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근한 예로는 얼마 전 소요를 진압하기 급급해 비상사태까지 선포했던 필리핀이나 태국의 지도자들이 그런 부류에 속한다 하겠다.
문득 생각나는 이솝의 우화 한 토막. 길 가던 아이들이 내기로 던지는 무수한 돌멩이를 견디다 못해 늪 속의 개구리가 대표로 나타나서 “얘들아 너희들에겐 돌 던지기가 장난일지 몰라도 우리에겐 죽음이나 제발 많이다오!”라고 했다는 얘기 말이다.
또 예기(禮記)에 나오는 공자가 태산을 지나는 이야기도 함께 떠오른다. 한여인이 무덤 앞에 엎드려 곡을 하고 있어 공자가 제자 자로(子路)를 시켜 그까닭을 알아보니 “옛날 시아버지가 호랑이에게 죽고 남편이 또 호랑이에게 죽었는데 이제 자식마저 호랑이에게 죽어 그래 서러워서 웁니다.”라는 것이었다.
공자가 다시 “그러면 어찌하여 딴 곳에 가서 살지 않고 이곳에 사는가?”하고 묻게 하였더니 “여기는 가혹한 정치가 없기 때문입니다.”라는 대답이었다.
이에 공자가 말하기를 “자로야너는 알았느냐? 가혹한 정치가 호랑이보다 무섭구나.” 하였다.
가혹한 정치보다는 차라리 호랑이가 잡아가는 땅이 더 안전함을 가르친 일이다. 오죽하면 가혹한 공직자를 호역리(虎翼吏)라 했을라고 호랑이에게 날개까지 달렸다면 그 위세가 짐작되고 남는다.
정치가 국민에게 노여움을 주는 이유는 다름 아닌 지나친 엄격 또는 가혹과 편애에서 야기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갈팡질팡에서 구심점을 제시하지 못하는 정치 또한 세계화 속에선 허울만 다르지 가혹한 정치와 같은 맥락이다.
흡사 우리나라의 정치적인 불안한 현실을 말 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까워 가슴을 친다.
오는 5월이면 한꺼번에 실시되는 지방선거다. 벌써부터 열기가 대단하다. 혼탁 조짐마저 불거지고 있다. 출마하기 위해 장관들이 줄줄이 사표를 내고 정당들은 위장 당원을 급조해 가면서까지 총력전 체제에 돌입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유권자들은 까마귀의 암수가 쉬이 가려지지 않아서 몹시 어리둥절해 있다.
혹시라도 출마자들 중에 중국의 전국책(戰國策)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의 주인공이 섞여 있으면 어쩌나 싶어 걱정스럽다.
어느 날 호랑이가 여우를 만났다. 덥석 잡아먹으려 하니까 “나를 잡아먹다니 하나님이 나를 온갖 짐승의 어른이 되라고 명령하신 것을 모른다는 말이오? 나를 못 믿겠거든 내가 앞장서서 갈 테니 그대가 내 뒤를 한번 따라와보오. 반드시 내가 백수의 왕임을 그대가 알게 될 것이오.”라고 했다. 그리하여 호랑이가 여우의 뒤를 따라갔더니 이게 웬 일입니까? 호랑이는 제가 무서워 도망치는 줄도 모르고 여우가 무서워 도망치는 줄로만 알았던 것이다.
영국의 속담에 ‘여우와 사귀려면 그의 관계를 잊지 말라’는 것이 있다. 또 이솝의 우화에도 <사자의 병문안>이라는 것이 있는데 사자가 나이를 먹어 병을 앓게 되어 더욱 화를 잘 내게 되자 여러 짐승들이 앞 다퉈 병문안을 하러 갔건만 여우는 좀 늦었다. 시야가 나쁜 이리가 사자에게 “여우란 놈이 왕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오지 않는거”라고 했다. 사자가 버럭 화를 내는데 마침 이를 엿듣고 난 여우가 늦게 온 까닭은 사자가 병을 낫게 하는 약처방을 유명한 의원에게 알아보기 위해서였다면서 처방은 바로 이리의 가죽을 벗겨 그걸로 몸을 싸고 있으면 곧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사자는 병이 낫는다는 바람에 기분이 좋아 즉석에서 이리를 죽였다는 이야기다.
문득 내 뇌리를 스치는 늘 북새통인 서울역 광장 거기서 있었던 얘기 하나가 겹치기로 생각난다. 바람에 깃뜬 날리며 점잖이 흰 수염 쓰다듬는 시골노인 한 분이 북새통에 눈알이 휘둥그래져서 자탄하기를 “이 많은 사람들이 도대체 어찌 먹고 사는고?”하면서 크게 한숨짓자 곁에 섰던 지게꾼이 “노인장 걱정 놓으세요 다들 서로 속여 먹고 살지요.”라고 태연하게 대답하더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번의 지방 선거가 출마자의 공천에서 개표 완료까지 제발 속고 속이는 개판이 아니 되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어떤 분은 「나라(國家)라는 것은 ‘나라(lam)이고 책임을 지고 나서는 것」이라고 했다. 우리는 지금이야말로 이 나라의 운명을 체념이나 방관할 일이 아니라 책임져야 할 이 나라의 주인공임을 맹성하고 자각해야 할 때이다. 지금의 필리핀이나 태국과 같은 꼴이 안 되려면 더더욱 그러하다. 말잔치는 이제 정말 질색이다. 지겹다. 지방선거라고 삼류를 뽑는 게 아니다. 명심하자고요.
마지막으로 꼭 덧붙이고 싶은 것은 저 불후의 명작 <의사 지바고>를 쓴 작가인 러시아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에 관한 일화이다. 그의 평생의 애인이었던 올가 이빈스카야가 쓴 글에 나온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전화를 걸어 떨리는 목소리로 목이 메어 말하기 시작했다. 나는 걱정이 되어 그게게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신음하는 목소로 “그가 죽었소. 그가 죽었단 말이야.”라는 것이었다.
그는 지바고의 죽음을 슬퍼하고 있는 것이었다. 소설 속의 가슴이 찢어질듯한 그 장면의 집필이 방금 끝났던 것이다. 작중의 주인공을 죽게 하고는 그의 죽음을 연인에게 고하면서 우는 것이었다. 여기서 우리는 작가와 작품의 일치성에 긴 여운의 감동에 젖는다. 이번 출마자들의 공약 또한 이와 같아야 하리라. 가장 경계할 것은 어떤 반사이익을 제 힘으로 착각하고 하는 거짓과 과장이다. 그 해독은 경험이 명시해주고 있음이니 이젠 시실에게만 스스로 말하게 하라.
이에 나는 감히 말한다. 나라의 전통성을 거덜 나게 하고도 계속 야호! 외치는 못난 짓일랑 말아달라고 끝내 메아리는 없으리니….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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