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예전에 제가 TV에 바쁘게 출연했던 생각이 나는군요,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을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마에서 내가 맡은 역은 주로 정의감과 사악함이 적당히 섞여있는 어중간한 역일 경우가 많았습니다.
자유당 시절에 악역의 대명사였던 이기붕, 친일 행적과 물불을 안 가리는 행적으로 유명했던 공주 갑부 ‘김갑순’ 여인을 둘씩이나 데리고 사는 불건전한 가장, 그러나 때로는 이조때 정의롭게 살았던 내시 김처선역, 그리고 민중의 지팡이로서 가장 성실하고 푸근한 박순경 역할을 훌륭하게 해냈다고 한국 방송대상도 받았는가 하면 교양프로로는 MBC-TV의 ‘어떻게 할까요?’ ‘건강 백서’ 진행을 그리고 ‘박규채 그곳에 가고 싶다’를 장기간 방송 했었던 생각을 해 봅니다.
이런 나의 자랑을 하다 보니 내 홍보, 아니 내 자랑에 빠진 듯 합니다. 극중 캐릭터를 생각하며 나는 가끔 화장실에 앉아 거울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습니다. 정말 내 얼굴은 관록반 얼룩 반, 선량함 반 사악함 반으로 묘하게 얼룩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국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이세상 그 누가 인간의 이중성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일찍이 세익스피어도 오델로의 부관 이야고를 통해 인간의 충실함과 사악함에 관한 이중성을 날카롭게 파헤치지 않았던가.
고백하거니와 나는 내 사생활에서도 완벽한 인격을 구현 하지 못하고 있고, 그렇다고해서 남에게 폐를 끼치는 행동 또한 해본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요컨대 극중 인물처럼 절반은 선량하고 절반은 사악한 나의 이런 약점 때문에 나는 지금도 꾸준히 아침기도를 하고 35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썼고 반성하며 내필을 생각하며 이웃과 함께 더불어 살고, 오늘보다는 내일 더 선량하게 살기 위해 일단 노력하는 나에게 행운이 오리라 믿습니다.
그러면 광고(PR)라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것은 소비자들의 현명한 선택을 도와주는 길잡이인 것입니다.
하지만 요사이 우리 주변에서 홍수처럼 일렁이는 광고 중에는 사실상 길잡이로서의 역학보다는 엉뚱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구매 욕구를 자극하고, 때로는 청소년들에게 제품의 질과는 아무상관도 없는 성적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터무니없는 소비 심리를 부추기는 역기능의 것들이 오히려 더 많습니다.
영국의 대처 수상은 애당초 깔끔하고 주부에 가까운 살림꾼, 즉 여성 수상의 순수한 이미지를 원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녀의 참모건들이 당시의 영국병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치마 두른 여성 수상의 면모를 보여서는 안 된다는 데에 뜻을 모으고 그녀의 PR작전에 나섰는데 그 새로운 이미지 작업이 결국 ‘철의 연인’ ‘강철의 여수상’ 이라는 것으로 귀착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상대로 강력한 여성 수상의 이미지는 좀처럼 바뀔 줄 몰랐고, 어떤때는 굳어진 이미지에 따라 만들어진 여론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포클랜드 전쟁 때만 해도 대처 수상은 온전한 방법으로 적당한 선에서 수습 하려고 했지만 수상의 측근들은 단연코 ‘NO!’를 종용했습니다.
왜냐하면 여론이 그렇게 믿고 당연하게 예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수상 각하 철의 수상답지 않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선전포고를 하세요 선전포고를!” 결국 대처는 또다시 참모들에게 굴복할 수밖에 없었고, 그녀는 다우닝가 1번지를 나올 때 까지 ‘철의 여인’ ‘치마 대신’ ‘강철같은 의지의 갑옷을 둘렀던 여인’으로 둔갑되어 있었습니다.
최근 대처 여사는 자신을 위해 일생을 외조로 일관해 온 자신의 남편을 위해 요리도하고 손자들과 함께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도 자주 부른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녀의 주변에 남아서 그녀의 재기를 모색하고 있는 참모들은 이렇게 그녀에게 권한다고 합니다. “다시 한번 이미지를 가꾸셔야 합니다.
이번에는 철보다도 강한 다이아몬드의 여신으로 나타나셔야 합니다”
아마 우리 주변에 있는 유명 기업인, 그리고 정치인 중에는 본래의 자신은 사라지고 주변 참모들이 만들어 주는 이미지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참으로 요즘은 한번밖에 없는 자신의 삶조차 마음대로 살아 갈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놈의 이미지가 무엇인지…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부터 먼저 반성하며 정직하게 살아 갑시다.
/한성디지털대학 연극영화과 교수
박규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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