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든 쪽이 “이 사람을 데리고 가자”고 말하자 젊은 쪽은 펄쩍 뛰며 내뱉었다. “무슨 소릴 하는거요? 우리의 생사가 예측불능한 상태가 아닙니까?” 젊은이는 그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완강히 뿌리치며 떠났고, 그는 실신한 사람을 일으켜 등에 업고 천신만고 하산길을 헤매었다. 그는 전신이 땀 범벅이가 되었는데, 그러는 가운데 등에 업힌 이가 체온을 회복하여 뜨거운 입김을 내뿜기 시작했다.
간신히 마을에 이르렀을 때 어귀에 쓰러져 죽어있는 사나이가 있었다. 혼자 떠났던 그 젊은이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체온으로 강추위를 이겨냈던 것이다.
산악인이라면 적어도 산에서 어떤 경우라도 남일 수 없는 것이 윤리가 아니었겠는가?
예수님과 함께 길고 긴 사막을 걸오온 몹시 지친 청년이 발자국을 뒤돌아보더니 예수님께 따지듯이 물었다.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항상 저화 함께 하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저 발자국을 보십시오. 저 멀리엔 분명히 두사람의 발자국인데, 가까이에는 한 사람의 발자국 뿐이잖습니까? 이건 제 발자국인데, 그때 예수님은 저와 함께 계시지 않으신 게 아닙니까?
“아닐세, 그건 너무 지쳐있는 그대가 안쓰러워 내가 업고 걸었기에 발자국이 한사람의 것인 걸세?” 청년은 그만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이렇듯이 사람들은 자칫 남의 도움을 모르고 자기중심주의로 생각하기 쉬운법이다.
일본의 수도 도꾜의 전철 선로에 떨어진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가 숨진 우리나라 유학생 이수현(26)씨의로운 죽음이, 한·일 추모물결을 이룬 보도가 연일 일본열도에 큰 반향을 일으켰던 기억이 영영 지워지지 않는다.
그는 외아들이다. 자식을 가슴에 묻고 오열하는 그의 부모를 바라보며 우리는 진정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었던가?
인터넷 조문 중에는 ‘한국의 4천만, 일본의 1억2천만 명, 그 어느 누구도 해내지 못한 일등 당신은 해냈다’ 고 추모했는가 하면, 한 학생은 ‘당신은 정말 아름다운, 닮고싶은 청년입니다’ 라고 추모했었다.
한·일 강제합방의 원흉 伊藤博文을 죽인 안중근 의사와 한 일본인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이수현씨, 그 양극을 생각하니 그저 만감이 교차할 뿐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그렇게 아니하지 못한 두 義仁, 그래서 두 분은 사람이고 우리는 아직 사람이 되어가는 도중에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두 손 모으고 머리 숙여 기도한다.
내 인생의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한 또 하나의 결정판은 영화에서 그리고 TV의 재방영에서 거듭 시청한 저 호화여객선 타이타닉호의 최후 장면이다.
시청자들이 느낀 감정은 한결같았으리라 믿고 싶다. 다만 덧붙이고 싶다면 ? 그것이 나의 마지막이라면....?나는 어떤 처신을 했어야 옳았을까 하는 자문이다.
우리는 거기서 용감함과 비겁함의 진면목을 뼈저리게 간접 체험했었다. 그 단말마의 아비규환 속에서도 악대의 주악이 인간의 심성에 윤리의리듬을 유지시키는 가운데, 노약자와 부녀자만을 보우트에 옮겨 태우고, 선장은 선원이 갖다 바치는 구명대를 거들떠보지 않으면서 선장실에 들어가 문은 잠그로 배와 운명을 같이 햇으며, 어떤 노부부는 헤어지지 않으려고 꼭 껴안은 채 금슬의 최후 극치를 장식했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따뜻한 인간으로돌아가자구요 이웃은 없고, 위.아래도 모호해져가는 오늘의 세태를 똑바로 보아야 한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꼭대기에 올라 앉으려 든다. 돈도 권력도 명성마저도 오직 남들을 찍어누르면서 정상으로 치닫는 수단일 뿐인 이 사회현상이 과연 정상인가? 정상이 아니라면 마땅히 변혁이 따라야지 않겠는가?
따지고 보면 인간에게 남은 없다. 나와 무관하다는 他者, 그 따위는 인간에게 없다. 앞에서 열거한 몇 가지의 이야기가 분명희 그걸 말해주고 있음이다.
내가 모그른 낯선 사람은 있을지라도, 한 사회, 한시대를 사는 나에게 나와 무관한 타인은 없다. 모르는 사람이 곧 남이 아니다. ‘우리가 아닌 인간’은 단 한 사람도 인간사회에 있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라이벌’의 어원도 ‘같은 강물을 마시는 저쪽과 이쪽 사람들’ 이라지 않는가? 그 강물을 오염시키면 공멸은 자명하리니 하는 말이다.
희망은 그냥 오지 않는다. 다 함께 손잡고 밝은 것을 두루 살펴 만들어가는 것. 신문도 1면을 막가는 정치판보다 미담가화나 성공사례 같은 것으로 채웠으면 싶으다. 너무나도 체온의 교감이 그리워서.
/이기진 논설주간
이기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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