에서 대포집으로 격하되었는데 거기서 칸막이 없이 탁 트인 인간 풍정에 멋과 맛을 들였었다. 시중하는 아가씨가 없어 야릇한 속계산이 없으니 허전함은 있었지만 위낙 술값이 싼지라 그래서 양껏 흠뻑 취하기가 일쑤였다.
내가 술 잘 한다는 소문은 정평이 나 있는 터지만 비틀거린 기억은 거의 없다. 술자리를 벗어나면 이내 공무원의 품위유지에 신경이 쓰였으니 그 제동이 다행이었다.
나의 음주에는 나름대로 원칙이 있었다. 돌이켜 보니 그것이 건강유지의 비결이기도 했다. 나 보다. 첫째 99% 1차에서 끝냈다. 둘째 안주를 골고루 섭취했으며 셋째 같은 자리에서 酒種을 바꾸지 않았고 넷째 취한 채로는 性愛를 하지 않았다.
나의 酒歷에서 또렷이 떠오르는 것은 우선 40대 시절 명동에 있는 삼오정에서의 일이 꼽힌다. 동료들과 저녁식사 겸 소주판이 벌어졌다. 당시 오늘 날의 ‘참이슬’이 두꺼비표로 경품이 따랐다. 마개를 따면 연거푸 일곱번이나 두꺼비가 나와 공짜술을 마셨던 것이다. 모처럼의 럭키 세븐이 무색해지랴 싶어서 그것으로 끝냈는데 모두들 환호성을 지른 무척 행복한 밤이었다. 명동거리가 몽땅 우리들 것이었으니까.
다음으론 부산시경에 재직시의 일이다. 숙직근무를 하고 있는데 평소 알고 지내던 마산의 한 여관주인으로부터 긴급제보가 있었다. 투숙한 어떤 수상한 자들이 방안에서 무전을 치는 것 같다는 것이었다. 나는 국장에게 즉보하고 국장의 지시따라 직원 2명과 함께 마산으로 출동해선 권총을 들이대고 무난히 일당 3명을 검거하고 증거물도 압수했다. 스릴이 있었지만 실은 겁에 질린 모험이었다. 그때의 식은땀이 지금도 느껴져 오싹해진다.
의기충천해 돌아온 우리에게 국장은 사건을 그냥 중정(中情)담당에게 넘기라면서 우리 일행을 자기 관차에 태우고는 해운대의 요정으로 가서 칙사대접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공작비라면서 금 일봉씩 나눠 주시고 그러면서 “이 일은 절대 비밀”이라는 엄명이 내려졌다. 나중에 추리해 보니 아무래도 중정의 모종 공작을 우리가 잘못 덮친 것 같았다. 전혀 매스컴을 타지 않았고 또 표창도 없었으니.
그 다음으로는 전에 내가 모셨던 K서장이 날 인사동의 요정에 초청하고는 기생들 앞에서 의도적으로 나체춤을 추시면서 잔뜩 경직된 날 누구리려던 모습을 잊지 못한다. 귀로에 차 안에서 모종의 청탁을 하셨는데 사건이 쉬이 풀려 다시 한 번 주연이 베풀어졌었다. 나는 거기서 청탁의 어려움을 깨쳤고 易地思之하는 교훈도 얻었었다. 그 심정 오죽했으랴.
孔子깨선 ‘樂而不’淫’이라 하셨다. 性은 즐기되 음탕하지는 말란다. 술 또한 ‘樂而不過飮’이 아니겠는가. 코가 비뚤어지도록 마시는 것은 修身에도 齊家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함을 주변에서 흔히 본다.
내가 그처럼 애타도록 목말라하던 酒님을 멀리하며 이제는 거들떠 보기조차 않는데는 사연이 있었다. 5년 전의 새벽 3시 버릇처럼 그 시간에 눈을 떴는데 천정이 빙빙 돌고 있었다. 나도 함께 돌고 전엔 없었던 일이었다. 내가 비명을 지르니 겁에 질린 아내는 내 몸무게를 감내하지 못해 119에 신고했고 급히 달려온 건장한 대원들에 의해 부랴부랴 종합병원 응급실에 뉘어졌다. 진찰하더니 사탕 한 알을 입에 넣는 것이 아닌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당뇨! 혈당수치가 35라 저혈당이었던 것이다.
날이 밝자 퇴원해도 된다 했지만 놀랜 아내와 나는 사흘을 더 입원해서 종합검진을 받았다. 다른 이상은 없다는 판정이 내려지던 순간의 안도감을 어떻게 표현할꼬.
나는 그 날자로 술을 딱 끊었던 것이다. 하느님의 1차 경고를 아랑곳 하지 않았다가는 당장 곁에 데려다 놓으실 것 같기도 했고 또 50년을 마셨으면 족할일이지 미련을 버리지 못하면 진짜 미련한 짓이 된다는 자각도 들었었다. 이후 생일에도 한 방울 안 마시는 술!
酒님을 멀리하여 내가 얻은 것은 두 가지는 분명하다.
우선 건강을 자가 체크함에 있어 술이 원인일 거라는 걱정이 앞서지 않아서 마음이 편안하다.
다음은 아내의 신뢰회복이다. 전엔 밤10시 11시가 귀가시간이었는데 지금은 저녁 6시면 집에 와 있다. 함경도 사나이의 결심이 두렵다는 아내의 깊은 주름이 애처로운 것은 모두가 나의 궤도 일탈로 생긴 흉터의 합성으로 여겨져 자괴를 금할 길이 없구먼. 이제 남은 일은 가희 혁명적인 나의 이 변화를 지키는 일 뿐.
<논설위원>
이기진 논설위원
<저작권자 © 안산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