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도 60세에 총 재직기간 34년이라 별로 아쉬움 없이 담담했다.
그 날 같은 직장에서 함께 퇴임한 6명 중 연금을 택한 것은 나 하나 뿐, 다른 이들은 모두 일시불을 택하면서 나의 선택을 의아해 하는 눈치였다. 나의 경우 일시불이면 3천여만 원 연금이면 30만원 가량이었다.
나의 선택은 실은 자식들 7남매(4남 3)가 누구도 유일하게 남은 나의 재산권을 넘보지 못하게 하려함이었다. 당시 막내딸만 미혼이고 다들 가정을 이루고 있었지만, 언제 어느 자식이 목돈이 필요하다면서 내게 SOS를 보내 올지 모르기에, 더러 여겼던 남들의 실패사례를 거울삼아 취한 나의 단독 결단이었다.
지금 월 250만원 가까운 금액을 수혜하고 있으니, 연간 수혜 총액이 당초의 일시불 총액과 맞먹는 액수이며, 우선 일상의 평균 생활을 누리고 있으므로 나의 선택에 선뜻’수’를 매긴다.
자식들도 우리 집 가훈(구두가 없어서 울적할 적엔 길에서 만난 다리 없는 사람을!)이 워낙 지엄했던 것에 익숙해 있어, 내게 기댈 생각은커녕 나의 문화비 부족분을 토를 다는 일 없이 채워주고 있어 고맙다.
나는 박봉에도 7남매 모두를 대학에 진학시켰고, 그들이 받은 장학금을 등록금으로 유용하지는 아니했다. 거기다가 동생들의 가정교사 노릇엔 응분의 배려가 따랐으니 가훈은 약발이 먹혔었다.
나의 연금 선택 결단은 퇴임 전의 스위스 기행 때 싹텄다 하겠다. 한낮에 두 손을 꼭 잡고 여우로이 다정하게 산책하는 노부부들이 유난히 많이 목격되어 알아낸 것이 스위스에선 남자는 63세, 여자는 61세부터 누구나 국민연금이 지급된다는 것이었다.
병원이나 양로원도 굳건한 복지제도 하에 운영되고 있어 따뜻한 가정생활과 다름없다니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리고 그런 재원이 젊어서의 애국적인 정직한 교율 납세의 경쟁에서 이뤄진 것이라 하니 다시 한 번 고개가 숙여졌었다.
우리의 일시불을 택한 이들의 대부분의 가슴에는 다분히 나라의 미래상을 회의하는 어둔그림자가 드리워진 것 같았다. 그들의 거의가 지금 생활이 궁색해서 스스로 자택 연금된 상태임을 보면서 ‘선택이 평생을 좌우한다.’가 명언임이 실감되기도 한다. 어디 잘못 되어 간다고 내 나라가 아니더란 말인가?
나는 혈액이 B형이라서 그런지 운둔은 질색이다. 현재 참여중인 단체만도 여섯 개, 거기서의 행사마다 참여하느라 무진 바쁘다. 그러면서 신이 난다. 그 중에서도 독서에 쏟는 시간만큼은 우선순위에 변화를 주지 않는다. 고희까지는 연간 독서 목표량이 5백 권이었는데 지금은 시력을 감안해서 반으로 줄이고 있다.
책 속에 필요한 것들이 없는 것 없이 다 있다. ‘책이 사람을 만든다.’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그리고 지식은 공유해야 한다는 게 나의 신조이도 하다.
그래서 고희를 맞았을 때 기념으로목포에 있는 덕인학원(한 울타리 안에 남녀 중 고교의 총 학생 수 6천여 명, 교사 수 280여 명)에 장서 6천여 권을 기증해 넓은 도서실을 마련케 했다. 내게 돌아온 메아리는 학생들의 힘찬 ‘선구자’의 노래 합창 - 그때 감동은 오늘도 식을 줄을 모른다. 그지없이 아름다운 추억이다.
그 후에 다시 쌓인 장서 수천 권, 어디에 가치를 부여할까 고민하는 이 마음은 나날이 즐거움으로 훈훈하다. 그리고 내가 우연히 시작해서 25년간 수집해온 춘화(주로 음화 사진) 25만여 점도 나의 시간선용과 회춘에 기대치의 특효가 입증되었으니, 이젠 남들께도 이 황홀감을 나눌까하여 방안을 모색 중이다.
나는 일전에 재향경우회에서 발간하는 ‘파도와 등대’ 제 5집에 <경찰관생활에 문학은 사치인가?> 라는 제목으로 권두언을 쓴 바 있었다.
문학은 언어의 예술이다. 경찰관들이 갈고 다듬어서 순화된 언어로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다선다면 그들의 얼굴에 미소를 깃들이는 진정한 봉사가 될것이며, 그게 습관화 되면 오래지 않아 기존의 불가근 불가원 (不可近 不可遠)의 대접을 면할 터인즉 문확은 사치가 아니라 필수라고 강조했었다. 우리네 속담처럼 ‘남의 대덥이 내 대접’인 것이다 그러려면 꾸밈없는 평상심(平常心)의 유지가 중요하다.
지금에 이르러 정산해 보니 핏줄보다 더 그리웁고 진한 정은 없더라. 가족은 조건 없이 억세게 껴안을 지어다. 허물은 순간에 간에사라지고 기쁨과 용기와 자신감이 용솟음치더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니라.
끝으로 최근작 자작시<곱게 늙고파서>로 자화상을 그린다.
나 지금 나이는 80대 몸은 50대 맘은 20대
나 10년 후면 나이는 90대 몸은 60대 맘은 30대
그렇게 순조로고픔을 주름에 새기면서
날마다 다가오는 저녁놀 밀쳐내고는
밝게 차오르는 해돋이 합장하는 삶이어라
꿈은 영원한 나의 동반다 때론 절대자
끝이 올 때까진 끝이 아니리라 결단코!
지금의 나의 삶이 뿌리는 지난 삶터에 있음이니, 그 시절의 초심으로 돌아 가면 추억이 모락모락 내 마음을 흠뻑 적신다.
/이기진 논설위원
이기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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