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철이 없기로서니 경칩(驚蟄)까지 지났는데 100년만의 겨울폭설이 뭐며 이제 겨우 봄일을 시작한다는 청명(淸明)도 안 지났는데 26.0도의 여름 날씨는 뭔가.
참으로 2006년의 봄은 철부지 같다. 그러나 도로공원 개나리꽃 피는 것을 보라. 본오뜰 논두렁에 이름 모를 작은 풀들 싹트는 걸 보라. 폭설과 고온의 갖가지 이상기류 속에서도 봄은 가장 철든 모습으로 자기 역할을 다하며 겨울과 여름사이를 지키고 있다. 다만 봄이 되어도 철들지 않는 것은 사람이 아닌가 싶다.
어제 하인스 워드가 한국에 왔다. 인천공항은 가히 워드열풍으로 가득했다. 어떤 사람은 워드에 대한 보도기사를 모두 모아 만든 피켓을 들고 “웰컴 워드”를 연호하고 있었다. 9박10일동안 이 열풍은 계속 될 것 같다.
그 어머니를 부끄러워하던 일곱 살 소년 30살에 슈퍼볼의 영웅이 되어 ‘지금 이 자리에 서게 된 게 모두 어머니 덕분입니다’라며 눈물을 글썽이던 그는 분명 슈퍼볼뿐만 아니라 인생의 승리자이기도 하다.
한국이 그를 대대적으로 환영하며 가족에게 훈장을 주고 명예 시민증을 수여하는 등 국가적 예우를 한다해도 그와 그의 어머니가 이룬 인간승리에 비하면 아깝지 않을 것이다. 해 준 것 없는 한국에 섭섭한 마음을 가질 만한 데도 오른팔에 자신의 한국어 이름을 새기고 다니는 그로 말미암아 한국인은 지난 2월 내내 얼마나
즐거웠던가.
그러나 이럴 때 우리는 철모르고 날뛰는 망둥이의 모습은 아닌지 살펴 볼 일이다.
우리는 종종 그가 스타이기 때문에 열광한다. 지금 우리나라를 지나고 있는 유행병은 스타 병이다. 마치 유명해야 사람인 듯한 분위기이다. 유명해야 살아 남을 것이라는 강박관념도 팽배한 것 같다. 그래서 너도나도 유명해지려 별 짖을 다 한다.
유명해지면 돈도 생기고 권력도 생긴다. 그래서 더욱 유명해지려한다. S라인을 만들겠다며 고추를 끓인 물을 들고 다니는 여자들이나 꽃 미남이 되겠다고 불쌍할 정도의 노력을 하는 남자들은 물론 지방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후보자들 중에도 그런 사람이 적지 않을 것이다. 폭설 속에 감추어졌던 봄처럼 고귀한 삶이 워드에게도 있었다.
“철이 들면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워드가 한 말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철이 드는 것이라는 말처럼 들린다.
그 어머니의 말도 들어 보자.
“아들이 곁길로 가지 않고 바르게 자라도록 키워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또 이렇게 뛰어난 선수가 되게 하신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위험한 경기 속에서 아들을 무사히 지켜주신 분도 하나님이시기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그의 유명함때문이 아니라 그의 감추어진 아름다운 삶 때문에 우리는 그를 사랑하고 존경해야 하지 않을까.
한편 우리는 우리 곁 가까운 곳에 있는 또 다른 혼혈아들에게도 워드에게 보여 주는 그런 호의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누구 하나 스타가 되니까 알려고 하고 도와 주려고 하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원숭이니 연탄이니 하며 놀리는 것이 한국인이다”
워드의 환영을 보면서 어느 혼혈인(混血人)이 한 말이다. 유명해진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가 무엇인가. 우리가 사람을 사랑하는데 그것은 결코 차이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국내의 혼혈아들중 17.5%가 학교를 그만두며 말한다.
“한국에서도 워드가 탄생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
앞으로는 10쌍중 1쌍이 국제결혼을 하게 될 거라고 하는데 비록 그들이 스타가 아닐지라도 그 자녀들이 사랑 받는 조국이 되어야 할 것이다.
어느 누구도 부모를 선택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철모르는 봄이라고 흘겨보았던 계절이 우리 앞에 만가지 싹을 틔우고 있다. 우리는 그를 ‘철 모르는 봄’이라 했지만 그는 그 어떤 이상기류에도 부화뇌동(附和雷同)하지 않고 꿋꿋이 자기 자리를 지키며 자기 역할을 다한 철든 계절이었다.
이제 우리가 철들 차례이다. 폭설 속에 의연하던 봄 그 봄의 모습으로 세상의 열풍을 관조(觀照)하며 자신의 자리를 지켜 가는 철든 시민의 사회를 그려 본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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