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를 보는 재미는 물론이거니와 거국적 응원은 그 재미가 절정에 이르렀고, 나 같은 경우는 그 응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축구를 보는 것보다 더 재미있었다.
어찌 보면 대중매체의 부추김을 받은 부화뇌동(附和雷同)같기도 하고 분위기가 만든 유유상종(類類相從)의 극단 같기도 하지만 그들의 얼굴에서 넘치는 기쁨과 생기는, 부모님의 얼굴에서, 자녀들의 얼굴에서, 이웃의 얼굴에서 우울과 슬픔이 지워지고 웃음꽃이 피어나는 것을 보고 싶은 나에게는 내가 볼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이며 나를 행복하게 해 주는 것이었다.
더 밝게 더 맑게 우리 민족이 웃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 고민하던 청년시절이 있었는데 이제 보니 그러한 일 중에 축구 만한 것도 없는 듯 싶다.
토고를 2:1로 이긴 한국이 프랑스와 경기를 벌이던 날, 서울 시청 앞 광장은 13시간 전부터 이미 붉은 물결로 덮였다. 꼭두새벽 4시, 선수들은 독일저녁의 더위와 싸웠고 응원단은 한국 새벽의 추위와 싸우며 하나가 되었다.
경기시작 9분만에 한 골을 내주고 전 후반 내내 끌려 다니던 한국팀이 종료직전 동점골을 터트리는 순간 한국과 독일은 물론 미국, 영국, 태국, 베트남에서까지 한국인은 누구라 할 것 없이 하나가 되어 기쁨의 함성을 질렀다. 정치가 해 주지 못하고 있는 것을, 교육이 해주지 못하고 있는 것을 축구가 해주고 있었던 그런 희열이요 그런 환호였던 것이다.
이런 기쁨이 좀더 계속되기를 바랐지만 한국은 알프스의 벽을 넘지 못하고 16강에서 탈락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2006년 월드컵 세 번의 경기를 통하여 이기기는 것과 비기는 것과 지는 것을 골고루 경험하면서 이긴 자의 기쁨, 비긴 자의 아쉬움, 그리고 진자의 허탈함을 모두 맛보았다. 이긴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이며 진다는 것이 얼마나 서글픈 것인지도 실감했다. 월드컵은 우리에게 재미만 준 것이 아니라 큰 교훈도 주었다.
첫째, 모든 것은 때가 있다는 교훈이다.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다. 성경 전도서에 보면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다고 했다. 이길 때는 질 때를 생각하며 겸손하고 질 때는 이길 때를 생각하며 힘을 내라는 교훈을 받는다.
둘째, 모든 것은 상대가 있다는 교훈이다.
이기는 자가 있으면 지는 자도 있다. 양지가 있으면 음지도 있고 음지가 있으면 양지도 있다.
월드컵은 우리에게 가르쳐준다 이겼다고 좋아하지 말고 비겼다고 자만하지 말고 졌다고 낙심하지 말 것을. 우리에게 지고 슬퍼하던 토고와 비기고 씁쓸해 하는 프랑스와 이겼다고 좋아하던 스위스를 함께 생각하며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셋째. 모든 것은 뿌리가 있다는 교훈이다. 지는데는 지는 뿌리(원인)가 있고 이기는데는 이기는 뿌리가 있다. 실력이라는 뿌리, 리더쉽이라는 뿌리, 훈련이라는 뿌리, 이런 뿌리들을 소중히 여기고 잘 관리하면 반드시 좋은 줄기와 열매를 보게 될 것이다.
이번 월드컵을 통하여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 특유의 응집력과 애국심과 투혼을 세계에 보여 주었다.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첫 출전하여 0대9로 패했던 한국축구는 이제 더 이상 변방의 축구가 아니라 세계 강자들에게 악몽같은 팀이 됐다.
중국 국영방송은 한국을 아시아의 자랑이라고 했다.
안타까워서 발을 구르고 아쉬워서 허공을 치고 속상해서 울고 … 그 사람들이 다시 일상으로 돌아 갔다.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학생들은 학교에 가서 기말고사를 치르고 직장인들은 출근하여 하던 업무를 계속했다.
비록16강엔 못 갔지만 우리국민들은 이 성숙한 모습으로 월드컵이 우리에게 준 재미와 교훈을 함께 간직하고 더 위대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갈 것이다.
/최세균 논설위원
최세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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