除夜에 이미 묵은 먼지와 찌꺼길랑 훌훌 날려 버리고 말끔히 비운 마음밭에 새 기운이 밀려드니 감당하기 벅찬 감동으로 새 날을 맞는다. 오!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나라 만만세!!
병술년은 개띠 해 본시 늑대가 元祖인 개가 인간과의 오랜 교분에 의해 충직과 의리의 化身으로 변천해 사나운 그 野性을 일편단심 인간을 위해 바친 공덕은 헤일 수 없이 많은 미담으로 점철돼 내려오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 아닌가?
여기 한 예화를 든다. 일본이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갈 무렵 미군기의 폭격을 피해 東京의 저택을 비우고 京都(당시) 미군기는 이 도시를 폭격하지 않았다)로 피난간 어느 귀족의 집 ‘애리’라는 순종 세파아트의 이야기다.
‘애리’는 매우 영리하고 민첩한 개였다. 저자 바구니를 목에 걸어주면 곧장 단골 푸줏간에 달려가서 고기를 날라온다. 늘 일정한 양을 심부름 하기에 그 근량을 잘 알고 있어 어쩌다 푸줏간 주인이 장난삼아 근량을 조금 덜 줄라치면 그 자리에 버티어 꼼짝을 않는 그런 개였다.
어느날 피난살이에 경황이 없었던 마님이 ‘애리’를 불러 목에 저자 바구니를 걸어주었다. 그런데 ‘애리’가 시무룩한채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가 마님의 호통이 떨어지자 대문을 나서는 것이었다.
그런 ‘애리’가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았다. 초조해진 마님은 시일이 흐르자 교통사고로 죽었으려니 생각하며 가엾이 여기면서 잊어가고 있었는데 한달도 더 지난 어느 날 오후께 난데 없이 대문을 긁어대는 이상한 소리에 마님이 대문을 열었더니 거기 ‘애리’의 피골이 상접한 애처로운 모습이 있었다. 숨을 모아 힘없이 한 번 짖더니 마님을 쳐다보며 비실비실 쓰러져 그만 숨을 거두는 게 아닌가. 마님은 그저 돌처럼 멍하니 서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숨진 ‘애리’의 목에는 저자 바구니가 걸린 채였고 그 속엔 쇠고기가 조금 남았는데 구더기가 바글바글이었다. ‘애리’의 몸뚱이는 성한 데가 없을 만큼 찢기어 있었다.
해답은 간단하다. 마님은 별 생각 없이 전에 東京에 살았을 때처럼 ‘애리’의 목에 저자 바구니를 걸어준 것이지만 ‘애리’는 마님의 분부를 거역하지 못해 東京으로 달려 갔고 단골 푸줏간에선 귀족 일가가 되돌아 온 줄 짐작하고 반갑게 고기를 담아 주었던 것이다. 트럭편으로 피난하면서 익혀두었던 길을 ‘애리’는 왕복한 것이다.
‘애리’가 피골이 상접한 것을 먹지 못했기 때문이며 온 몸이 찢긴 것은 곳곳에서 들개들의 습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곰곰히 생각하면 우리들은 내 조국이나 속해 있는 조직체의 운영이나 개인의 삶을 영위해 가는데 있어 ‘애리’에 비할 때 과연 어느 만큼일까?
흔히 「개보다 못한 것 같으니라구」하면서 혀를 차는 광경에 접한다. 개와 사람을 견주어 본다는 건 망발일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개의 신의 지키기를 감탄만 할 일이 아닌 성싶다.
시키는 능력만 있고 맡은 일엔 제구실을 못하는 위인들이 둘레에 수두룩하지 않는가? 많이 가진 자들과 많이 배운 자들의 횡포가 날로 극심해져 나라의 미래가 쉬이 잡히지 않는다. 我田引水만 있고 正直은 먼 하늘에 구름처럼 떠있다.
특히 실세 정치인들과 그 추종자들이 그 으뜸을 차지하고 있다. 앞에서 말한 마님처럼 여건의 변화에 따른 배려가 전혀 없는 습관성이 결과적으로 ‘애리’에게 죽음을 강요해 놓고 그리고 얼마 안가서 잊을 수 있다는 게 인간만이 지닌 또 하나의 잔인성인 듯싶다. 남의 오랜 영역을 심심풀이처럼 허물려고 덤비는 그 꼬락서니들 감히 ‘미친 개’라 불러도 무방하리라. 국민이 뽑아 국회에 보냈더니 국민을 향해 짖어대다니…
「미친 개에겐 몽둥이 찜질이 제격이다」라는 우리네 속담을 깊이 음미해 본다.
나느 아주 오래 전에 우수한 독일종 세파아트 수컷 한 마리를 잃은 일이 있었다. 낚아챈 개도둑의 수법이 교묘했다. 발정한 암컷의 점액을 솜 뭉치에 발라서 쇳덩이와 함께 노끈에 매어 마당에 던지니 개가 냄새에 환장을 했던 모양이었다.
슬금슬금 당기는 노끈을 따라 결국 높은 담을 뛰엉 넘어 올가미에 걸렸던 것 같았다. 본능에 약한 개는 형체를 확인할 겨를이 없었던 것이리라. 미친개에게도 꼭 요란하게 몽둥이 찜질 할 것이 아니라 이런 기묘한 방법도 병행했으면…
날쌘 매는 날카로운 발톱을 감추며 사나운 개는 함부로 짖어대지 않는다고 한다. 소인배들에겐 귀담을 교훈인가 싶다.
이웃까지 지켜주던 개의 포효가 까닭없이 멎으면 괜히 불안해서 뜬 눈으로 밤을 지새던 일들을 회상해 본다.
개띠 해에 새삼 애견에게 유산을 남기고 무덤에 묘비까지 세운 사람들이 생각나서 나는 하냥 부끄럽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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